나는 원래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재능이 많다고 말하곤 했다.
내 꿈은 가수였다.
무대 위에 서서 빛을 받는 순간을 사랑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그 시선 속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즐겼다.
평범했지만 꿈이 많은 소녀였다.
나는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이었고,사교성도 좋았다.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나는 믿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결국은 잘 살아낼 거라고.
2026년 현재, 나는 자살 유가족이다.
동시에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복지센터의 보호를 받고 있다.
양극성 불안장애, 사회공포증, 우울증, PTSD.
그리고 깊은 불면증
밤이 되면 나는 잠 대신 약을 삼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바닥 가득 약을 쥐고
물과 함께 삼켜 넣는다.
사람들은 묻는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냐고.
처음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한 이유는
엄마의 자살 때문도,
아빠의 자살 때문도 아니다.
J와 그의 가족들 때문이다.
내 삶이 고통이라는 사실과 별개로
나는 수많은 순간과 선택을 후회한다.
사소한 선택부터 내 인생을 뒤흔든 결정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후회되는 것은 하나다.
J를 사랑한 것.그를 따라 거주지를 옮긴 것.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H의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
20대 청춘을 J에게 모두 다 바쳤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늘 아슬아슬했다.
하루가 겨우 지나가고 또 다른 하루가 위태롭게 시작되었다.
그 집을 떠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을 증오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래된 일기장을 펼치고
기억을 하나씩 꺼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럽다.
그들이 내게 남긴 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다.
사회공포와
불안.
그 감정들은 지금도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나는 J의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았고,
결혼도 하기 전에 시작된 시집살이
그들의 가스라이팅, 여동생의 괴롭힘,
끝이 보이지 않던 노동, 그리고 사람을 갉아먹는 폭력적인 말들 그 안에서 내 자아는 조금씩 사라졌다.
언제부터인지 내 생각보다 그들의 눈치를 먼저 살피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입을 열려고 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오래도록 침묵하는 법부터 배웠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하고 싶었던 말은 J가족들을 폭로하고 싶었다.
그 집 안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들을.
"여기 혼자 외롭게 살지 말고
오빠랑 같이 올라가자, 여기서 음악공부도 하고,
같이 살자."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내게 가족이 생긴다는 게 너무 기뻤다.
그가 내 인생의 동반자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 확신은 그의 행동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차에 타기 전 추울까 봐 시트를 미리 데워 두던 사람. 박카스와 요구르트밖에 없던 내 냉장고를
어느 날 반찬으로 가득 채워 주던 사람.
나는 그런 그를 사랑했다.
클라우드 사진 속의 나는 거의 모든 순간에서 웃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 그때 나는 J를 만났다.
그 순간들은 대부분 그의 카메라에 담겨있다.
사진 속의 나는 아무 걱정도 모르는 얼굴로 밝게 웃고 있다. 나는 가장 예뻤지만 가장 외로웠던 나이에
그를 만났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른 채 인생의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매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J와 함께 20대를 보냈다.
나는 그가 사는 도시로 올라갔다.
내 자리와 내 꿈을 뒤로한 채.
하지만 말과 실제가 달랐다
내가 살 곳이 J의 집이라는 것을.
그의 어머니와 두 명의 여동생이 함께 사는 큰집이었다.
나는 당황했다. 따로 방을 얻어 혼자 살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집이 있는데 왜 따로 살아.
자리 잡을 때까지만 같이 지내자."
그의 어머니도 같이 사는 게 좋겠다며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매일아침밥을 차려주셨다.
나는 그 집에서 처음으로 가족 같은 온기를 느꼈다.
내게 부모라는 존재는 늘 낯설었다.
그래서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누구보다 갈망했다.
지금도 기억한다.
그 집에서 처음 먹었던 따뜻한 밥,
한 상 가득 놓여 있던 반찬들.
항상 빠지지 않던 따뜻한 국.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지 않던 욕실,
그리고 커다란 욕조.
어머님은 집안일 하나 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불편할까 봐 세심하게 배려했다.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직장을 찾고 있었다. 면접을 보고 내 전공인 음악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때 J와 H가 나를 불렀다.
"그러지 말고 언니가게에서 같이 일할래?
남이 와서 언니 가게에서 일하는 것보다
우리 가족끼리 일하면 마음가짐이 다르잖아.
우리는 가족이니까 내가 돈도 더 챙겨줄 수 있고."
H는 똑똑했고 아름다웠다. 길을 걸으면 사람들이
한 번쯤 돌아볼 만큼 그녀는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 일하면
나도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때의 나는 그를 너무 사랑했고, 계산적이지 않았고,
그래서 너무 단순했다.
지금은 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그 집에 들어간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도망쳤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 삶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는데도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내가 약해질수록 그들은 더 세게 내려쳤다.
쉼은 없었다.
더 나쁜 말로
더 많은 일로
나를 계속 움직이게 했다.
나는 어느 날부터 사람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몰랐다.
H와 함께 밥을 먹으면 너무 긴장해서 수저를 떨어뜨렸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수저를 주워 들었지만
떨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J가 물을 때마다
나는 H가 내게 했던 말과 행동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J는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느 날 H가 나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문을 닫고 물었다.
"진지하게 물을게. 네가 왜 내 앞에 서면
바보가 되는 거야?
왜 내가 널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건데. 미친 척 연기하는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H는 잠시 나를 내려다보더니 다시 말했다.
"네 가정사, 네 트라우마로 우리 가족한테 영향 안 미치게 해 줬으면 좋겠어.
네가 가진 유일한 장점이 뭔지 알아? 살갑고 밝은 거.
우리 엄마한테 잘하는 거.
그거 말고 네가 가진 게 뭐 있냐.
근데 이제 그것도 못하잖아. 그것도 못하면
넌 왜 살아?"
그 말을 듣자마자 가슴 안쪽이 천천히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도저히 못 참겠어서 가슴을 치면서 엉엉 울면서 말했다.
"언니가 나를 미치게 만들잖아요
제발 나 좀 쉬게 해 주세요
제발 나 몰아붙이지 말아요."
하지만 H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나는 우리 가족을 위해 젊음을 다 썼어.
이 집에 내 돈 안 들어간 데 없어.
심지어 네가 마시는 물도 내 돈으로 산 거야.
나는 여기서 할 말 다할 자격이 있어.
근데 너는 뭐야. 여긴 예비 시댁이잖아. J성공이 코앞인데 이것도 못 버텨?
그리고 난 힘들면 내 방식대로 밖에서 풀고 와.
근데 너는 뭐야? 네 개인적인 일이나 일 문제로 힘들다고 꾀병 부리는 거, 나는 가잖아.
사람은 언젠가 다 죽어.
우리 엄마도 나보다 먼저 죽을 거야.
근데 그게 뭐 어떤데. 시간도 좀 지났잖아.
왜 아직도 그런 표정으로 사는 거야?
내가 말했지. 바쁘게 살면 우울증 그런 거 안 걸려. 배부르게 살지 마.
여기 와서 먹고살기 편해지니까 우울증 같은 거 걸리는 거야."
아니다. 나는 이 집에서 엄마이야기를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다.
엄마아빠일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가능한 밝게 웃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매번 삼켰다.
그런데도 보였나 보다.
내가 숨기려고 했던 금이, 그리고 그 금이
이 집에서는 불편한 것이었나 보다.
나는 말했다.
"언니, 저 나가서 살게요. J공부에도 그게 나을 것 같고,언니말대로 저는 여기서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직장도 그만두겠습니다."
나는 H에게서 장사를 배울 생각이 없다.
이 일을 이어받을 생각 없다. 가게에서는 사람을 짓누르듯 말하다가
집에 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르며 웃는 사람.
나는 이제 이 사람을 어떤 표정으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내 어깨를 한 번만 두드려 주면
나는 아마 그 자리에서 무너질 것이다.
괜찮냐고,
힘들었겠다고,
단 한 번만 말해준다면 눈물이 그대로 쏟아질 것 같다.
하지만 이 집에서는 그런 말이 없다.
덮어두라고 한다.
묻어두라고 한다.
엄마아빠의 일을 흉측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더 바쁘게 움직이라고 한다.
가게 매출 이야기.
돈 이야기.
바쁘게 살지 않아서 우울증 같은 게 온 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문다.
"네, 맞아요."
그렇게 말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집안은 조용해진다. 하지만 내가 단 한 번이라도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혹은 "하기 싫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이 집 안은 전쟁터가 된다.
그래서 나는 배웠다.
가만히 있는 법을.
입을 닫는 법을.
표정을 지우는 법을.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잘 모르겠다
내가 슬픈 건지
아픈 건지
아니면 이미 오래전에 어딘가가
고장 난 건지.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나는 아직 살아 있는데
내 안의 어떤 부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어떤 날은 충동적으로 택시기사님께 죄송하다 말하고
달리는 도로 위로 몸을 던진 적도 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가끔은 이렇게 생각해보려 한다.
나는 20대를 잃은 것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얻은 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믿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아름답고 찬란해야 할 나의 20대는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흘러갔다.
타지에서 나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눈물과 함께
종이에 하루하루 써 내려갔다.
H의 가게에서 13시간 동안 일했던 노동의 대가는 200만 원은 J에게로,
나한테는 50만 원이 전부였다
그 대가로 나는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매일같이 4명의 아침밥상을 차리고, 집안일을 했다.
누군가의 하루가 시작되기 전, 나는 이미 오래 깨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동안 내 자아는 조금씩, 아주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날, 문 앞에는 소금이 놓여있었다
집 문턱을 넘으려 하자 어머님이 소금을 한 움큼 집어 들며 아무 말 없이 내쪽으로 흩뿌렸다
"목욕탕 가서 목욕하고 와라. 네 엄마가 집에서 죽었다고, 어휴 흉하다 흉해."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나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그 집 문 앞에서 처음 알았다
J가 나를 꼭 안아주면서 위로해 주길 바랐는데,
우울도 옆에 있는 사람에게 옮는다며 정 힘들고 우울하면 밖에서 울고, 털고 집에 들어와라고 했다
어쩌다 보니 H의 직장도 엄마가 죽고 13일 만에 복귀했다.
더 악독하게 굴었다. H의 이상한 영업방식은 더 힘들게 굴렸다
내 목소리의 톤과 억양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내가 말을 할 때마다 J는 나를 고쳐 세우려 했다.
나는 그때마다 조금씩 움츠려 들었고,
어느 순간부터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니, 배우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그렇게 움직였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그들이 편안해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듣고 싶은 노래조차
마음대로 들을 수 없었다
엄마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집의 규칙은 달라지지 않았다.
힘들면 밖에 나가서 풀라며, 집 안에서는 힘든 티를 내지 말라고 했다.
J는 억지로라도 웃어달라고 했다. 우울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옮는다면서.
그래서 나는 집 밖에서 울었다.
어두운 길을 서성이다가, 혼자 자살예방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곳에서 겨우 말을 꺼내고, 울분을 토해내고, 숨이 막히도록 울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는 다시 웃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J의 뒷바라지를 오랜 시간 했다.
분명히 우리는 곧 독립할 것이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 하나로
나는 그 집, 가게의 시간을 버텨냈다.
그때의 나는, 기다리면, 버티면 삶이 바뀐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이 없었다면, 나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그 믿음이
나를 가장 오래 붙잡아 두었던 것 같다.
'가족'이 생긴다는 평화, 사랑.
나는 그 믿음 하나로 그 시간을 버텨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 동안 내가 붙잡고 있었던 것은
미래가 아니라 희망이라는 거짓된 이름의 약속이었다.
첫 정신과 간 날,
"너 열심히 일해서 월급 나한테 주는 거 정말 고맙게 생각해. 그건 내가 곧 갚으면 되는 거고, 근데 있지
다만 내 앞길 막지 마.
너 기분 안 좋은 거 티좀 그만 내.
그냥 나 합격할 때까지만이라도 억지로 웃어줘
억지로라도 괜찮은 척해주라 제발."
그의 말들은
내 인생이 어떻게 살 인생인지 이미 내려진 판결 같은 것처럼 들렸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고, 내가 서 있던 자리의 바닥이 천천히 꺼지는 것 같았다.
결국 그런 날이 와버렸다.
J는 오랜 시간 끝에 시험에 합격했고,
H는 나를 조용한 카페로 나를 불러냈다.
내가 수고해 준 덕에 J가 시험에 합격했다며 고맙다고 했다.몇 년 동안 같이 살면서 그렇게 살갑게 이야기해 준 건 처음이었다.
느낌이 이상했는데, 나보고 오빠랑 헤어지자고 먼저 말해주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솔직히 말할게.
네가 우리 집에 와서 나 같은 성격 가진 사람 밑에서 고생한 거, 우리 식구들 다 알아. 모르는 거 아니야.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자. 사람은 결국 끼리끼리 만나는 거야. 우리 오빠는 널 만날 이유가 없어.
넌 우울증약도 먹잖아. 여기서 편하게 먹고 자고 다 하는데, 뭐가 그렇게 힘든 거야. 우리 오빠는 앞으로 미래가 밝은 사람이야.
그런데 넌... 아니잖아.
네가 뭘 할 수 있어? 내 밑에서 일하는 것도 불편하다고 하고. 만약 네가 우리 오빠 아이를 가진다고 해도, 아이를 봐줄 부모는 없고,
결국 우리 엄마가 다 봐야하잖아.
난 그 꼴도 보기 싫어.
오빠는 더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어.
그 몇 년 동안 같이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너랑 계속 만나는 걸 우리 가족은 볼 수 없어."
그 말을 듣는 동안,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주 7일, 하루 13시간씩 일했다. 그냥 일한게 아니라, 정말 노예처럼 한시도 앉지 못하고 서서.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일어나 아침밥상을 차리고, 집안을 치우고,
쉬는 날이 가끔 생기면 J의 아버지 농장 일을 돕고, 어머니 뒤치다꺼리를 했다
나는 50만 원으로 생활했다. 200만 원으로 J의 생활비, 차량 유지비, 보험료,
결혼 자금까지 저축했다
모두 H와 J가 그렇게 하자고 했던 일이었다.
결국 마지막선택은 내가 한 것이지만.
언젠가 우리의 삶이 달라질 거라고.
우리만의 집, 우리만의 미래를 위해 참고 또 참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라고 한다
시험에 합격했으니 더 이상 나를 만날 이유가 없다고 한다.
말로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숨이 막혔고,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오빠랑 다 얘기된 건가요? 오빠가 언니 시켜서 나한테 헤어지자고 말하라고 한 거예요?
왜 언니가 이런 얘길 해요, 이건 오빠랑 내 문제인데.."
H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오빠가 너를 진짜 사랑하는 건지 잘 모르겠대.
마음이 약해서 먼저 말 못 할 거야.
그러니까 네가 먼저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
그 순간, 그녀는 내 앞에 현금 봉투와,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 액세서리를 내려놓았다.
새것은 아니었고, 그녀가 평소 들고 다니던 것들이었다
"500만 원이야. 작지만 선물이야 이거 다 팔면 괜찮은 월셋집 하나 얻을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냥 바라만 보았다.
"이건 오빠랑 제 문제 아닌가요?"
H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빠도 같은 생각이야.
너를 오래 만나서 미안해하는 거지."
나는 다시 물었다.
"오빠가 시킨 건가요? 언니가 무작정 저한테 얘기하는 거예요?"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네가 먼저 말하는 게 우리 모두에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
너 고생한 거, 힘든 거 다 알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챙겨주는 거야.
넌 강한 아이니까 어디를 가도 잘 살 거야."
그 말들을 들으면서, 나는 내 안에서 모든 게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수년간 쌓아온 나의 희망과 기대, 그리고 믿음조차 한순간에 흔들렸다.
나는 그 집에서, 사람이 아니라 언제든 평가받고
교체될 수 있는 존재였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가장 깊은 절망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렇게 쫓겨났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가보니 집엔 아무도 없었고, 내짐은 다 싸서
캐리어, 짐가방에 넣어져 있었다. 호텔 키와 함께.
나는 그렇게 그곳을 떠났다.
이별 통보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호텔에 들어갔다.
장기 투숙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삶은 때때로 가볍다. 아무렇지 않게 하루가 지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사람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다.
나는 살기 위해 버텼다.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사건들은 멈추지 않았다.
연달아,
거의 의도라도 한 것처럼 나를 향해 쏟아졌다.
누구나 상처를 입는다.
누구나 배신을 겪는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잔인하게 헤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아프다
모두 슬프다.
삶의 무게는 어떤 사람에게는 가볍고
어떤 사람에게는 무겁다.
그리고 결국 그 무게는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내 삶의 무게 역시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세상은 지옥처럼 느껴졌다.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은 더 이상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곰팡이가 핀 세계에 살고 있었다.
어둡고
축축하고
숨이 막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혼자 버텼다.
그리고 결국 철저하게 버려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오래 이어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끝은 대개 예고 없이 찾아온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문이 닫히듯 갑자기.
그리고 문이 닫힌뒤에야 나는 알게 된다.
나는 이미 그 문 밖에 서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아주 오래전부터.
피가 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실제로 피가 흐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감각,
몸 안쪽에서 무언가가 찢어지고 있었다.
분노였다.
억울했고, 분했고 태어나서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분노였다.
어떤 방법으로도 마음을 붙잡을 수 없는 상태.
나는 숙소 침대에 누워있었다.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어떡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생각은 같은 자리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러다 어느순간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가득.
그때 나는 더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결국 나는 트리거를 계획했다.
그 집을 태울 생각이었다. 다 태워버리고 싶었다 모두.
내 손에 직접 피를 묻히는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불을 선택했다 그게 더 쉬울 것 같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생명은 여전히 고귀한가.
살인은 어떤 이유에서도 죄인가?
그렇다면 이 인간들이 나에게 저질렀던
모든 일의 죗값은누가 매기고
어떻게 치르게 되는가.
나는 그 집으로 갔다.
아파트가 아닌 2층짜리 주택이었다.
불을 지르기 좋은 구조였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그사람들만 죽게 할 수 있는.
그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는 시간에 맞춰 갔다.
불이 켜져 있었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창문 안쪽에서 움직였다.
나는 휘발유를 뿌렸다.
현관 앞에도 벽에도 마당에도.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미친년.
내가 이런 짓을 하고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내 분노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선을 넘어 있었다.
이제 라이터만 던지면 된다.
그 순간이었다.
J얼굴이 떠올랐다.
함께 웃던 순간들. 손을잡고 걷던밤. "안아줘"하고 뛰어가던 내 모습.
나는 J를위해 살았다.
J가 원하는대로 했고,J가 원하는 모습대로 살았다.
그 가족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나를 계속 깎아냈다.
내 좋아하는 옷은 버려졌고 목소리 톤도 바꿔야 했고
sns에 사진 하나 올리는 것도 허락이 필요했다.
아침밥을 준비하고 집안일을하고 출근을 했다.
하루 열세 시간. cctv로 감시당하며 앉지도 못하고 일을했다.
"왜 저 사람은 물건 안 사갔어? 네 판매 멘트 말해봐."
어느날 내가 버티지 못하고 말대꾸를 했다.
그녀는 내 머리채를 잡고 카운터에 내 얼굴을 세게 내려쳤다.
앞니가 흔들렸다. 결국 이를 뽑았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고 집에가면 J는 웃으며 말했다.
"왔어?수고 많았어."그리고 나를 안아줬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의 품안에 있으면 세상이 잠깐 멈추는 것 같았다.
그 지옥 속에서도 나는 웃었다. 그래서 나는 믿었다.
조금만 버티면 우리는 행복해질 거라고.
라이터를 던지면 이제 끝이다.
순간 내 미래가 보였다.
이 집은 불타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생 감옥에서 썩게 되겠지.
내 인생도 그 자리에서 끝나겠지.
그 생각이 들자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나는 주저앉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내뺨을 때렸다 심호흡을 몇번이고 하며, 라이터를 조심스레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처음으로 무서웠다. 내가 정말로 사람을 죽일수도 있었던 나자신이.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그 지역에서 멀리.
가능한 한 빨리.
살인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처음으로 알게된것이 있다.
브런치를 시작했을때 처음으로 쓰고싶었던 글이 그곳에서의 삶 이야기 였습니다.
폭로하고싶었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위로받고싶었습니다.
글을쓰면서 옛날일기장을 읽으면서
많이도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치유도 되었습니다.
마지막화는 1화부터 마지막화까지 있었던
모든글을 축약해서 썼습니다.
글을 연재하면서 느낀것은, J를 만나고,
'과연내가 그때 사랑했던 것은 J였을까.
어쩌면 나는 J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형태를 붙잡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너무 오래 가져본 적 없었던 것.
서로 같은 식탁에서 밥을먹고, 아무 이유 없이도
내 편이 되어주는 그런 사람들이 생기는것.
나는 그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사람이 가진 '가족'이라는 풍경을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떠나지 못했던거같습니다.
그곳이 나를 망가뜨리고 있다는것을 알면서도요.
가족이라는 형태를 향한 오랜 갈망,
J가 아니라,'가족'이라는 단어를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제게도 진실된 가족이 생기겠지요 -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