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충동, 트리거

by 티보치나




그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왔다 거의 도망치듯 왔다. 왜 도망치듯이 왔냐.

내가 트리거를 당길 거 같았다.

이들 가족들을 모두 죽일 수 있을 거 같았고,

실제로 렇게 될뻔했다.

이별통보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나는 그 집을 나와서, 호텔에 장기투숙을 하고 있었다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지금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삶에는 무게가 있다고 들었다

삶은 가벼울 때도 있지만,

때때로 내 힘만으로는 도저히 버티기 힘들 만큼

무거울 때가 있다.

나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연달아 닥쳐오는 사건들은 가혹하기만 하다.

누구나 상처받고, 누구나 배신당하는 경험이 있고,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잔인한 이별을 당하는 경험이 있다.

그래서 모두 아프고, 슬프다. 삶의 무게는 모두에게

똑같이 가볍거나, 무거우며, 모두에게 똑같이

기쁨이거나 슬픔이다.

내 삶의 무게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그런데 나는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세상이 지옥같이 느껴지고,

나를 괴롭힌 이 사람들은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혼자 버텼다 그러다 철저히 버려졌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인연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갑자기 끝난다.

피가 튀기고 마음속에서 비명이 난무하고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기분을 이해하는가

화가 치밀어 오르고 억울하고

분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어떤 방법으로도 마음을 추스를 수없을 만큼

분노가 터졌다.


숙소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누워있었다.

'어떡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생각하다가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신들도, 나도 모두 다.


휘발유를 가득 샀다.

나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트리거를 계획했다.

그 집을 태울 작정이었다.

태우고 죽이고 싶었다. 내가 직접적으로

내손에 피를 묻히면서 죽이기에는 기가 나지 않아서 불을 지르기로 마음먹었다.



생명은 여전히 고귀한가
살인은 어떤 이유에서든 죄악인가.
그렇다면 이 인간들이
나에게 저질렀던 모든 짓들의
죗값은 누가 매기고, 어떻게 벌을 받나.


아무렇지 않게 남에겐 가혹한 폭력을 가하는 인간들이, 본인 가족들 서로에게는 어느 누구보다 애틋하고 챙겨주는 이 가족들을 한 명 한 명씩 죽어가는 모습을 서로 보게끔 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 집은 아파트가 아닌 2층짜리 주택이었다

불 지르기 딱 좋은 구조였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이 사람들만 죽게 할 수 있는.

그 가족들이 모두 같이 있는 시간에 맞춰서 갔고,

모두 모여있는 걸 확인한 후, 나는 휘발유를 여기저기 잔뜩 렸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속으로 미친년.. 미친년 하며 이런 짓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믿기 어려웠지만 이미 나의 분노는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이제 라이터만 던지면 모든 게 끝난다.




그렇게 라이터를 탁,

던지려는 순간

J와 함께한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는 수년을 J를 위해 살았다.

J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J를 위한 선택을 했고, J가 원하는 일을 했다.

J가족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했다. 에 나갔다가 들어왔는데 내 옷은 다 버려져있었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못 입게 하고 마네킹처럼 항상 코디를 받고, 목소리톤, 억양도 바꿔야 했으며 sns에 올리는 모든 사진 특히 J에 관한 것들은 컨펌받아야 했다. 음악 듣는 것도 가려가면서 들어야 했고, 아주 가끔 쉬는 날이 생기면 아버님 밭일을 도우러 갔다. 하루는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몇 달을 졸라서 얻어낸 나의 자유.

어디 가는지, 뭘 먹는지 언제 들어오는지

1시간마다 한 번씩 전화가 와서 어려운 만남이었음에도 친구들과 잘 놀지 못했다.


매일 출근 3시간 전, 아침밥을 준비하고, 집안일을 끝내고 곧장 출근했다. H는 매일 cctv로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감시했다. 수시로 전화 와서

'왜 저 사람은 물건 안 사갔어? 네가 한 판매멘트

말해봐.'

13시간 동안 거의 앉을 수 있는 시간이 없었고,

매장에 H와 같이 일하는 날이면.. 그날은 말로 표현 못한다. 매출스트레스 압박은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고, 어떤 날 나도 너무 참기가 힘들어서

의사표현을 했는데 내 머리를 잡고 카운터 책상에 얼굴을 세게 맞았다. 앞이빨이 흔들거렸다

결국 치아를 뽑았다.

그 노동의 대가는 한 달에 겨우 50이었다.

200은 J에게 들어갔다.


그렇게 고된 일이 끝나고 집에 가면

J가 밝게 웃으면서 '왔어? 수고 많았어'하고 안아준다.

나는 그를 아꼈고 사랑했다 아주 많이.

"안아줘" 하며 달려가 품에 안기면 꽉 안고 있으면 모든 짐덩어리들이, 피로감이 풀리고

여기 우리만 있는 거 같았다.

손을 꼭 잡으면 어디든 같이 떠날 수 있을 거 같았고

그 지옥 안에서도 J랑 눈이 마주치며 웃으면

쉽게 행복해졌다.

함께 할 미래를 향해 고민하고, 조금만 기다려주면

행복한 삶을 평생 둘이 함께 하자는 약속 믿었고

별다른 데이트. 추억은 없었지만 그냥 함께 있는 게

그게 그렇게 좋았다.


이 라이터를 던지게 된 순간, 그 이후

내 미래가 그려졌다.

이 사람들은 모두 불타서 죽고 끝나겠지만

'나는 평생 감옥에서 썩히겠구나.'

'그렇게 내 인생은 끝나겠지'라는 생각에

망설여졌고, 분통이 터지고, 가슴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여태껏 이 가족들 때문에

내 인생 몇 년 동안 노예처럼 그곳에서 갇혀 썩어 청춘을 다 바쳤건만, 이 사람들에게 가진

나의 분노심으로 저지른 범죄 때문에

감옥에서 썩혀있을 내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니

인생 처참했다.

'과거도, 현재도인간들 때문에

내 삶 전체가 시궁창이 되겠구나.'


정신 차리고 다시 생각해 봐라며

내 뺨을 때려보고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났다가, 머리를 쥐어 싸매고.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라이터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어느 날 정말로 내가 화병이 오고

미쳐서 이 사람들을 다 죽일 거 같았다.



도망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지역에서 멀리.

되도록 빨리 이사를 해야 했다.


어디를 가야 할지 생각하다가

내가 살 곳은 대구로 정했다.

호텔에 싸둔 소박한 짐을 들고 대구로 왔다.

부동산에 가서 여기저기 방을 보러 다녔다.

이제 새롭게 다시 적응해야 할 풍경들과

낯선 사람들, 낯선 거리. 새로운 출발

걱정되기도 했지만

'다시 시작하면 돼! 아직 젊잖아 늦지 않았어,

느낌이 좋아' 라며 가슴이 두근댔다.


집을 구할 때는 제일 저렴한 방으로 구했다.

1층집이었는데 원룸빌라도 아니었고,

그냥 골목가에 상가에 붙은 이상한 구조로 되어있는 집이었다. 원룸통로에는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오는 것도 없었고, 문도 없었다.

방은 좁고, 화장실은 춥고 여자가 혼자 살기에

위험한 구조였지만 저렴한 보증금, 월세였기에

나는 그곳을 택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생활을 이어나가야 했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다.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자신이 없었다.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몸도, 마음도 아니었다.



그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와서 지내면서

나에게 그 시간들은 가혹하고 살인적인 계절이었다 나에게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생존의 문제였다.

이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까, 사회진출에 대한 공포, J에서의 기억들, 가족들의 죽음.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자신감은 어디에도 없고

대구에 온 후로 잇따른 자살시도, 자해가 시작되었다.

버릇처럼 손목을 긋고 있었다.

병원비도 만만치 않았던 터라 잘 가지 않았다.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화장실을 가는 게 무서워서 마시지도, 먹지도 않았다.

걸핏하면 119, 경찰관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러다 동사무소, 자살예방센터랑 자연스레 연락이 닿았고 나는 의료급여 1종, 기초수급자로 지원받게 되었다. 장기간 입원하면서 내 주치의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oo 씨,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당분단 아무것도 뭘 하려고

하지 말고 편하게 계세요."


방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심장에서 시냇물이 줄줄 흐르는 느낌이다 온몸이 나른하다. 약 때문인가 자살할 생각도 귀찮다. 그런데 그만 울고 싶다 자꾸 눈물이 나온다 J 때문에도 그렇고 가족 때문도 그렇고.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근원적으로'어 차피 죽을 인생,

재로 없어질 거 이렇게 지독하고 힘든데 왜 참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도저하 찾을 수가 없다.

나는 그곳을 떠나 대구에 와서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거 같다. 아직도 모든 게 슬퍼 보인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닌 거 같다 언제쯤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이 가능해질까?

한 번도 나를 위해서는 최선을 다한적 없는 내가 최선을 다하는 날이 오기는 할까

지금도 나는 나를 그냥 방치해 두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고를 낼까 봐, 치료를 받으려 병원에 들어왔고

약도 꼬박꼬박 먹고 이제는 밥도 잘 먹고 샤워도 잘하는데 언가 나를 감당해 내기가 힘들어서 방치해두고 있는 거 같다. 어떤 감정들을.

J에게서 벗어났는데 왜 난 해방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오히려 왜 더 힘들어졌을까

그냥 이런저런 생각들이 다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식물이 되고 싶다.

사람보단 약이 강력한 힘과 실질적인 위로가 된다. 말도 필요하지 않다. 내가 원할 때 나를 재워주고 그치게 해 주고 아프게 해 주니까 나한테 약은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