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헤어진 이유

by 티보치나



2023년 일기

어쩌면 나는 엄마아빠의 죽음보다

가족들 간의 갈등으로 매시간 온몸이 긴장되고 이상해 진 거 같다.

가 슬퍼하는 모습을, 힘들어하는 모습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지냈다.

목소리톤, 억양도 맘에 안 든다며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지적했다. 나는 움츠려 들었고, 점점 말수가 적어졌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고, 그런 모습으로 변해갔다. 심지어 내가 듣고 싶은 노래도 듣지 못했다.

나는 자우림, 김사월, 새 소년, 선우정아, 백아, 오아시스 같은 노래를 좋아했지만 중2병 걸린 사람 같다고 듣지 말라고 했다. J의 취향에 맞게 음악을 듣게 했다. 음악을 전공했던 나는 유일하게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방법이 음악이었기에, 내가 듣고 싶은 노래가 생길 땐 밖에서 몰래 듣고 집에 들어갔다.

엄마 아빠가 죽고 나서도 J가족들은 힘들면 밖에서 풀고 오라고, 여기서 힘든 티 내지 말라고 했고 J도 억지로라도 웃어달라고, 우울도 옆에 있는 사람에게 옮는다길래 나는 밖에서 혼자 자살예방 상담에 전화해서 울분을 토하고, 울고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들어가서 웃으며 지냈다.


'이건 아닌데.. 헤어지고 여기서 떠나야 할 거 같은데' 싶었지만 생각과 마음은 따로 놀았다.

그리고 나는 J를 믿었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20대 청춘을 여기서 다 바쳤기에 지금 와서 헤어진 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나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랐고, 딱히 어디서 받을 수 있는 도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어려워졌다.

난 그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건지, 계속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사실은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는데. 조언이 필요했는데.


무리 안에 갇혀있구나

나는 새장 안에 갇혀있구나


그들 안에서 완전히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구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속박 속에, 그들의 울타리라는 말뿐인 그 울타리 안에서 아니, 밖에서 난 혼자만 맴돌고 있었다. 결국은 내가 미쳐가고 있었다. 스스로 핑계를 대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었다.

언제나 들어줄 내 일기장들만 가득했다.

나중엔 그 시간마저도 사라졌다.

떳떳하게 내 부당한 권리를 얘기할 자신은 없는 내가 혹시나 미움받을지 않을까, 버려지지 않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견뎠다. J와 독립할 날을 기다리면서.


어느 날 H가 어쩐 일인지 나를 카페로 불렀다.


"오빠 시험 합격한 거 알지?

네가 수고해 준 덕이 크다 고마워

여태껏 우리 가족들 챙겨준 것도 고맙고."


몇 년 동안 같이 살면서 그렇게 살갑게 이야기해 준 건 처음이었다. 내가 이곳에 제일 처음 왔을 때 빼고는.


보지 못했던 다정함에 당황했지만 대화를 이어갔다.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오빠가 고생 많이 했죠.."라고 대답했다.


"oo야, 네가 먼저 오빠한테 헤어지자고 말하면 안 되겠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솔직히 말할게. 네가 우리 집 들어와서

나 같은 성격 가진 사람 밑에 있으면서 고생한 거 우리 식구들 다 알아. 모르는 거 아니야

근데 우리 현실을 직시하자.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는 거야. 오빠는 널 만날 이유가 없어 더군다나

넌 우울증까지 있잖아, 여기서 편하게 먹고 자고 다하는데 뭐가 문제길래..

암튼, 오빠는 앞으로 미래가 밝은 사람이야. 그런데 넌.. 아니잖아. 네가 뭘 할 수 있어?

내 밑에서 일하기도 불편하다고 하고.

만약에 네가 우리 오빠 아이를 가진다고 해도

아이 봐줄 부모도 없고

우리 엄마가 다 봐줘야 하잖아 난 그 꼴도 보기 싫고

난 오빠가 더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는데 몇 년 동안 같이 지내온 그 세월이라는 핑계 때문에 너랑 계속 만나는 거 못 보겠어."



주 7회 14시간 근무, 출근 전 아침밥 하고

전체 집 청소하기 퇴근 후 공장 가서 작업하기

쉬는 날이 생기면 J아버지 농장 일 돕거나,

어머니 뒤치다꺼리 하기.

월 250만 원에서 250만 원 모두 J에게 들어가고

나는 50만 원으로 생활.

J에게 준 200만 원은 H와 J가 그렇게 하자고 했고,

그 돈으로 J의 생활비, 차량 유지비, 보험료,

우리가 결혼할 때 필요한 돈으로 저금했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헤어지라고 한다.

시험이 합격해서 더 이상 나를 만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심정은..

말로 표현할 단어가 없다.

나는 힘겹게 말을 꺼냈다.


"오빠랑 다 얘기한 부분이에요? 오빠가 언니 시켜서 나랑 헤어져달라고 얘기했어요? 왜 언니가 이런 얘길 해요? 그 문제는 오빠랑 내문제인데."


"오빠가 너를 진짜 사랑하는 건지 잘 모르겠대.

마음 약한 오빠는 아마 너한테 먼저 헤어지자고

말 못 할 거야 그러니까 네가 먼저 얘기해 주라."


라고 말하면서 현금봉투와,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 명품 액세서리를 내밀었다.

새것도 아니었고 H가 평소에 들고 다녔던 것들이었다.


"500만 원이야. 이건 작지만 선물이고, 이거 다 팔면 괜찮은 월셋집 얻을 수 있을 거야."


"이건 오빠랑 제 문제 같은데요."


"오빠도 같은 생각하고 있어 너를 오랫동안 만나서 미안해서 그런 거지."


"오빠가 시키던가요? 언니가 나한테 이렇게 먼저 얘기하라고."


"아니 그건 아닌데, 네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는 게 우리 서로에게 다 좋을 거 같아서.

너 수고한 거도 많고 힘든 거 알아 이해해 그래서 내가 이렇게 챙겨주잖아. 넌 강한 아이니까 어딜 가도 잘 살 거야."



어이가 없는 걸 넘어서서 어떻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세상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는데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머리는 새하얀 백지장이 되고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나는 이 낯선 곳에서 J만 믿고 따라와서

오랫동안 혼자 싸워야 했다. 아니, 싸운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맞기만 했다. J에게도 항상 서운함이 있었지만 한 번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의심한 적은 없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여느 다른 연인과 다름없이 데이트도 하고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라고?

결혼은 없던 일로 하자니. 어떻게 없던 걸로 하지?


통보도 본인이 아닌 여동생한테 듣다니,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이야기인데 이건.

그리고 딸랑 500만 원? 내가 여기서 일한게 몇 년인데. 내가 못 받은 돈이 얼마이며,

내가 이 가족들한테 어떻게 했는데 500만 원? 명품가방도 본인이 가지고 있던걸 가져와?

나는 입술이 부르르 떨면서 감정을 진정시키려

애를 쓰면서 간신히 한마디 했다.


"오빠랑 저랑 둘이 얘기 나눌게요. 그리고 제가 언니밑에서 일하면서 받아야 할 노동값은 500이 아니에요. 오천이 넘는 돈이 에요. "

최대한 예의를 차리면서 자리를 떴다.

내 앞에 있는 뜨거운 커피를 얼굴에 붓고 쌍욕을 했어야 마땅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J에게 연락했다. 집이라고 해서 집으로 찾아가서

H와 했던 대화내용을 다 말해줬고,

나랑 헤어지고 싶다는 게 진심이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한다.

계속 집요하게 물어도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울었고 무슨 말이라도 해봐라고 소리를 쳤다.


"미안해 내가 시험을 합격해서 너랑 헤어지자고 하는 게 아니라.. 네가 우울증 약 먹고 가끔씩 꼭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고 우울해하는 네 모습 보기가 힘들어졌어 네 우울에 내가 지쳤어."


"오빠, 난 1년 사이에 엄마아빠를 자살로 잃었어

그때 오빤 어딨었어? 내 옆에 있었어?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런 일을 겪었는데 단기간에 정상으로 생활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그래도 나는... 나는 힘들어도 여기서 티 안 내려고 무진장 애썼어 가게 일도 열심히 하고 매출도 엄청 신경 쓰고 어머니한테도 잘했고 나는 당당해 나는.. 나는 최선을 다했어

여기선 무조건 밝게 지내려고 정말 노력했어

내 노력은 생각 안 해본 거야? 난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면 안 되는 거야? 나는 애도기간도 가지면 안 돼? 오빠, 나도 진짜 노력하고 있어"


말하는 도중에 J는 말을 끊고 말했다.


"나 성공하고 싶어 oo야 돈도 내동생보다 훨씬 더 많이 벌어야 해 이제껏 내 가족들한테 받기만 했지, 장남인데

해준 게 하나도 없어

이제는 내가 챙기고 싶어 가족들을.

우리 결혼 없던 걸로 하자.

안정적인 사람이랑 다시 시작하고 싶어."


그럼 난 어떡하냐고, 여태껏 오빠 뒷바라지하고

오빠 가족들한테 했던 내 노력들은 아무것도 아니냐고, 오빤 나한테 그럼 해준 게 뭐가 있냐고 울부짖으면서 소리 질렀다.

J성격답게 냉정하게 말했다.


"내가 동생한테 말해서 퇴직금 많이 챙겨주라고 할게 미안하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대고,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뜬금없이 엄마가 죽었던 현장이 떠오르면서

시신을 치웠던 내 손에서 피가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빠가 아파트 꼭대기에서 추락하는 모습이 보였다.

모든 걸 잃어버렸다. 모두 지켜내지 못했다.


모두 다 떠나갔다 나에게서.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붙잡을 수 있는 게 아님을.

작년에는 내게 특히나 견디기 힘든 해였고,

나는 수도 없이 죽음을 염원했다.

하지만 J가 있어서,

나를 사랑해 주고 나를 바라봐주는 J가 있어서 견뎠다.


하지만 폭력적인 계절은 멈추지 않았다.

살다 보니 내 삶이 한 편의 영화는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 같은, 그런 운명으로 태어난 것 같은

최악의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나 고통이란 더 극심한 고통에 순위를 내주곤

'어디 한번 이겨내 보시지'란 듯이 하며

잠잠해지곤 한다.


결국은 너도 떠나는구나

엄마도, 아빠도, 당신도.

나에게 어떠한 짐을 쥐어줘도

나는 떠나지 않았는데


결국은

새드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