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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Nov 06. 2021

상돌할매

상돌할매2

상돌 할매 2     

아이가 6개월이 되었을 무렵.

이유식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침이 흘러 목에 두른 손수건이 흥근하니 젖은 딸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살면서 그런 추위는 겪어 본 적 없었다.   

  

시골에 들어온지 2년여 되어 갈 때였고 컨테이너에서 처음 맞는 겨울이다.

신랑은 부산사람, 나는 진주 사람, 두 곳 모두 온화한 날씨를 가진 곳이라는 사실을 여기에 와서 알았다.


나뭇잎 하나 없는 나뭇가지들 사이로 부는 바람은

 매서움을 넘어 공기에 자욱이 내려앉아 뼛속까지 냉기를 느끼게 했다.     


컨테이너 안은 두 칸으로 나눠져 있었다. 


나름 방과 거실의 경계라 하겠다. 거실이라 부르는 곳은 방화문을 열고 들어가면 갑자기 보이는 싱크대 한 칸, 작은 냉장고 하나, 식탁 다리를 잘라 만든 앉은뱅이 식탁 하나, 얻어다 놓은 장롱 하나, 발 디딜 틈이 없는 거실 칸을 지나 작은 방문을 열면 사방이 박스로 둘러 쌓여 벽이 보이지 않는 방 한 칸이 다였다.   

  

처음 사는 시골살이 무슨 짐이 이리도 많은지 짐들에 파묻혀 살았다.     

후에 그 컨테이너에서 나온 짐들을 옮기는데 열흘은 족히 걸렸다.     

어쩌면 층층이 쌓인 그 짐들이 겨울 외풍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8월의 더위는 살 가죽을 벗길 기세였다면 1월의 추위는 눈알을 빼갈 듯했다.     

늦은 해가 뜨고 다시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많은 일들을 해야 했다.     


일단 빨래는 물이 그나마 나오는 시간 오전 11시쯤, 밥은 밥 먹기 바로 직전, 전기밥통에서 나오는 미세한  열기가 그나마 밥하는 실내라는 느낌을 줬다. 

손으로 빨아둔 두꺼운 겨울 바지는 마르기도 전에 얼어붙어 동태처럼 되면 안과 밖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 겨우 말랐다.     

아이 기저귀를 갈아주려 하면 물티슈는 얼어서 떨어지지도 않는다.

두루마리 휴지로 아이 엉덩이를 닦고 얼어있는 물티슈를 이불 아래 미지근한 곳에 밀어 넣어 녹인다.     

전기밥솥에서 밥하는 냄새가 나면 뿌연 김이 서린 안경 너머 허연 하늘이 보인다.     


눈이다.

눈 내리지 않는 도시의 도시 인간으로 

살아온 두 인간은 잠시 눈이 내린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 낭만적인 도시인간이다.


눈이 내린 뒤 해가 보이지 않으면 우린 여기에 갇히게 된다는 약간은 흥분된, 혹은 오히려 안도한다.     

빨래는 안 해도 되고 바깥은 나가지도 못하니 딸아이라도 잘 자주는 날에는

 낮부터 술 취한 산짐승 두 마리였다.     


흐린 낮을 보낸 그날 밤에는 틀림없이 폭설이 내렸는데      

간밤에 깬 아이의 울음이 멈추면 사방이 조용해져 ‘사사삭 사사삭’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며칠 동안을 사람이라고는 

말 안 하는 신랑과 말 못 하는 아이뿐

아무도 만나지 못한다.     


봄 여름 가을은 그래도 주위에 밭이나 논에서 일하는 사람 두서너 명은 만나고 살았었는데

겨울은 세 식구만 지구에 사는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볼 수가 없다.     

참..... 긴 겨울이다.  

   

‘집에 있소?’     

사람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상돌할매가 턱까지 두터운 목도리를 감고 컨테이너 문을 올려보고 있었다.

뚜거운 양말 싣은 발로 슬리퍼를 싣고 보니 발바닥에  얼음물이 스며든다.    

 

‘할머니 추운데 어쩐 일로요?’

‘눈이 와서 집에서 꼼짝도 못 하고 앉았다가.....’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에도 할머니는 미동도 없다.     

‘걸어오셨어요?’

‘내가 아직은 날래’

‘밭에 일도 없으실 텐데’

‘위에 할매가 왔다고 얼굴 한번 디다 보려고 가는 길에 들렸다’

‘아.... 윗집 할머니 오셨나보내요 눈이 이렇게 오는데’

‘그러니께 오라고 하니 얼굴은 한번 비춰 봐야지’     


손을 등허리에 올리고 오르막길로 할머니는 올라갔다.

윗집 할머니는 상돌할매의 사촌 윗동서쯤 되는 할머니셨는데 진주에 계시다가 가끔 시골집으로 내려오시는 분이셨다.     


방에서 딸아이 우는 소리가 작게 들려 돌아선다.

눈이 다 녹지 않은 돌담 위에 요구르트 한 줄, 팥고물이 묻은 떡 한 덩이가 올려져 있었다.

할매가 올려두고 간 것이다.     


방안에 아이는 안아주자 겨우 울음을 멈췄다.

토닥토닥거리다 보니 아이는 다시 잠이 들었다. 

할매가 집으로 내려가시는 길에 잘 먹겠다고 인사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살짝 팔을 뒤틀어 아이를 이불 위에 눕히자

‘앙~~~ 아~~ 앙~~’

아이는 눈을 희번덕 뜨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상돌할매는 이런 현상을 두고 

‘뒤꼭띠기에 센서가 달렸네’

라고 하셨다.     


내가 센서 달린 아이를 낳다니....     


안았다가 눕혔다가를 서너 번 하고 난 뒤 이불 위에 눕히는 데 성공했다.     

문을 살짝 열었더니 내려가는 발자국이 길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할매가 걸어가버렸다.   

  

뒤에 만나면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고 보니 그 인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할매집은 내리막길을 걸어 다시 오르막길을 걸어 500m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총총걸음으로 그 길을 걸어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는 막연히 잘 먹겠다는 고마움 정도의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생각해 보니      

집을 나설 때 요구르트 한 줄, 떡 한 덩이를 챙기며 

나를 생각했을 것이다.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흔하지 않은 마음으로 할머니는 내게 요구르트 한 줄, 팥떡 한 덩이를 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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