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것들이 언젠가 날 울리더라도
아들러는 생애 초기의 기억들, 즉 '초기기억(early recollections/memory)'이 개인의 정신세계를 표상한다고 보았다. 인간은 과거의 사건을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기억된 사건은 해석이나 가정이 덧붙여졌거나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어느 경우든 자기 자신을 비롯한 세계와 삶에 대한 관점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초기기억은 대부분 소실, 혹은 이별과 관계되어 있다.
최초의 기억은 세 살 즈음, 자전거를 도둑맞았던 일이다. 유년시절 첫머리의 빨간 벽돌집 셋방. 어느 날 오후, 나는 엄마와 함께 침대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은 어둑했지만 밖은 환했다. 그때, 친한 동네 언니와 아줌마가 잃어버린 나의 세발자전거를 타고 우리 집 대문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제는 흐릿한 기억이지만, 그 장면을 떠올리면 버거운 상실감과 쓸쓸함이 밀려온다. 어쩐지 엄마의 말이나 표정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외롭게 느껴지는 걸까. 그 외로움을 곱씹다 보면 홀로 텔레비전의 파란 조정화면을 바라보던 어린 나의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실제 기억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억처럼 재생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그 장면을 반복 재생했다.
다섯 살 무렵 우리는 시골로 이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생이 태어났다. 봄이면 배꽃과 아카시아 향이 진동하고, 산기슭에 작은 우물이 있는 그야말로 깡촌. 거실이랄 것도 없이 좁다란 복도에 좁은 방과 더 좁은 방을 문 하나로 갈라놓은 집에 살았다.
엄마는 소위 쓸모없는 장난감을 사달라는 보챔을 들어주지 않는 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들어주지 못한 것일 테지만 말이다. 그때의 나는 철없는 다섯 살이었고, 기어코 헬륨가스가 든 풍선을 얻어낸 날이었다. 그날 저녁, 아빠의 마중을 나가게 되었다. 한참을 가지고 논 풍선은 무게추가 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왠지 집에 혼자 두기는 싫었다.
어슴푸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한 손에는 빨간 풍선을, 다른 한 손으로는 엄마의 손을 쥐고 서있었다. 그때, 무게추가 없는 풍선이 어느샌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와 가볍게 날아올랐다. 급하게 손을 뻗어봤지만 실 끝조차 닿지 않았다. 그저 무심하게 너울거리며 보랏빛 하늘 속으로 멀어져 가던 풍선의 모습. 점점 작아지는 그 붉은 점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던 어린 날의 나.
그 순간 ‘이별’은 붉은 점으로 날아와 내 영혼 한가운데 뿌리내렸다.
나에게 세계는 줄곧 약속된 이별과 예기치 못한 소실로 가득 찬 곳이었다. 더더구나 나는 너무 사소한 것들을, 너무 쉽게 사랑해 버렸고, 그렇게 사랑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나를 울렸다.
자라나는 불안 속에서 풍선을 놓쳤던 어린 내가 떨고 있었다. 충분히 위로받지 못한 아이는 손바닥이 파이면서도 쥔 걸 놓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자주 그리운 것들을 생각한다. 엉덩이 부근에서 특이한 향이 나고 사인펜으로 볼터치를 그려 놓았던 햄스터 인형, 이제는 영영 사라져 버린 시골 동네의 풍경들, 이를테면 아빠와 뛰놀던 우물가와 탱자나무가 자라던 골목길 따위의 것들을 잊을세라 자꾸만 그려보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의 걸음걸이, 표정, 나만 알아보던 작은 습관들을 바래고 희미해질 때까지 곱씹곤 했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언제나
소중한 무엇에 걸었던 마음과 기억의 소실,
그리고 남겨진 존재들의 쓸쓸함이었다.
그래서 mp3를 잃어버렸을 때보다 보관함에 모아둔 문자메시지가 날아갔을 때 더욱 서글프게 울었다. 좋아하던 그 애가 준 것은 사탕 껍질조차도 버리지 못했다. 무심코 주워 들었던 못난 조약돌이 자꾸만 눈에 밟혀서 돌아가 주워와야 했다.
그렇게 이별하고 상처 입기를 반복하는 동안 내 영혼에 찍힌 붉은 점, 그것은 조금씩 번져 나의 세계 전체로 스며들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순간에도 붉은 점은 내게 소실과 이별을 상기시킨다. 다른 시공간에서 3자가 되어 그 장면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득한 그리움이 밀려오는 것이다. 때로는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에도 문득 가슴 저릿한 비감이 스친다.
그리고 그 밀도 높은 슬픔으로부터 사랑을 배운다. 모든 순간은 곧 이별의 순간이기에 더 소중해진다. 순간을 세밀하게 바라볼수록 사소한 것들을 사랑하게 된다. 어떤 사물도, 어떤 풍경도 완전히 똑같을 수 없다는 걸 눈치채기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존재는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오히려 신비롭고 애틋하다. 쉽게 상처받고 부서지는 영혼을 닮았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다정한 시선은 결국 나의 영혼으로 향한다.
사랑한 것들이 언젠가 나를 울리고 떠나더라도, 거기에 걸어두었던 연약한 마음들은 내게로 돌아온다. 더 단단해져서, 또 다른 무언가를 사랑하기 위해 내 안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나를 조금씩 더 사랑하게 된다.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기에 더 사랑하게 된다.
영영 소실되지 않고 이별하지 않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