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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일간의 동행 그리고 이별...(4)

아빠의 회고록을 써주기로 약속을 하고...

"동해바다는 늘 푸른데..."

꿈을 꾸는 듯 요 며칠사이 벌어진 황망한 일들은 평온했던 나의 생활과 관심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고 말았다. 

아버지와 엄마를 포항으로 내려보내드리고부터 시작된 마치 몽유병 같은 불면증과 불안함은 오늘 밤도 자다 말고 새벽에 일어나 쿵쾅대는 가슴을 물 한잔으로 겨우 진정시켜 달래고 거실에 멍하니 홀로 앉아 있게 만들었다. 자기야! 자다 말고 일어나 이 시간에 뭐 해? 잠을 좀자야 내일 출근하지 편하게 생각해라 어? 집사람이 눈 비비며 일어나 나를 또 위로한다. 어 그냥 좀 잠이 안 와서 그래 답답하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러는지 집사람도 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덤덤하게 엉뚱한 말로 서로를 위로하고 어색하게 챙기고만 있었다. 


그제 광명역에서 부모님을 기차에 태워 내려보내드리고 쓸쓸하게 손을 흔들며 돌아서는 나에게 집사람은 너무 걱정하지 마 괜찮아지실 거야! 하고 안쓰러운 위로의 말을 전했다. 순간 며칠을 억지로 부모님 눈치를 보며 참았던 서글픈 마음이 터져 나와 한 참을 주차장 차 안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집사람의 위로를 받으며 나약하게 바보처럼 울었던 모양이다. 여전히 내 머릿속은 "아름다운 마무리"란 말이 무한재생되며 반복되고 있을 뿐이었다. 어떤 집이든 늘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갈등도 있고 힘든 일 좋은 일이 반복되기 마련일 테지만 최근 몇 달간 이어진 전에 없던 큰형과 부모님 간의 심한 불화와 극한에 치달은 갈등의 상황이 더 쓰리고 아프게만 다가왔다. 늙고 힘없어 자식들에게 조차 존중받거나 대우받지 못하고 무기력감으로 힘없이 시들어 가는 내 부모님의 뒷모습이 잊히지 않아 계속 며칠째 마음을 후벼 파는 듯 나의 일상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2001년 군대를 제대하고부터 시작되어 수십 년간을 이어져온 매일 한 번 이상의 부모님과의 전화통화와 목소리를 듣던 하루의 일과와 같은 습관은 이제 하루에 세 번으로 횟수가 늘어나 마치 집착하듯 심하게 바뀌어 버렸고 그렇게 나는 일상의 평정심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항암치료를 해보기로 마음을 먹으셨고 아들과 철석같이 약속도 해두었지만 혹시나 고향으로 내려가 주변분들의 영향으로 또 아버지의 마음이 바뀌면 어쩌나 고집을 피우시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과 우려로 마치 정서불안증세가 생길 정도로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였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나 했는지 집사람은 그렇게 걱정되면 주말에 다른 일정도 없는데 애들하고 바람도 쏘일 겸 경주도 가보고 포항에 갔다 올까?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바닷가도 가보고 하면 좋잖아? 회도 먹고 어때? 


고맙게도 집사람은 평소답지 않게 불안증세 같은 모습을 보이는 나를 위해 기꺼이 아이들을 챙겨 포항으로 가보자고 제안을 해주었고 그렇게 금요일 저녁 밤을 쉼 없이 달려 포항으로 한 달음에 내려왔다. 사실 부모님과 큰형과의 심한 갈등으로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진 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있는 상황이라 굳이 불편하게 어색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고향집을 두고도 가지 못하고 포항모처에서 잠을 자고 아침이 되어 부모님이 머물고 계시던 막내삼촌집으로 가서 차로 모시고 평소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바닷가로 가서 맛나다고 잘 드시던 양포항 아귀탕도 먹을 겸 바람도 쏘일 겸 길을 잡았다. 


부모님을 모시고 동해안 푸른 바다 해안길을 시원스럽게 달리며 많은 생각을 하였고 매번 무덤덤하게 보이던 포항바다가 정말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다가왔다. 부모님을 모시고 달리는 지금의 순간이 영원할 듯하였지만 이제는 몇 번을 더 이리 할 수 있을지 하는 마음과 그간 무심한 듯 살아온 내가 너무 후회스럽게 다가왔다. 부모님을 모시고 자주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고 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아버지 어디 가고 싶으신데 있어요? 뭐 아무 데나 너 가고 싶은 데로 애들 좋아하는 대로 가라 날도 추운데 너무 멀리는 가지 말고... 언뜻 포항 하면 떠오르는 해돋이 명소 호미곶을 가보면 어떨까 싶어 길을 잡으며 제안을 했더니 가보자고 하신다. 


해안길을 따라 달리기를 30여분 그렇게 도착한 호미곶 바다는 오늘따라 유난히 푸르고 맑아 보였다. 겨울이지만 파도도 그리 높지 않아 잔잔하면서도 세상 고요하고 평온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아이들도 한 번도 올라보지 못한 호미곶 새천년관에 들어가 이것저것 전시물을 돌아보고 맨 위층 전망대에서 잠시 아이들과 사진도 찍고 한 참의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모처럼 나온 바닷가가 부모님도 싫지는 않으신 얼굴이다. 하지만 엄마는 오늘도 얼굴이 많이 어둡다. 차마 아픈 아버지에게 내색은 하지 못하고 서울에서 내려와 바람을 쏘여주려 애쓰는 아들이 안쓰러우신 듯 무표정한 얼굴뒤로 슬픔을 감추고 묵묵히 따라주기만 하신다. 


아버지와 둘이 앞뒤가 시원스럽게 트인 전망대에 우두커니 서서 어색하지만 사진도 몇 장 찍고 한 참을 황금빛 햇살이 넘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바다 위에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듯 세워진 "상생의 손"에는 손가락마다 갈매기가 자리를 틀고 평화롭게 앉아 있었다. 아들아! 아파보니 세상이 참 새삼스럽게 보이네! 내 나이 팔십이 내일모레인데 말년에 팔자가 참 기가 막힌다. 항암치료가 다들 힘들다고 하지 말라고 하는데 꼭 하는 게 맞을까? 순간 덜컥 걱정이 밀려왔다. 혹여나 며칠새 마음이 변하신 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말이다. 그래도 항암 관련 상담받을 때 김유정 교수님 말씀처럼 요즘은 약도 많이 좋아지고 의술도 좋아져서 해보는 것이 좋다고 했으니 해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우려반 걱정반으로 덤덤하게 의견을 말씀드리자 그래 그럼 한 번 해보지 뭐!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이 걱정할까 씩 웃어 보이신다. 


아버지는 멀리 푸른 바다를 보시며 퉁명스럽게 말을 이어가신다. 내 나이 팔십도 이제 얼마 안 남았네! 그래도 옛날로 치면 그리고 환갑도 못 보고 돌아가신 내 아버지에 대면 나는 참 오래 살았다마! 곧 죽어도 여한도 없고 그렇다. 네 엄마가 걱정이라 그렇지... 왜요? 아버지 좋은 시절인데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지요... 팔순잔치도 꼭 하셔야 되고요. 엄마생각도 좀 하시고요 그때까지 내가 살 수나 있으려나 모르겠다야? 걱정 마세요. 이제는 매사 편하게 생각하시고 폐암과 같이 친구처럼 늙어간다 생각하시고 편하게 지내시면 되지요. 아버지 팔순잔치 때 제가 아버지 회고록을 꼭 써서 책으로 만들어서 선물할 테니 걱정 마세요...


자신의 인생회고록을 써준다는 막내아들의 약속과 말에 기분이 많이 좋아지신 듯 아버지는 그제야 환한 얼굴로 그래주면 아비는 너무 좋지! 고맙다. 아들아! 고맙기는요 무슨! 남들것도 해주는데 아버지 거는 당연하게 해 줘야지요... 대신 아버지 인생회고록을 쓰려면 아버지한테 제가 물어봐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하나하나 정해서 제가 물어보면서 정리 한번 해 볼게요. 한 참을 아버지와 전망대에 서서 이런저런 회고록에 들어갈 이야기를 하고서 찬바람을 피해 맛난 아귀탕으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내내 겨울 찬바람이 조금 열린 차창으로 밀고 들어와 나에게 정신 차리라 아들 노릇 똑바로 하라 채찍질을 하듯 얼굴을 때려 댔다. 그래 아버지의 회고록을 내가 꼭 잘 정리해서 팔순잔치 때 선물로 드려야겠다. 반드시 그래야겠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약속을 하고 차분히 내 아버지 인생회고록을 쓰기 위한 준비와 본격적인 대화준비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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