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iPhone) 4S 여행기

서부 사하라에서 서울까지

by 플렉시테리언

“진아, 너는 달리기도 좋아하는 데, 괜찮은 스마트 워치 살 생각 없어?”


“응, 내가 물욕이 별로 없어서. 지금 있는 스마트 워치도 충분한 것 같아.”


물욕이 없는 편이다. 한때는 최신 스마트 기기에 관심 갖기도 했는데, 이제는 보다 실용적으로 바뀐 것 같다. 회사에서 준 신형 휴대전화가 있으니 개인용 전화기는 저가형 모델을 중고로 샀고, 누나가 안 쓴다며 준 스마트 워치와 아버지께 선물로 드렸지만 쓰지 못하게 되어 돌아온 무선 이어폰을 쓰고 있다.


이런 내가 집착했던 유일한 스마트 기기가 있었는데, 내 첫 스마트폰 “아이폰(iPhone) 4S”였다.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될 무렵, 무슨 이유에서인지 스마트폰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패드(iPad)는 한국에 출시되기 전, 미국에서 첫 번째 모델을 사 올 정도로 열정적이었는데, 스마트폰은 어떤 이유에선가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서부 사하라(UN 서부 사하라 선거지원 임무단 - MINURSO) 파견되기 얼마 전, 다니던 대학에서 스마트 캠퍼스 구축의 일환으로 스마트폰 구매비용 일부를 지원해 준다는 말에 아이폰 4S를 사게 되었다.




당시 수도 격인 라윤 (Laayoune, El Aaiún)을 제외하고 서부 사하라에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모로코 통제지역인 서부 사하라 서쪽 지역에선 모로코 통신사의 심(Sim) 카드를 구매해 현지 통화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외국인에게 별 소용없는 일이었다.


통신사 네트워크 연결 없는 스마트폰은 쓸 수 없는 기능만 많은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 그림의 떡 덕에 외로운 사막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주로 카메라, 음악 재생, 메모장, 달리기 기록 정도만 사용했는데, 그 정도도 충분됐다.


정찰 중에 중요한 내용이나 이국적인 장면을 빠르게 촬영할 수 있었고, 뜨겁고 긴 정찰 동안 차량에 음악을 연결해 지루함을 식힐 수 있었다. 사막에서 슬슬 시작한 달리기도 기록했고, 정찰 중 중요한 내용을 적어두거나, 혼자만의 시간이 많은 사막에서 불쑥불쑥 드는 생각을 끼적이기에도 좋았다. 사실 여기에 쓴 “사하라 로맨스”도 당시에 메모장에 스케치해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꺼내 쓴 게 많다. 그렇게 아이폰 4S는 늘 나와 함께였다.




사막에서의 시간을 버티게 해 준 동반자 같은 물건인데, 귀국 직전 내 아이폰 4S를 잃어버렸다. 1년 하고 2주의 파견을 마치고, 귀국하기 2-3일 전의 일이다.


임무단 이곳저곳에서 귀국 절차를 밟고 숙소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내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휴대전화는 항상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 다녔는데, 택시가 출발하는 순간, 주머니가 허전함을 느꼈다. 내리려 일어날 때 벙벙한 전투복 바지에서 휴대전화가 흘러나왔던 것이다. 택시 뒷 유리에 대고 다급히 손짓을 해보았지만, 택시는 눈앞에서 빠르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휴대전화가 없으니 차량 번호 사진을 찍을 수도, 받아 적을 수도 없었다. (아랍어로 적혀 있어 읽지도 못했다). 설사 차량 번호를 알았더라도, 서부 사하라에서 그 택시를 수배해 휴대전화를 찾는 건 불가능했을 게다.

그렇게 사막에서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한 내 아이폰 4S를 잃어버렸다.




귀국한 지 2주쯤 되었을까. 아이패드로 서부 사하라에서의 사진을 넘겨보는데, 아이 클라우드(iCloud)에 언제 찍었는지 모를 사진 하나가 보였다. 서부 사하라 현지인의 집이나 텐트 실내 정도로 보였는데, 사진이 흔들려 초점도 맞지 않고 어딘가 이상했다.


‘대체 이 사진은 언제 찍은 거지?

정찰 중 현지인 텐트를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인가?

술에 취해 찍은 사진인가?

.

.

앗! 누가 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구나!'


그랬다. 누군가 서부 사하라에서 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었고, 클라우드 기능 덕에 아이패드에 그 사람이 촬영한 사진이 연동된 것이었다. “아이폰 찾기”에 들어가 보니, 라윤 인근 서부 사하라 어딘가에 내 휴대전화가 있는 걸로 나왔다.


바로 원격으로 휴대전화를 잠갔다. 경고음을 울리게 하고 서부 사하라에 가기 전 배운 어설픈 스페인어로 메시지를 남겼다.


“a la Lakouara! Capitan Jin de Corea"

“라쿠아라로! 한국 Jin 대위”


라쿠아라는 UN 군 옵서버 (Military Observer)들이 주로 묵는 호텔이었는데, “내 휴대전화를 라쿠아라 호텔로 가져오라”는 의도였다. 호텔로 가져오기만 하면, 그래도 '내 이름을 기억하는 누군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못됐다 싶은 게, 사실 누가됐건 내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누군지도 모를 그 사람이 휴대전화를 라쿠아라 호텔로 가져오고, 호텔에 나를 아는 사람이 그걸 전해받아 다시 한국으로 보내주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시나리오였다.




어차피 찾지도 못할 거, 잃어버린 휴대전화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휴대전화를 잠가 어느 정도 개인정보를 보호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보다 6개월 뒤에 파견 오신 육군 김 중령님이 갑자기 메신저로 연락을 해오셨다.


“한 대위, 혹시 여기 서부 사하라에서 휴대전화 잃어버렸나?”


“필승! 김 중령님,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지금 임무단 본부에 회의가 있어서 라쿠아라 호텔에 묵고 있는데, 호텔 직원들이 Jin 대위 휴대전화 어쩌고 하더라고.”


“네! 귀국 직전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는데 현지인이 주워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

원격으로 휴대전화 잠그고 라쿠아라 호텔로 가져오라는 메시지를 남겼었습니다!"


“아 그랬구나. 그게 지금 라쿠아라 호텔에 와 있나 봐. 잃어버린 휴대전화가 검은색 아이폰 맞아?"


"네 그렇습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한 대위 휴대전화를 받아서 가지고 있다가 다음에 한국에 휴가 갈 때 택배로 보내줄게.



그렇게 잃어버린 아이폰 4S가 돌아왔다. 한국에서 가져가 아프리카 서부 사하라에서 잃어버린 휴대전화가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을 깨고 또 깨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런 물건을 어떻게 집착하지 않을 수 있을까?


휴대전화 교체 주기를 훨씬 넘겨 배터리와 뒷 판 교체도 여러 번. 제대 후 지구 한 바퀴를 여행하는 동안 그 모든 곳, 모든 시간을 보내고, 너무 느려져 새로운 기능을 사용하지 못할 때까지 집착하고 버텼다.


그런데, 사실 아이폰 4S에 대한 집착 = 서부 사하라를 향한 나의 그리움 자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잃어버린 사실을 잊고 지내려 해도 어떻게든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게 아닌가' 싶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가장 중요한 챕터의 매 순간을 함께 한 인생의 기록이고 증거였기에.


서부 사하라에서 서울까지 (출처: Google 지도 캡처)


아이폰 4S로 바라본 서부 사하라 Agwanit 팀 사이트 (Team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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