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태의 대표적인 세 가지 용도
수동태에서 주어는 주인공이면서 수혜자
많은 문법책이 수동태를 설명할 때, 주어가 행동의 주체가 아니기에 피동 내지는 ’ ~을 당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수동태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거 같다. 영어에서 수동태는 주어가 문장의 주인공이지만, 자기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수혜자로 만드는 경우 사용되고 있다. 수혜자의 사전적 의미는 본인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으로 주어지는 금전이나 혜택을 받는 사람을 일컫는다.
앞서 언급한 예문의 10살짜리 아이처럼 스스로 미국에 온 것이 아니라, (부모가) 데리고 온 것이기 때문에 수혜자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수동형을 사용하였다. 이런 경우 문장에서 부모를 생략해도 미국인은 부모가 데리고 왔다고 모두 그렇게 이해한다.
그럼 이번엔 '난 (어린 시절) 미국에서 성장했습니다'라는 표현을 영어로 옮기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아마 아래 이 문장일 것이다.
I grew up in the U.S.
맞는 표현이고, 실생활에서도 사용된다. 그런데, 이 문장보다 미국인들이 더 잘 쓰는 표현이 있다.
I was brought up in the U.S.
우리는 어렸을 때 자기 혼자 큰 줄 알지만, 사실 부모의 보살핌 가운데 성장한 것이다. 따라서 주어가 주인공이지만,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수혜자로 만드는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다. 이 문장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동사와 전치사 up을 같이 붙여서 사용하는 관용표현이다. 전치사에 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하게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래 표현들 모두 주어가 직접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수동형을 사용하였다.
I was brought on board last year (난 작년 이 회사에 취직됐다).
회사에서 뽑아줘야 취직이 되지, 내가 다니고 싶다고 취직이 되지 않는다. 또한 이 문장에 등장하는 on board라는 표현은 원래 배에 승선하거나 혹은 비행기에 탑승할 때 사용되는데, 회사라는 조직을 커다란 배에 비유해 거기에 승선하는 것이 취직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He was admitted to the college (그는 원하는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았다).
취직과 마찬가지로 가고 싶은 대학에서 뽑아줘야 그 대학을 다닐 수 있다. 내가 다니고 싶다고 입학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동형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
She was stood up last night (그녀는 어젯밤 바람을 맞았다).
바람은 내가 스스로 맞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바람을 맞혀야 한다. 그래서 수동형을 사용하고 있다. 그나저나, 이 표현은 영화나 미드에 자주 등장한다. 아마 이미 들어봤거나, 분명히 들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행동 주체를 모르거나, 분명치 않거나, 중요하지 않은 경우
또한 수동태는 영어에서 행동 주체를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아니면 드러내기 애매모호할 때 사용하는 표현 방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난 내일 학교가 10시에 시작한다고 들었다'라는 이 문장은 누가 내일 10시에 학교가 시작한다고 알려줬는지 분명하지 않다. 어쩌면 누구한테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분명히 그렇게 들었다. 이 문장을 영어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I was told that school starts at 10 tomorrow.
앞서 설명했듯이, 영어에서 주어는 주인공이다. 그래서 분명치 않는 행동 주체가 주인공인 주어가 될 수 없다. 누구인지 제대로 모르면서 주인공 대접을 해 줄 수 없지 않은가? 주연 배우는 누구나 다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럴 경우, 주인공인 주어를 나로 돌리는 게 논리상 맞다. 다시 말하면, ‘누구인지도 모르는 누가 말했는지' 보다 ‘누가 분명히 들었는지가’ 영어 문장에서는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또한 '말하다'라는 의미의 tell이라는 동사가 수동형으로 쓰일 경우, '듣다'로 해석해야 맞다. 이걸 굳이 '말함을 당하다'로 해석하는 것은 몹시 부자연스럽고, 이해하기도 나쁘다. 엄밀한 의미에서 누가 나한테 말해준 것이긴 하지만, 내가 주어이기 때문에 누가 나한테 해준 말은 곧 내가 듣는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듣다'로 해석해야 한다.
She was notified to pick up the book (그녀는 와서 책을 가져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You are ordered to appear in the court next Tuesday (당신은 다음 주 화요일 법정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수동형을 사용하고 있는 위의 두 예문 역시 통보를 받고, 명령을 받은 주체가 주요 포커스이다. 따라서 누가 통보를 했고, 명령을 내렸는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수동태의 주어가 사람이 아닌 경우
마지막으로 수동태의 주어가 사람이 아닌 경우도 많은데, 실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장 문을 닫다, 영업시간이 끝났다’라는 표현을 아래와 같이 말한다.
The store is closed.
가게 스스로 문을 닫을 수 없기 때문에 수동태를 쓰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중학교 영어 수업 시간 중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꿀 수 있다고 배운 기억이 나서 하는 말인데, 위의 예문을 능동태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동형인 이 표현을 굳이 능동형으로 바꾸려는 미국인들도 없고, 상호 교환의(interchangeable)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앞서 설명했듯이 영어에서 주어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매장'이 문을 닫았다는 사실이지, '누가' 문을 닫았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Is the store closed? (매장 문을 닫았나요?)
Yes, the store is closed (by me). (네, 매장 영업 끝났습니다)
그런데, 굳이 억지로 점원이 매장 문을 닫았다는 능동형 표현으로 대답을 바꾸어 버리면 문장의 포커스가 매장이 아닌 점원으로 달라지는 결과뿐만 아니라 뜻도 달라진다.
Yes, I closed the store. (네, 제가 매장 문 닫았어요)
이런 대답은 누가 매장 문을 닫았는지 물어볼 때 나올 법한 대답이다. 즉, 동문서답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꿀 수 있다는 여타 문법책의 설명은 이론상으로는 말이 되지만, 미국인들은 실제로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문장의 초점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래 예문들 모두 수동태의 주어가 사람이 아닌 경우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동형이 될 수 없고, 수혜를 입는 수동형 문장이어야 맞다.
My car was towed last night ( 내 차가 지난밤 견인됐어요).
The pool is contaminated (수영장이 오염물질로 더러워졌어요).
A few blood samples are mixed (꽤 많은 혈액 샘플이 뒤섞여 버렸어요).
언어 체계의 차이 때문에 수동형 표현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자주 노출이 되는 게 중요하다. 자주 들어보고, 사용해봐야 언어를 배울 수 있다. 영어에서 수동태는 정말, 아주 많이, 자주 쓰이기 때문이다. 수동태의 용도를 제대로 모르고, 수동태를 사용할 수 없다면 영어 표현의 절반을 포기하는 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