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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리치 Sep 22. 2023

야단맞을 것 같은 두려움..

면도하는 전업주부(기억) #16

또 강부장이 끼어든다.


“김수석, 작년에 팀 프로젝트와 비슷한데,, 차이점을 모르겠네 “

“네,, 그건,, 모듈화를,, 흡,, 통해서,, 엔지니어 친화적으로,,흡"

“친화적? 효과가 뭔데?”


’또 이 자식이 태클 거네,, 씨..‘ 진수는 생각했다. 매사 부정적이고 이기적인 뱀 같은 자식이다. 진수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말을 더듬는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가지만 잡지 못한다. 순식간에 텅 비워진 머리, 진수는 이야기를 못한다. 5초가 흘렀을까? 갑자기 조부장님이 끼어든다.


“분산 시스템이라 그거랑 비교하면 안 되죠, 강부장님. 효과는 같아 보여도, 텍스트 위주인 이전 프로젝트와 달리 이건 펑션기준이고 직관성이 있어요. 좀 더, 아니 많이 업그레이드되었어요.”

“수치로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건 김부장 첨부자료에 있습니다. 끝나고 자료 보내드릴게요.”


그렇게 끝났다. 조부장님이 진수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고생했다. 잘했어. 발표자료 공유하고,”


진수는 조부장님을 보고 웃는다. 같은 편이 있어서 다행이다. 진수는 발표도중에 곁눈으로 강부장님을 틈틈이 보았다. 미동도 하지 않고 수첩에 무언가 적고 계셨다. ‘내가 잘못 발표하고 있나, 요점을 놓쳤나? 이럴 거면 그냥 고개만이라도 끄덕여주시지..‘ 진수는 생각했다. 같은 편이지만 늘 눈치를 본다. 조부장님이 만족하면 진수도 그랬다.


‘으, 따가워,,’ 감기에 걸린 9살 진수는 소매로 코를 닦는데 코밑이 헐어있다. 소매는 콧물로 가득하고 코 밑은 까맣다. 텅 빈 집에 있는 것보다 동네 친구랑 돌아다니는 게 좋다. 친구와 싸워서 틀어지기도 하지만, 진수는 항상 그 무리에 낀다. 오늘도 숨바꼭질을 하다가, 버려진 리어카를 발견했다.


“오, 이거 탈 수 있는데.. 야! 한 번 타봐!“


덩치가 큰 동원이가 손잡이를 잡더니 끌어본다. 한쪽 바퀴가 터져있지만 굴러간다. 동원이가 이야기하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우르르 몰려와서 타기 시작한다. 진수는 먼저 리어카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지만, 이내 밀려난다. 덩치가 작은 진수는 군말 없이 리어카 바퀴 축 근처에 달을 얹히고 섰다.


“아,, 씨,, 무거워”

“나도 끌어볼게”


진성이가 내리더니, 동원이와 손잡이를 같이 잡는다. 스르륵, 리어카는 움직인다.


“간다아아~~”


학교밑 도로이지만 80년대 도로는 차가 없다. 살짝 경사가 진 직선도로에 리어카는 바람을 가른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힐수록, 진수는 리어카 난간을 세게 잡는다. ‘너무 빨라, 부서지는 거 아냐?’ 심장이 요동친다. 버티기도 힘든데, 내릴 수도 없다. 진수는 훌쩍 코를 한 번 마시고, 애써 웃는다. 동네 친구들은 순서를 정해 리어카 손잡이를 잡고 끌기 시작한다.


“진수야, 너도 리어카 안으로 들어와”

“아니, 괜찮아 여기가 더 재미있어”


몇 번 타다 보니 진수는 바퀴축에 있는 자리가 익숙해졌다. 거기선 친구들의 얼굴이 다 보인다. 진수는 친구들이 웃는 모습이 너무 좋다.


툭,투두둑,,,


“아아악!”


신나게 질주하던 리어카가 멈췄다. 리어카는 무언가에 낀 듯, 바퀴가 멈춰져 있다. 진수의 눈에는 친구들이 바퀴 쪽에서 몰려서 분주하다.


“진수야,, 가만히 있어봐”


동원이가 바퀴를 이리저리 돌린다.


“아아아악~”

진수의 목에서 비명이 터진다. 상황 파악이 안 된다. 정신을 차리니 왼쪽발이 끊어질 것 같다. 진수의 눈은 리어카 바퀴 쪽을 향한다. 자전거 같은 리어카 바퀴에 하얀 무언가 묻어있고 바큇살이 휘어져있고 그 안에 무언가 있다.


“엄마~~ 어어어엉,, 아아악~”


진수의 발이 끼었다. 동원이가 힘겹게 바큇살을 벌려 진수의 발을 꺼낸다. 진수의 신발은 다 터져있고, 발목이 허벅지만 해졌다.


“피,, 피”


리어카 난간에 익숙해질 즈음, 진수의 바퀴가 빨려 들어갔다. 진수가 늘 보던 살색 발목이 아닌 빨갛고, 하얀 발목, 리어카 바퀴에 묻어있는 신발 조각들.. 그렇게 진수는 한참을 주저앉아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동원이만 옆에서 진수의 발과 눈을 번갈아 쳐다본다.


“미안해,, 진수야. 걸을 수 있나?“

“발목이 너무 아파,, 못 걷겠어. 그래도 집에 가자. 내가 거들어 줄게.”


동원이의 어깨를 잡고 일어난다. 뉘엿뉘엿, 빨간 구름 속에 더 빨간 태양이 보인다.


“진수야,, 우리 리어카 탄 거 엄마한테 말하지 마..”

“… 응”


진수는 무서웠다. 크게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버려진 리어카, 타면 안 되는 거 거였잖아.‘ 동원이도 무서웠다. 자기가 리어카를 끌 때 진수가 다쳤으니깐.


“뎅뎅뎅뎅뎅뎅~”


마루에 있는 괘종시계는 6번의 종을 울린다. 진수는 1시간 뒤에 엄마, 아빠가 오면 뭐라고 할지 생각한다. 9살 머리로 치밀하게 생각을 했지만 약 1시간 뒤에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뭐라고?”

“어,, 엄마… 차,, 차가 흡,, 내 발을 밟고… 그냥,, 갔어.. 흡,, 괜.. 찮아.. 지금…은,,흡,“

“김!진!수!”


엄마는 진수의 신발을 보고 화를 내었다가, 진수의 부은 발을 보고 더욱 분노한다. 진수는 교통사고로 위장했다. 믿어줄 것 같았다. 그냥 그렇게 하면 넘어갈 것 같았다.


“야!!!!! 김진수”


진수는 고개를 돌려 아빠를 봤다. 아빠의 눈, 그 눈이 무섭다.


“어디 남자새끼가 거짓말을 해!!! 야!!“


진수는 장롱으로 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봤다. 장롱사이에 있는 매, 사랑의 매를 꺼내왔다.


“아아앙,,아아앙~”

“어디 새끼가 거짓말을 하고.. 이리 와!! 너 이 새끼 사실대로 말 안 해!!! “

“아빠..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차가 치고 갔다고, 새끼가 진짜!! 종아리 걷어!!“


“여보, 일단 치료부터 하고, 발목 팅팅 부었잖아”

엄마가 끼어든다.


“이런 자식은 치료도 필요 없어, 어디 사내자식이.”

“허어엉,,, 사실,, 흡,, 리어카를 타고 놀다가,, 흡,, 발이 빨려 들어가서.. “

“그런데 왜 거짓말을 했어!!!!”

“엉어어엉,, 어엉어엉”


부은 발목, 파였던 상처에 피가 마르지도 않았는데, 진수는 매를 맞았다. 무섭다. 무서웠다. 동원이의 비밀을 지키려고 거짓말을 했지만 그 이야기는 삼켰다. 9살 진수가 삼킨 대가는 너무나 컸다. 진수는 엄마가 미웠다. 아빠도 미웠다. 진수는 위로받을 줄 알았다. 신발이 망가졌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진수는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했어. 그런거야.. “


‘잠시 내 자리로’


진수의 메신저에서 조부장님 대화창이 깜박거린다.


“김수석, 이런 이야기는 필요 없어. 분란만 일으키고.. 발표도 괜히 이 자료가 있으니깐 강부장이 그러잖아“

“아..네.. 이거 빼고, 다시 만들어봐“

“아까 공유하라고 해서, 공유했는데요..”

“발신취소하고!!”


진수는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나만 잘했어도, 강부장님과 조부장님이 그러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내 탓, 모든 원인을 찾는 건 나로부터 시작된다. 비합리적이고, 내 탓이 아니더래도 나 때문인 것 같다. 진수는 진실을 말해도, 상대방이 거짓이라고 하면 그 말을 믿는다. 트러블을 일으키면 결국 진수 자신에게 돌아올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헉,, 6시 반”


“부장님,, 저 아이 데리러 가야 돼서.. 자료는 내일 아침 일찍 수정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뭐? 음… 왜 나한테 보내? 잘 수정해서 다시 공유해..하아~”


‘또 나 때문인가?’ 진수는 PC 전원을 끄고, 뛰어나간다. ‘체리야 미안해~ 아빠가 좀 늦었어. 금방 갈게’ 퇴근과 동시에 체리에게 미안해진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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