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하는 전업주부(기억) #15
진수의 눈은 회의실 스크린을 보고 있지만 그의 머리는 튕겨내고 있다. 오른쪽 손바닥을 '후후' 불면서 침을 꿀꺽 삼킨다. 큰 웃음이 나오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진수는 그냥 웃는다. 심장소리가 지금 저기 앞에 있는 발표자 목소리를 덮는다.
"다음은 김진수님의 모듈형 딥러닝 프로젝트의 김진수님의 발표가 있습니다."
앞선 발표자에게 레이저 포인터를 받아 들고, 진수는 앞으로 나간다. 오늘 오전까지 작업했던 PPT화면으로 바뀐다. 뒤돌아서니 수십 개의 눈들이 나를 본다. '어디 한 번 잘하나 보자..' 수십 개의 눈에서 나오는 질책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꿀떡~'
"안녕하세요. 김진수입니다."
'오줌이 마렵네, 어쩌지?'
진수는 아랫배에 신경이 쓰인다. 진수 앞에 앉아 있는 품띠를 맨 친구들 5명이 일어나서 앞으로 나간다. 양옆으로 쳐다보며 서로 줄을 맞춘다. 친구들보다 2배 정도 큰 관장님이 말한다.
"태백 1장! 엇!!"
친구들이 구령에 맞춰 동작을 한다. 하지만 진수의 신경은 온통 아랫배에 있다. 신경 쓰면 쓸수록 오줌이 더 마렵다. 지금 이야기해야 하는데, 부끄럽다. 뒤를 보니 많은 친구들이 앞을 보고 있고, 몇몇 친구들만 뒤를 돌아보는 진수와 눈이 맞는다
'윽, 너무 마려워, 어쩌지, 손들까?'
"다음!!"
진수 차례다. 먼저 끝낸 친구들이 웃으면서 맨 뒤로 간다. 긴장이 되니, 아랫배가 수월하다.
"태백 1장! 엇!!"
진수는 태백 한 동작 한 동작 집중한다. 앞 찌르기, 손날치기, 발차기. 실수하지 않으려고 친구들에게 잘 보이려고 신경 쓴다. 이단 차기, 돌려차기..
"어어, 관장님, 진수.."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진수는 동작을 멈춘다. 관장님이 진수를 물끄러미 본다. 도복 아래쪽이 따뜻한 느낌이 든다. 아래를 보니 녹색 태권도장 바닥이 진녹색이 되어가고, 진녹색은 친구들 쪽으로 향한다.
"아아악,, 오줌 쌌어!!!"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친구들이 몸을 돌려 뒤로 도망간다. 진수는 상황파악이 되었다. 무언가 도복을 따뜻하게 만들었고 친구들을 도망가게 했다. 같은 조 친구들은 동작을 멈추고 두 발짝 뒤에서 나를 쳐다본다. 마치 모자란 아이를 보듯, 희미한 미소를 띠면서..
"모두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사무실에 있던 관장님이 내 앞에서 휴지로 바닥을 닦고, 밀대로 닦아내신다. 진수는 화장실로 왔다. 울음이 나왔다. 여기서 오줌을 싸야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괜찮아. 진수야~ 엄마한테 전화할게"
"엄마는 직장에 있는데, 전화번호 몰라요"
"도현이랑 친하지? 도현이 엄마한테 전화할게"
오줌으로 젖은 도복하의를 들고 진수는 관장실에 앉아 트로피들을 본다. 진수는 다시는 이곳에 오기 싫다고 생각했다.
"진수야, 화장실 급하면 손들고 가지.. 이거 입자"
"으흐, 흐,, 흑흑"
도현이 엄마를 보니, 눈물이 났다. 진수는 죄를 지은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울음소리에 다 묻혔다.
"어어엉, 흑,, 엄마는요?"
"엄마한테는 내가 잘 이야기할게. 아줌마 집으로 가자.."
"엉엉,, 엄마~~ 흑흑 엄마~~~"
"김부장한테 물 한잔 줘라.."
강팀장이 진수에게 말했다. 수많은 눈들이 진수를 본다. 발표도중에 침이 계속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진수는 컥컥 되는 소리를 냈다. 진수는 그냥 웃는다. 진수는 웃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E가 부럽다. I성향을 가진 진수는 자책했다. I는 E를 부러워한다. E는 I를 답답해한다. 진수는 내향적인 자신의 모습이 싫었다. 하지만 진수는 바뀌지 않았고, 유치원 때부터 김부장이 되어도 바뀌지 않았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