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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준 Oct 23. 2021

본대의 소집

3월 14일(일)


요즘 신앙생활이 엉망이다. 마치 사이클, 주기가 있어서 괜찮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또 일상 속에서 망각하다가를  반복한다.

 

일단 반성 한번 하고, 인천의 부대로 복귀 하기 전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오늘의 설교는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세상은 전쟁의 역사이며, 평화는 잠시 전쟁의 부재일 뿐.

강한 군대도, 유엔도 평화를 보장 할 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으로 사는 것 밖에 없다.

영생이란 사후의 영원한 생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생을 살아가는 것도 의미한다. 라는 말씀이었다.


군대에, 유엔이면 유엔군인 나를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닌가? 물론 수 많은 성도들 가운데 나를 콕 집어 설교를 준비하시지는 않지만,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았다. 역시 반성하고 교회에 가니 확실히 찔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마음 깊이 다가왔다


예로부터 A는 B의 부재이다. 즉 B가 없어서 A라는 상태가 된다라는식으로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존재해왔다.어둠이란 빛의 부재요, 김영하 작가의 말을 따르면 일상이란 여행의 부재라고 하였다.

스토아 학파와 그들의 개념 아타락시아도 행복이란 마음 속에 정념이 없는 상태라고 해석하였다.

평화란 전쟁의 부재이다.

 

 만족하는 것의 기준을 다르게 잡을 수 도 있겠다. 무엇을 가지고 소유하고 있음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이 없어서 만족. 더 근육질의 몸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은 끝이 없다. 병이 없는 것에 만족하라는 의미인가. 돈이 없는 것에 불만을 갖기 보다는 감당 못할 빚이 없는 것에 만족하라는 것인가?


 유엔군이 전쟁을 미루는 존재이다 라는 해석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근데 내가 또 미루는 건 자신있지. 미루는 것에 습관이 되어있는 사람이다. 분쟁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어야겠노라 다소 설교의 취지와 맞지 않는 다짐을 하고 다시 인천으로 복귀하였다.


인천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많은 인파들이 모여 있어서 놀랐다. 무슨 날인가 싶었다. 특전복이 아닌 육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더블백을 메고 태워다주신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예배까지 다녀오고 일단 피곤하여 나부터 쉬고 싶었기에 관심을 끄고 운전하여 들어왔다. 파병교육대 생활 들어왔는데 건물 안도 모르는 얼굴들이 가득하고 부산스러웠다.


알고보니 오늘은 본대가 소집되는 날이었다. 특전사 국제평화지원단 소속의  대대와, 707 대테러 팀. 각종 작전을 지속할 수 있게 지원하는 부대들, 야전에서 복무하다가 파병을 희망하여 지원한 병사들이 모였다.


육군의 전투복과 특전사의 특전복은 다르다. 육군의 전투복은 녹색, 황토색 등이 섞여있고, 특전사의 특전복은 검은색과 짙은 녹색 위주로, 명찰은 검은색 바탕에 노란색 글씨로 굉장히 날카롭고 공격적인 느낌이다. 마치 아마존에 서식하는 독 도마뱀이 검은색과 노란색 점으로 배색을 통해 경고하는 것 같은 인상이 들었다.

같은 편이라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특전사 대대는 군수과에서 편성한대로 생활관을 편성하여 짐을 옮기고, 병기관님의 통제에 따라 무기고에 화기들을 옮겼다. 소집된 병사들은 본부 중대장님의 지시에 움직였다.


2층에 올라가서 아래층을 내려다보는 주임원사님의 곁에 서서 같이 수다를 떨었다.


"주임원사님, 뭐하십니까? 내려가서 도와주셔야하는거 아닙니까?"

 주임원사님 둘째 아들보다 내가 두 살 더 어리기 때문에 평소 나를 아들처럼 귀여워 해주셨고 나도 많이 까불었다.


"이따가 행정보급관들이랑, 707 선임 담당관이랑 모여서 차 한잔 하기로 했습니다."

그럼 저는 주임원사실 옆 제 사무실에서 책이나 읽고 차나 한잔 해야겠습니다.


짐을 풀고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책을 두어권 챙겨서 주임원사실과 붙어있는 내 사무실로 갔다.

주임원사실에서 웃음소리와 대화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자리가 끝났는지.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주임원사실과 내 사무실에 연결된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친구야, 이거 커피 좀 버려줄 수 있어?"

707 선임담당관 상사였다. 내 사무실에만 싱크대가 있었기 때문에 주임원사님과 행정보급관님들과 함께 먹고 남은 커피를 버리러 온 것이었다.

역시 대테러 부대답게 첫인상이 굉장히 카롭 카랑카랑했다. 키도 크고 어깨가  벌어졌다.  또래라면 한번쯤은 보았을 만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  등장 캐릭터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계급은 내가 중위로 장교였지만, 어차피 차차 알게될 사이였고, 또 내가 체육복 복장이기에 굳이 계급을 운운하고 싶지 않았다. 병사로 보일 정도로 어려보였다는 의미이겠지. 만족한다.


"야, 통역장교님이셔."

바로 주임원사님의 목소리가 뒤따라 왔다.


"아, 죄송합니다. 용사이신줄 알았습니다."

대테러 선임담당관님이 바로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앞으로 친구처럼 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운동이나 한번 배우겠습니다."

인사를 함께 나누고 갑자기 707에서 근무하던 친한 육사 동기가 기억나 혹시 아는지 물어보았다.


"아, 잘 알고 있습니다. 육사 동기셨습니까?"

선임 담당관님이 대답하셨다.


"맞습니다. 앞으로 종종 오며가며 인사드리겠습니다."

커피를 버리고 잔을 돌려주며 말했다.


다시 사무실의 문을 닫고 일기를 썼다.

지난 23일간 선발대의 노력. 덕분에 시스템이 체계를 잡고 안정적일  들어오는 본대. 본대가 가져온 새로운 활기.

평화란 전쟁의 부재. 전쟁을 미루는데 같은 편에 특전사와 육군 중앙 선발의 참모진들이 있다.

덕분에 마음에 정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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