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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May 17. 2023

낫워킹맘들의 손

<#낫워킹맘> 외전

다섯 개로 갈라진 손끝을 움직여 우리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아내이자 엄마, 두 고양이의 집사이기도 하지만 작가라는 직업으로 소개하길 좋아하는 전보라 작가는 오늘도 자신의 취향이 가득 베인 집 안에서 가구를 요리조리 옮기며 인테리어 사진을 찍는다. 오후의 햇살이 들어올 땐 커피 한잔을 내어 영상편집 작업을 하며 글을 쓴다. 전업주부에서 낫워킹맘, '낫'워킹맘에서 '갓'워킹맘이 된 책방지기 이정오 작가는 매일 자신의 책방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입고된 책을 진열하고, 틈틈이 책을 읽어가며 SNS에 책소개 글을 남긴다. 안경을 손으로 매만지며 손가락으로 바쁜 타자솜씨를 뽐내는 모습이 제법 우아하며 멋있다.


어른을 위한 창의력 수업을 기획 중인 고하연 작가는 여전히 우리 중에 제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다. 그녀에겐 세상이 전부 걸어 다니며 볼 수 있는 미술관이고, 엔도르핀이고, 글감의 소재가 된다. 최근에는 망원경 하나를 사서 야생조류들을 보기 위해 미세한 초점을 맞추고 매주 새들과의 소개팅을 떠난다.  나도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쓰고, 글쓰기 모임을 기획하고, 평생 도전해보지 않았던 바디프로필 촬영을 위해 매일 덤벨을 들고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허덕인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나'를 위한 시간을 쏟으며 보내다가도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 가족을 위한 밥상을 차리고, 집안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깨끗하게 씻겨주기도 한다. 같이 머리를 움켜쥐며 공부를 하기도 하고, 이유 없이 울어대며 잠을 보채는 아이를 말없이 토닥이기도 하고, 껴안아주기도 한다. 잘한 일에는 칭찬과 박수를 아끼지 않고, 아침 등굣길에는 격하게 손을 흔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손에 땀을 쥐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바짝바짝 메말라 트기도 하고, 어딘가에 아리도록 베이기도 한다. 예상하지 못한 아이와의 갈등에 일기를 쓰며 후회와 반성의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몸이 힘들거나 바쁠 때에는 전업주부이지만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담아 밥상에 올리고, 청소기를 돌리려다가도 자주 소파로 들이 눕는다.




어느 순간부터 손의 마디가 굵어져서 결혼반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여전히 빛나고 값진 다이아몬드 반지는 결국 보석함 깊은 곳에 외로이, 내 손을 떠난 지 오래다. 어쩔 때에는 손이 찌릿거리며 벌써부터 관절염 걱정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문득 엄마의 손이 보고 싶어졌다. 지금껏 바쁘게 살아온 40년 차 엄마의 손은 10년 차 나의 손보다 얼마나 험해졌을까 궁금했다. 엄마의 퉁퉁 부은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금가락지는 비누거품을 내어 손가락을 비벼도 늘 빼기가 힘들었는데 나는 엄마처럼 애처롭게 반지를 빼는 일은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이제는 집안일이 오직 여성들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닌 가족 모두가 다 같이 해나가야 하는 일이라는 인식으로 바뀌고 있는 요즘과 달리, 과거의 엄마는 집이라는 고립된 공간 속에서 비천하게 스스로를 만들었다. 나처럼 집안일 외에 여유시간을 쓰는 것도,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없었던 시절이다. 그것에 비하면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투정들은 어쩌면 ‘손이 아파 일기를 못 쓰겠다’며 오늘도 눈물을 무기 삼아 잔꾀를 부리는 초등학생 딸과 같이 보일 듯도 하다.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감사한 희생으로 모든 혜택을 누리며 커온 우리들은 이제 외로운 공간에서 혼자 일하기를 거부한다. <#낫워킹맘>의 글들은 어쩌면 내가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진심의 오마주일 것이다.


'이러한 세상이 왔다고. 그러니 엄마도 조금은 편해져도 된다고. 모든 것을 그 손으로 혼자 하지 마시라고.'


아이의 배가 아플 때 “엄마 손은 약손이다”라고 말하며 다정하게 아이의 배를 문질러주는 따뜻한 엄마의 손길처럼 나는 지금 열 손가락에 진심을 담아 자판을 두드린다. 집안일의 불평등한 움직임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여전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면 귀찮고 빛나지 않는 일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든 여자들에게. 내 손의 온기가 이 글에 담겨 사방에 퍼지길 바랄 뿐이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응원한다. 그리고 부디 더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저는 여성들이 자신의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변화를 위한 행동에 전념해야 한다고 믿었어요.      
      
                                                     <보부아르의 말>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종이에 베인 상처가 더 쓰라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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