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색을 좋아한 지 30년이 넘었다. 이렇게 하나를 질리지 않고 좋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 중 하나 일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덕후’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지만 나는 '핑크 덕후'라는 말이 왠지 맘에 들지 않는다.
핑크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보다는 여린 단어로 자신을 포장해야 한다. 핑크의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 느낌에 덕후가 붙어버리는 순간, 핑크색 벨벳 장갑을 끼고 주먹질을 하는 권투선수가 떠오른다. 그만큼 내게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단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떠오르는 것이 몇 개 있었으나 그중 단연코 제일 먼저 써야겠다고 느낀 것은 ‘핑크’에 대해서다. 핑크는 이제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내게 더 깊이 와닿아 나의 일상에 스며들어있다. 어떠한 소품을 골라도 핑크 색깔이 가장 먼저 눈에 띄고, 소품뿐만 아니라 옷이나 액세서리, 가구들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전자제품들조차 사람들의 다양한 개성을 추구하는 성향이 많아지면서 핑크 옷을 입은 가전들이 많아졌다. 때문에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집안을 모두 핑크 색상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핑크를 사물로써 수집하여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물건을 많이 사서 모으는 사람도 아니며, 정말 '핑크색 물건'에 빠져있는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한낱 애송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핑크 세상을 통해 삶의 다양한 의미를 찾고 싶었다.
내가 지금껏 느낀 감정은 핑크색에 모두 물들여있다. 핑크라는 색깔 자체가 갖고 있는 모호함처럼 나는 겉으로는 늘 강한 척을 해왔지만 속은 말랑말랑하고 누구보다 여성스러운 감정을 지녔다. 그래서 나의 삶도 어떤 날은 베이비 핑크처럼 따뜻했고 순수했고, 어떤 날은 파스텔핑크처럼 사랑스러웠으며, 어떤 날은 마젠타핑크처럼 강렬했다고. 또 어떤 날은 인디핑크처럼 섬세했고, 어떤 날은 누드핑크처럼 솔직했으며, 그리고 어떤 날들은 정말 그냥 '핑크'스러웠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어떤 날들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나의 감정에는 다른 역할들이 부과되어 숨기고 살게 되는 것이 많지만, 돌이켜보면 여전히 소녀스럽고 여성적인 내게 핑크를 모아놓은 이 글들은 솔직한 마음의 추억상자가 될 것이다.
<어쨌든, 사랑 : Romantic Days> 전시
in the pink.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건강한’, ‘정점에 있는’ 이란 뜻인데 상황이나 형편이 좋아졌을 때 쓰던 예전 관용어였다. 문득 핑크만 모아놓을 SNS 계정을 만들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떠오른 구절이었다. 긍정의 의미에 핑크가 합쳐지다니, 아무리 봐도 너무 로맨틱하다. 그리고 궁금하다. 한 가지의 색상이 아닌 빨강색과 하얀색, 두 가지 색상이 조합되어야만 핑크색을 만들 수 있는데 그 안에서 나올 수 있는 핑크의 색상만 해도 여러 가지이므로 내가 과연 또 어떠한 핑크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어떠한 상반된 이야기들이 나올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