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루비아다방 '분홍반지'
분홍반지 작업노트
줄리엣은 로미오에게 그 이름을 버리라, 버리고 자신에게 오라고 애원했다. “이름이란 무엇인가요? 장미는 이름이 바뀌어도 그 달콤한 향기는 변치 않으니, 로미오 또한 로미오로 불리지 않아도, 그 명칭이 없어도, 그 소중한 완벽함은 그대로일 거예요.” 순진한 생각이다. 장미는 이름이 장미여서 달콤하다. 로미오도 이름이 로미오여서 완벽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의 이름 없이도 첫눈에 반했다. 그러나 그들이 속절없이 사랑에 빠져든 시점은 서로의 이름을 듣고 부르면서부터다. 이름이 결정타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의 이름마저 사랑했다. 둘은 서로를 만지며 이름도 어루만졌다. 둘의 사랑을 지켜보는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은 둘의 이름이 로미오와 줄리엣이어서 400년도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둘을 사랑하고 그들의 비극에 눈물짓는다.
(중략)
사루비아 다방의 차 중에서 이름이 분홍반지라는 차가 있다. 가장 사랑받는 이름이다. 분홍반지는 정확히 지은 이름이다. 분홍반지는 처음부터 분홍반지여야만 했다. 그것은 지어낸 이름이기보다 끄집어낸 이름이다. 나는 그것이 분홍반지인 줄 첫눈에 알아봤다. 그것은 루이보스와 체리, 크랜베리 등이 혼합된 허브차가 아니라 처음부터 분홍반지였다.
- 고유한 순간들(사루비아 다방 티 블렌더 노트), 김인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