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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Jun 29. 2023

경로이탈하면 어떻게 하죠?

6월의 감정

꾸밈없고 천연하던 시절처럼.

6월의 들꽃처럼.

그곳이 어느 자리인지 상관하지 않고

흙을 비집고 솟아나는 생명들처럼.


아침에 나와 길을 따라 걷는데 하늘이 맑았다. 전날 내린 비로 하늘이 세차장에 다녀온 듯 선명해 보였다. 하얀 구름은 유난히도 하얗고, 하늘은 넓은 호수처럼 파랬다. 문득 기분이 좋아져 길가에 세워져 있던 공유자전거를 빌렸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페달을 굴렸다. 시원하면서도 포근한 공기는 자연의 선물처럼 나를 설레게 했다. 긴 머리카락이 공중으로 떠올라 지나가는 자리마다 먹칠을 하듯 죽죽 스치는 것도 재미있었다. 집밖으로 나오기만 해도 6월은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  


감정에 풍선을 달으니 모든 것을 사랑하던 어린 날의 내가 떠올랐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과 비슷한 풍경의 푸른 하늘 밑에서 뜀박질을 하고, 철봉에 매달려 하늘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던 아이가 보였다. 얼굴에 땀방울이 얼마나 흐르던 상관하지 않고, 헝클어진 머리카락도 신경 쓰지 않는, 손에 흙이 묻어 손바닥 손금 사이로 검은 줄이 여러 개 가 있던 어린아이. 생각해 보면 그 때야 말로 티 없이 맑은 눈으로 세상을 아름답게만 보던 시절이다.  


그런 아이는 이제 티끌 하나에도 영향을 받는 어른이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남의 평판에 귀를 곤두세운다. 흐트러진 자세들을 바르게 잡고 서느라 집 안에 오면 오징어처럼 바닥으로 축 달라붙는다. 바깥을 유난히도 좋아했던 아이가 스스로 집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집에서만이 유일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니까.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아프로디테> 그림 작품을 보면 거울을 보고 있는 아프로디테의 표정이 보인다. 숨길 수 없는 내면의 마음이 거울에 비춰 들통 나 버린다. 거울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보는 사람들을 보고 있던 아프로디테. 언제나 사랑받으면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하던 미의 여신. 


사람들과 ‘오라소마’라는 컬러 테라피 체험을 하던 날, 나는 아프로디테처럼 마음이 들통 나 버린 것 같았다. 하나의 색깔을 골라오는 마음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인다. 마음에 드는 색깔을 골라야 할까? 눈에 띄는 색깔이 진짜일까? 색이 진하고 강하면 다른 사람 눈에 취향이 독특한 사람처럼 보이겠지? 너무 희미한 색을 고르면 감정이 없는 듯 보이겠지? 사람들이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색깔을 고르는 동안에도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수 십 가지 색깔의 병 중에 58번 병이 내 손에 쥐어져 있었지만 그 선택의 옳고 그름은 알 수 없었다. 

 


오라소마 #58. 오리온과 안젤리카


선택한 58번 병은 ‘오리온과 안젤리카’라는 이름이 있었다. 병의 절반 중 아래는 연한 핑크빛, 위에는 여린 하늘빛을 띠는 빛을 가득 머금고 있는 파스텔톤은 영롱하기 그지없었다. 

컬러 테라피는 색깔을 통해 심리적으로 안정을 얻기 위한 것일 뿐, 어떠한 목적도 없다. 골라온 하나의 색깔 병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으며 그런 태도는 오만과 편견을 낳는다. 하지만 이 병을 고른 사람들은 대부분 감정이 섬세한 사람, 평화주의자, 선을 지키려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속마음을 들킬까 봐 속으로만 끄덕였다. 

 


글에 기복이 없고 항상 평탄한 듯 보여요.
매번 숨겨져 있는 말들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아는 당신과 글을 쓰는 당신은 다른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안에 있던 감정을 모두 내뱉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나는 감정의 절반은 숨긴 채 글에서 물음표들을 만들어냈다. 글로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묘한 언어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 봐, 혹은 상처를 받을까 봐 깜박이는 화면 속 커서를 계속 쳐다보다가 결국엔 더 묘한 언어를 남기기도 했다. 글에서도 선을 지키는 사람, 그게 나였다.


글을 처음 썼을 때의 마음가짐을 기억해 본다. 순수하게 내뱉었던 말들을 기억해 본다. 맞춤법이 틀리더라도, 띄어쓰기가 잘못되었더라도, 그저 그 시간을 기다리던 날들을 기억해 본다. 글의 아름다움은 어쩌면 솔직한 감정표현일지도 모른다. 어떠한 형식이나 기교 없이 단순함에서 나오는 마음의 언어. 다시 한번 골라온 병을 쳐다본다. 하늘과 핑크의 두 색 사이, 묘한 경계선을 뚫어져라 째려본다. 매 순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판단의 저울질을 하고 있을 나. 그런 나를 다른 방법으로 보듬어줄 수는 없을까?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공유 자전거를 빌렸다. 가던 길의 다른 길로 가보았더니 자전거가 갈 수 없는 막다른 길이었다. 한참을 페달을 굴리며 길을 찾아 헤맸다. 늘어난 시간만큼 공유 자전거의 요금은 올라갔고, 이제는 택시를 탔어도 그것보다 비싸게 나올 만큼의 금액이 찍혔다. 엎친데 덮친 격 자전거 안내 메시지에서는 “서비스 지역을 벗어났습니다.”가 연신 메아리쳤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소리가 듣기 좋던지. 가끔은 왼쪽과 오른쪽 중 골라야 할 때 직진도 한 번 해봐야지! 뭐든 남 신경 쓰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말이야. 어릴 적 철봉 위에서 하늘을 뒤집어놓듯 생각도 뒤집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지나가는 길은 여전히 하늘이 예뻤다. 역시나 6월은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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