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로리 Jun 18. 2023

무릎을 내어주면 좋겠어요.

6월의 감정

오늘도 여전히 모두가 잠든 밤에 나 홀로 눈을 뜨고 있다. 하지만 왜 그런지 모르게 편안하다. 노트북 화면에는 글씨가 채워지고 있다. 아이유의 노래 <무릎>을 연속으로 재생시켜 놓았다. 노래를 들으며 더 깊어질 밤을 기다리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나를 껴안아준 딸아이의 두 팔 이불을 떠올리면 오늘은 부드러운 선율처럼 스르르륵 잠들 것이다. 어제와 똑같은 서늘한 새벽 공기에도 포근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마치 그때처럼. 

모두가 잠드는 밤이 되어서야만 내 시간이 존재한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잠자리에 든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른다. 한때는 옆자리 누워있는 남편의 드르렁 코 고는 소리에 귀를 막아대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추억이 되었다. 방 하나를 거쳐서 들리는 남편의 코골이는 여름밤의 풀벌레 소리 같기도 하다.


어두운 방안, 옅은 조명 하나 켜 놓은 채 노트북을 두드리면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순백의 빈 화면과 나만 눈을 밝히고 있는 밤. 그때부터 혼자만의 외로운 사투가 시작되는 것인데,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런 밤을 수없이 반복한다고 했다. 하지만 어쩐지 쓸쓸한 마음이 든다. 무거워진 몸을 억지로 앉혀놓고 손목에 힘을 빼고 손가락을 움직여보지만 글이 잘 써질 리가 없다. 그러다 보면 나는 또 곱절의 시간을 쓰게 된다. 


6월의 낮은 벌써 여름이 찾아온 듯 뜨겁지만 어두워질수록 서늘하다. 열어둔 창문으로 새벽 공기에 잔기침이 나기 시작하면 그제야 노트북을 끄고 서재 한편에 마련된 요 이불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서는 이불을 목까지 바짝 올린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옆방에서 들리는 아이의 잠꼬대 소리 하나, 조용한 도로를 활보하는 오토바이 소리 둘, 이른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의 수선스러운 준비 셋. 나의 눈은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며 검은 그늘을 만든다. 비로소 해가 뜨고 나서야 2시간 정도 곤한 잠을 잔다. 하지만 외따로 자는 잠이 달콤할 리 없다. 


어제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몸을 혹사시켜야지만 그나마 하루는 편하게 잠들 것 같아서 무리한 일정들을 소화해 냈다. 버스를 타고 서울을 갔다가 집으로 바쁘게 돌아오는 길엔 눈치 없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 작은 소리가 어떤 신호라도 줬는지 하늘에서도 눈치 없는 소나기가 내렸다. 안경을 낀 사람들은 둥그런 유리알에 빗방울이 들이닥쳐 하얗게 김이 서렸다. 잠을 잘 못자서인지 모두 다 똑같은 사람들 같았고 똑같이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굵은 소낙비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옷을 적셨다. 뛰어도 별 수 없다는 듯 소나기의 비웃음의 소리가 쏴아하고 들렸다. 우산이 없던 나도 그 속에서 별 수 없이 젖었다. 젖은 생쥐꼴로 버스에 올라타니 이번엔 에어컨의 차가운 공기가 으스스 몸에 달라붙는다. 


6월이 되어 유독 소나기가 자주 내렸다. 소나기는 대기가 불안정할 때 나타난다고 했다. 소나기도 뒤죽박죽 한 내 마음과 비슷한가?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소나기는 자취를 감췄고 바깥은 다시 햇볕이 뜨겁게 비추고 있었다. 배속에서는 연방 꼬르륵 소리가 났고, 관자놀이는 불끈거렸다. 잠을 자고 싶었다. 그러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내 몸은 너무 차가웠고, 앞으로만 달리고 있는 버스에서의 잠은 왠지 처량해 보였다. 빨리 차가운 버스에서 내리고 싶었다. 밖으로 나가서 햇볕에 옷을 말리고 싶었다. 뽀송하고 따뜻한 온기가 필요했다. 몸의 긴장을 스르르 내려놓고 싶었다. 한참 뒤, 그제야 버스는 차가워진 나를 내려주었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내달렸다. 마음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고요한 집에선 편안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우리는 강해지기 위해 불필요한 노력을 하곤 한다. 하지만 때때로 일이 흘러가는 대로 놓아두는 편이 좋을 때도 있다.  
                                     - 헤르만 헤세, <밤의 사색> 중에서


갖고 있던 짐을 내팽개치고 소파에 털썩. 비로소 나는 눈을 감았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아니 어쩌면 한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내 옆엔 학원을 다녀온 딸아이가 잠든 내 옆에서 나를 껴안아주며 누워있었다. 아이의 들숨과 날숨이 나와 같은 속도로 느릿거렸다. 좁은 소파에서 아이와 포개어져 있던 시간.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지 않아도 아이가 덮어준 작은 팔의 온기에 낮잠은 더없이 달콤했다. 가수 아이유 노래 중에 <무릎>이란 곡이 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아이유가 이제껏 가장 잘 자던 순간을 기억해 보니 자신을 키워주신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할머니가 만져주는 손길에 스르르 눈을 감았던 것이라고 했다. 그때만큼은 언제나 까무룩 잠이 들었다고. 


오늘도 여전히 모두가 잠든 밤에 나 홀로 눈을 뜨고 있다. 하지만 왜 그런지 모르게 편안하다. 노트북 화면에는 글씨가 채워지고 있다. 아이유의 노래 <무릎>을 연속으로 재생시켜 놓았다. 노래를 들으며 더 깊어질 밤을 기다리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나를 껴안아준 딸아이의 두 팔 이불을 떠올리면 오늘은 부드러운 선율처럼 스르르륵 잠들 것이다. 어제와 똑같은 서늘한 새벽 공기에도 포근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마치 그때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이 폴짝폴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