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감정
딸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달려온다. 오늘도 어김없이 친구들과 방과 후에 놀기로 약속을 했는지 “엄마!” 하며 부르는 소리에 다급함이 깔려있다. 나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한다.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텀블러에 쏟아부었다. 시원한 물까지 담아 갈증에 대비하고, 아이들에게 먹일 비스킷 같은 것도 주섬주섬 챙긴다. 6월의 햇볕은 왠지 모르게 배신감이 든다. 초여름이라고는 하지만 한낮의 햇볕만큼은 한여름 못지않게 뜨거우니 말이다. 때문에 아이의 소중한 피부에 선크림을 한 겹 발라줬다. 얼굴이 끈적이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는 애써 발라놓은 선크림을 손바닥으로 벅벅 닦아낸다. 그 덕에 손바닥까지도 끈적해진 청개구리 아이는 빨리 나가자고 굴개굴개, 울어댄다. 귀여운 아이의 머리에 선캡 하나를 씌워주며 우리는 짐을 들고 놀이터로 향한다. 약속시간에 늦은 것도 아닌데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는 이미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똑같이 무장을 하고 나온 여자아이들이 놀이터를 휘젓는 동안 나는 그들에게서 열 발자국쯤 떨어진 벤치에 홀로 앉아 책을 본다. 아이들은 해맑다. 그리고 친절하다. 혼자 있는 나까지도 두루 살피며, “아줌마는 무슨 책을 읽어요? 지금 뭐해요?” 정도를 묻곤 한다. 그렇게 순수한 눈으로 내게 와서 촉촉한 말을 걸면,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책을 덮고 아이들에게 눈을 맞춘다.
“이모랑 보물찾기 할래? 여기 화단에 보물이 있어!” 아이들은 보물이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갑자기 나를 빙 둘러싼다. “뭔데요? 뭐가 있는데요?” 반짝이는 눈동자들에 나는 빙그레 웃는다. 어른들이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있을 일은 거의 없다. 겨우 풀린 신발끈을 묶을 때 빼고는. 그럼에도 오늘 같은 날엔 놀이터 화단의 초록풀밭을 기웃거리며 몸을 숙이고 앉아야 한다. 풀밭에 고개를 박으면 보물 찾기가 시작된다. “얘들아, 여기 어딘가에 클로버가 있어. 행운을 가져다줄 네 잎 클로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일상의 순간들, 찰나의 행복들을 주어 담으세요!” 행복한 순간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날의 일기에는 행복의 말들이 적힌다. 그리고 그러한 기록들이 모여 나의 하루도 행복으로 마무리된다. 오늘은 이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행복을 주어 담는 법.
알록달록했던 꽃들이 지고 민들레 홀씨들도 저마다 소풍을 떠나고 나면 봄의 따스한 기운은 사라지고 주변은 온통 연둣빛이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면 세상은 전혀 다른 색깔로 물들곤 했다. 어릴 때 나는 연둣빛 잎사귀들 위에 단아하게 솟아오른 하얀색 토끼풀꽃을 사랑했다. 아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꽃을 사랑했는지 모른다. 우리들은 그것으로 여러 모양의 행복을 만들곤 했었다. 토끼풀꽃으로 기껏해야 반지나 만들 수 있던 나는 한 움큼 꺾어 쥐고 목걸이나 화관을 만들어대는 손재주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입을 삐죽 내밀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처럼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면, 엄마는 토끼풀꽃 대신 클로버에 시선을 두게 하셨다. 그러면 어린 시절의 나는 가까이에 있을 행운을 찾아 정신이 팔려서는 엄마를 따라 고개를 박았다. 그 기억들이 너무나 소중해서 매년 이 계절이 되면 어른이 되어버렸어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운을 찾던 순간들은 행복했던 기억이고, 행복했던 기억들은 다시 떠올려도 여전히 행복하니까.
작년에는 새로 이사한 아파트 앞 화단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곳에서 네 잎 클로버가 자주 발견되는 곳을 찾았다. 그곳에 군집을 이룬 클로버들은 좋은 기운들을 서로 나눠 갖는지 행운이 전염되어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발견하기 힘든 네 잎 클로버가 그곳에선 고개만 조금 돌리면 보여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행복한 사람 옆에 행복이 스며들 듯 꽃도 마찬가지일 지도 모를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놀이터 풀밭에는 여전히 아이들이 클로버를 찾으며 땀을 흘리고 있다. 점점 지쳐가는 아이들을 다시 모아 비밀스럽게 손가락을 뻗어 나만 알고 있는 네 잎 클로버 화단을 알려줬다. 뛰어가는 아이들 뒤로 나도 내 몫의 행복을 찾아 나선다. 어디 있지? 두리번. 여기 있나? 두리번. 그런데 벌써 행복해진 기분도 든다.
조만간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글쓰기 모임이 시작된다. 그들과의 첫 모임을 상상해 본다. 누군가는 자기 혼자서만 서툰 글을 내보일까 봐 초조해할 것이다. 불안함에 손가락이 굳어버릴 지도 혹은 덜덜 떨지도 모르겠다. 처음 만난 그들의 손을 덥석 잡아줄 수는 없지만,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행운을 나눠줄 순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클로버를 찾아다녔다. 내 몫 말고도 그들에게 필요한 행복을 위해.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여전히 풀밭에 쪼그려있다. 하지만 힘들지 않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의 돌고래 소리가 들린다. 찾았다! 딸아이의 얼굴엔 땀에 흠뻑 젖어 선크림은 온데간데없고 벌겋게 얼굴이 달아올라있지만 괜찮다. 뜨거운 햇볕마저도 행복하니까. 행운이 손안에 있으면 누구든 폴짝폴짝 뛸 수밖에 없다. 찾은 네 잎 클로버를 네 장도 채 읽지 못한 책 안에 고이 넣어 보관했다. 오늘의 책은 행운을 보관할 용도로 가지고 왔었나 보다. 이제 잘 말려서 얼굴도 보지 못한 그 사람들에게 전해줘야지. ‘순간’을 사랑할 그 사람들을.
혹시 눈에 보이는 곳에 행운이 없을지라도 걱정하지 말자. 널린 것이 행복이다. 굳이 네 잎클로버가 아니더라도, 토끼풀꽃 가볍게 톡 따서 손에 쥐고 있으면 되는 일. 하얀 꽃으로 꽃반지를 만들어 네 번째 손가락에 끼우고 6월의 뜨거운 햇볕에 복수하듯 자랑해 보자. 다이아몬드보다 큼직한 하얀 꽃이 환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웃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