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15. 첫 문장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
p. 104
하얀 화면을 보고 있으면 첫 문장을 어떻게 쓸지 캄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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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앞쪽 '작가의 말' 이전에 볼 수 있는 글 5개의 첫 문장들을 모아보았다.
- 제 11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음반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산울림 3집 리마스터링 앨범을 보았다.
- 글쓰기로 '잠재적 셀프 구원'을 경험한 나는 2011년 봄에 첫 글쓰기 수업을 열었다.
-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의 성장을 낙타, 사자, 어린아이 세 단계로 구분했다.
- '작가님이 원하는 세상은 어디까지 와 있나요?'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는 마흔 여덟개의 질문과 대답이 들어있다.
다섯가지 시작점이 서로 다른 색깔을 띄고 있다. 에피소드를 구성하기 위해 시작한 것, 나의 경험, 책 구절과 타인의 질문 인용, 그리고 자기 자신의 책이름을 언급하면서 시작하는 글까지 제각각이면서도 이번 15번 에피소드에 설명된 예시들이 잘 드러나고 있다. 어떤 충격적인 대화 속 멘트를 사용할 수 있고, 후킹할 수 있는 이야기나 정리하는 글, 문장의 핵심을 한문장으로 찔러넣는 것까지 은유 작가는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말했고, 실제 책에서도 그런 모습들이 보여진다.
첫 문장을 쓰는 것을 어려워 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란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누구나 자기의 글을 우선 '써두고 난 다음 수정' 할 거라고 생각했다. 톡톡톡 노트북 타자를 두드리면서 멍하니 있던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기억을 끄집어 내보자면 딱 하나, '어떤 특정 주제가 정해졌을 때' 였다. 그 주제와 관련있는 글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특징은 내 성격과 닿아있다. 시작하는 것을 겁내지 않는 성격 말이다. 일단 해보고 나서 후회하자 주의인 나는 다소 투박하게 시작한다. 남들은 조금 더 효율적으로 / 간편하게 / 심플하게 / 계획을 세우고 .... 시작한다면 나는 무턱대고 한발을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나선 '이쪽 방향 맞나?' 하고 주변을 휘휘 둘러본다. 경사하강법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취할 수 있는 360도에 모두 한 발씩 가져다 대고, 그 상황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최대 값' 을 선택하는 것이라서. 강화학습에 관심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겠지. 나만 그런게 아니고 인간 모두가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걸 '의식적으로 하고 있고' 그게 첫 문장 쓰는덴 큰 도움이 되었다. 커서의 깜박임도 길게 보지 않았다.
어떤 때에 첫 문장을 씍 어려우냐고 묻고 싶다. 상상 속에서는 '소설 2막 1장' 을 쓸 때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앞선 내용과 이어지면서 주인공에게 새로움을 선사해주어야 할 때 말이다. 긴 에세이나 소설을 써본적이 없다. 나의 글은 내 생각의 길이와 비슷하다. 짧고 빠르게 쏟아내고 멈추는것. 그런 내게 '어떻게 해왔던 것을 이어 꾸준히 얇고 길게 펼쳐내보아라' 라고 하면 아마 얼어있을 것이다. 첫 문장을 쓰지 못하는 사람 처럼 말이다. 무언가를 중간에서 이어내고, 거기서 과거를 답습하지 않으며 새롭게 풀어나가야 하는 건 내게도 어렵다. 아마 그 순간에서는 나의 첫 문장은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너무나 압축을 한 나머지, 문장이 아니라 단어 몇 개를 씨부릴 수 있다.
첫 문장을 쓰기 어려운 글을 써보고 싶단 생각도 했다. 그런 나만의 '염원' 이 실제가 되려면 조금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얼마나 어려운지, 고심하면 할 수록 손가락이 멈춰버리는 수준의 글을 내가 쓸 수 있을까. 고작 입으로 수다 떨듯 쓰는 글이 아니라, 묵직한 한 방이 필요한 자리에 '두껍게' 이어줄 수 있는 차분한 한 문장을 쓸 수 있는 순간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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