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 형용사 , 그리고 접속사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18. 글에서 부사와 형용사를 모두 빼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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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부사와 형용사, 접속사 빼라라는 주장 뒤에 감춰진 속 뜻은, 단순하고 모호하며 표준화된 글을 만들기도 하는 부사와 형용사, 글의 흐름을 이어주는 게 아니라 흐름을 끊어버리는 접속사를 남용하지 않게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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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질문은 많이 보았다. 답변도 많이 들었다. 대부분 비슷한 뉘앙스였다. 글의 명확성을 위해 불 필요한 것들을 넣지 말라고 하기 위해 했던 말이라고. 저 질문과 답변들은 전래동화처럼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통해 질문하고 답변되어 다시 돌아오곤 했다. 저 질문에 대한 답을 바로 쓰는 건 재미없을 것 같다. 만약 각종 문장 요소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자기의 상황을 직접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이 될까?
짧은 애니메이션 스토리를 만들어보았다.
첫 장면은 씩씩거리는 부사와 형용사 캐릭터의 얼굴을 줌인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부사는 크게 화를 내고 있고, 그 화를 내는 부사 캐릭터의 팔을 잡고 말리는 형용사가 대화를 한다. 둘은 저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억울하다며 말을 주고 받는다. 카메라는 다시 그들의 대화에 집중한다.
부사는 '자기네들이 문장 속에서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사 없이 쓰여진 문장들을 들이밀며, '이래도 내가 필요하지 않다는 거냐' 라고 씩씩 댄다. 형용사는 부사보다는 조금 덜 나서지만 자기만의 자리에서 조용히 빠져 있을 것이다. 형용사가 없는 말하기를 하던 인간들이 저절로 '아 형용사 너무 필요했네' 라며 [형용사 아껴쓰기] 운동을 하는 장면까지 그려진다.
적극적으로 억울함을 표현하는 둘과 달리 접속사는 조금 멀리서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이미 접속사는 눈치를 많이 보던 존재라 그 부분이 십분 반영된 캐릭터의 형상을 띄고 있을 수 있다. '맥락을 읽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없다' 고 어린 시절부터 줄곧 학습을 받아온 접속사였기 때문이다. 매번 자기 자리에 잘 찾아들어가지 못해 눈칫밥을 먹고, 집에와서 엉엉울기를 반복했을 지 모른다. 주어와 동사는 저렇게 '어디 있든 환영' 받는 데 반해, 자기는 제대로 된 곳에 있지 않으면 한소리 듣곤 했기 때문이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욕을 먹던 접속사였다. 접속사의 힘들었던 어린시절이 짧은 여러개의 에피소드로 지나간다.
화면 전환이 되고 어느 시인이나 유명 작가가 등장한다. 시인은 자기의 시를 완성시키기 위해 자꾸만 단어를 찾는다. 신문과 책, 음악과 자연의 소리 등 다양한 것들을 듣고 따라 하면서 '마지막 문장' 의 마지막 단어를 찾는다. 동사를 넣어보기도 명사와 형용사, 부사를 넣어보기도 하지만 그 만족감은 떨어진다. 그런 그에게 접속사가 다가간다. 그리고 자기가 생각했을 때 가장 적절한 접속사를 넣어준다. 여운이 가득 남는 접속사. 그 다음 문장을 너무 기대하게 만드는,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서술하는 것을 멈춤으로써 오는 여운을 가득 선물할 수 있는 접속사를 하나 그 자리에 넣는다. 시인은 감탄했고 그 시인의 독자들은 마지막 접속사를 보고 놀라워했다. 비록 남의 눈치를 많이 보던 접속사였지만, 그날 그 자리는 정말 빛이 났다. 접속사도 자기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시 속에서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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