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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림 May 25. 2023

[나의 응급실 이야기] 집에 가겠다고요!

사회적 인간의 딜레마.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흔히 겪은 중대한 딜레마가 있습니다. 간혹 자기 몸의 건강보다 자기 주변 사람들이 처한 상황, 혹은 자신의 사회적 상황 등을 더 중대한 문제로 여기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치료를 위해 병원에 계속 있는 것이 자신의 사회 활동에 지장이 된다며 퇴원을 종용하면, 그것을 들어줘야 하는가 하는 고민입니다.


 환자는 자신의 삶에 발생한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에 옵니다. 그리고 그런 환자를 마주하는 의사의 역할은 그가 보이는 증상을 파악하고, 원인을 찾아내며, 적절한 치료 방법을 제시하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보통은 딱 거기까지입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의사는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만이고, 환자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면 그만입니다. 다른 고민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환자는 병을 앓는 인간이기 이전에, 자신이 속한 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합니다. 병원에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는 시험을 앞둔 학생이거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의 부모이거나, 요직을 맡은 직장인이었을 사람입니다. 의사들은 너무 쉽게 "건강이 우선이다."라고 하며 환자의 사회적 상황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가 속한 사회에서 그의 위치는, 때로는 생각보다 훨씬 중대한 것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집에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가 있고, 그 아이의 부모가, 낮 동안 아이를 돌봐 주는 보모와 교대하기 위해 퇴근하던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응급실에 실려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보모는 어서 교대를 하고 집에 돌아가서 그의 노모를 위해 식사를 차려야 하는 입장이라 아이를 계속 돌봐 줄 방법이 없습니다. 이에 환자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구급차에서 내리자마자 집에 가겠다고 나섭니다. 그는 당장은 멀쩡해 보입니다. 그런데 의사가 얼핏 보니 환자의 복부에 작은 타박상이 있습니다. 사고 이후 생긴 타박상은 (특히 복부의 타박상이라면 더더욱) 심각한 내출혈을 시사하는 소견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응급실에 체류하며 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의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붙잡아야 할까요? 아니면 갓난아이가 혼자 남겨지지 않도록 귀가하도록 해 줘야 할까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정말 심각하게 아파서 사회적인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는 사람을 진료하는 상황이라면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고민할 것 없이 검사와 치료를 시작하면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퇴원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거나, 그런 판단을 내릴 의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의로든 타의로든 병원에 남아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늘, 적당히, 어중간하게 아픈 사람들입니다.


 걸어 다닐 수 있고, 멀쩡히 말할 수 있다고 해서 다 멀쩡한 사람이 아닙니다. 응급실에 올 때는 제 발로 걸어서 들어왔다가도, 나갈 때는 침대에 실린 채 중환자실로 가거나, 아예 응급실을 나서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환자를 여럿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는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환자의 상태가 향후 얼마나 나빠질 것인지를 예측해야 하고, 때로는 당장 멀쩡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입원을 시키거나 응급실에 체류하도록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예시를 든 사례와 같이, 환자가 자신을 치료하려는 의사의 판단만 따르다가는 그의 사회적 활동에 중대한 지장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은 건강을 잃어도 좋으니, 일단 돌아가서 주변 정리를 한 뒤 다시 내원하겠다고 하며 퇴원을 요청합니다. 실제 병원에서는 그렇게 검사, 치료, 입원 등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돌아가겠다고 하는 환자에게, 퇴원에 따르는 위험성을 경고한 뒤 AMA(Against medical advice) 동의서라는 것을 작성하도록 하고 퇴원시킵니다. 적절한 진료를 제공하지 않아 환자에게 후유증이 남거나, 그가 사망했을 때 병원과 의사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서류를 받는다고 해서 병원과 의사의 법적 책임이 완전히 면제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책임이니 법이니 하는 사무적인 문제를 떠나 진정으로 그 사람을 위해 의사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는 흔히 취약계층이라 불리는, 충분한 사회적 안전망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에게서 더욱 흔히 나타납니다. 자신이 부재해도 자신을 대신해 줄 사람이 일종의 완충 작용을 해 준다면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가령 위의 예시에서도, 그가 검사와 치료를 받는 동안아이를 대신 돌봐 줄 부모나 친구가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안전망을 갖고 있지 않은 취약계층의 환자들은, 병원을 찾는 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회 활동에 있어 그런 제약을 받으며 삽니다. 응급실에서 일하면 하루에도 수십 명의 취약계층 환자를 만나고, 그 중 적지 않은 수에서 위와 같은 딜레마를 겪습니다.


 저는 올해로 여섯 해째 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딜레마와 위기 상황을 해결하며 내공을 쌓았고, 이제는 응급실에서 발생하는 웬만한 문제는 상급자의 손을 거칠 필요 없이 저의 선에서 정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응급실을 떠나 보건지소에 와서 일하고 있는 지금도 그런 딜레마 상황을 계속 겪고 있습니다. 의사의 의무와 환자의 사회적 입장이 충돌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환자를 위한 최선인지, 여전히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사회적 인간의 딜레마'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어렵습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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