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하는 겁니다.
‘친절’에 대한 생각을 풀어 보려 한다.
얼마 전 내가 일하는 보건지소에 친구 A가 다녀갔다. 여름을 맞아 옥상에서 고기 파티와 풍류를 즐긴답시고 초대한 것이었다. A는 대학 동창인데, 졸업 후 나와 매우 다른 길을 걸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탓에 할 얘기가 적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의 그간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동안 쓴 글들을 나누어 읽으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A도 나처럼 약간의 반골 기질을 가진 또라이 부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와 달리 무척 섬세하고 친절한 사람이기도 하다. A는, 외톨이로 지내는 지인에게 먼저 다가갔던 이야기, 지인의 평소 취향을 파악하고 그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사 준 이야기, 지인의 몸이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을 보고 남몰래 약과 편지를 챙겨 준 이야기, 개인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지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선물한 이야기 등을 해 주었다. A는 그 이야기들을 하며, “자랑하는 거 맞다”면서 장난스럽게 히죽거렸다.
나는 A의 이야기에 꽤 감명을 받았다. 요즘 그런 정도의 친절은 가족이나 연인 사이가 아니면 좀처럼 나오기 힘든 것 같다. 친절한 행동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상당한 관심과 정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바쁘고 각박한 현대 사회가, 사람들로부터, 다른 사람의 삶까지 신경 쓸 마음의 여유를 앗아간 듯하다.
얼마 전 아파트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는데, 문이 닫히기 직전에 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아슬아슬하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는 양손으로 집채만 한 상자를 들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가 손이 자유롭지 않아 엘리베이터 층 버튼을 누르기 어려워할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그에게 “몇 층 눌러드릴까요?” 하고 묻자, 그는 자신이 가려는 층을 알려주며 감사를 표했다.
식당에 갔다. 옆 테이블에는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아이와 그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옆 테이블의 아이가 물을 찾으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의 엄마는 종업원을 불러 물을 달라고 요청했는데, 종업원은 물은 셀프로 가져가는 것이라며 물 디스펜서와 반찬거리가 놓인 셀프 코너를 가리켰다. 그러나 그 엄마는 어린아이만 두고 혼자 일어서기 쉽지 않았으리라. 나는 내 몫의 물을 떠 오면서 그의 테이블에도 한 컵 가져다 드렸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주차 정산기 앞에 대기열이 있었다. 평소 그렇게 붐비는 장소는 아닌데 별일이다 싶어 보니, 어느 할아버지가 주차 정산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해 난처해하고 계셨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신경 쓸 다른 일이 있어 그 모습을 미처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대기열 맨 뒤에 쇼핑 카트를 세워 두고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기계를 다루는 방법을 알려 드렸다.
재료를 직접 골라 샐러드를 만드는 어느 가게에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한눈에 보아도 수습 정도로 보이는 알바생이 내 주문을 받았다. 그는 주문을 헷갈려서 내 앞에 온 사람이 주문한 것과 똑같은 메뉴를 만들고 말았다. 그 탓에 소스는 물론 메인 재료까지 바뀌어버렸는데, 나는 결제를 하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격이 잘못된 것 아니냐 묻자, 알바생 또한 자신이 샐러드를 잘못 만들었음을 깨닫고 사과해 왔다. 나는 알바생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고, 불쌍한 샐러드가 폐기되는 것도 원치 않았기에, 그냥 잘못 만들어진 대로 받아가기로 했다.
자랑하는 거 맞다. 나도 A처럼 자랑 좀 해보고 싶어서 쓴 글이다. 근데 자랑을 하려 해도 이런 사소한 경험들이 전부다. A가 베푼 친절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것들이다. 부끄럽다. 그나마도 평소 내 행실을 아는 사람들이 보면, 너에게 그런 면모도 있었냐고 놀릴까 두렵다. 하긴 저런 사소한 경험들마저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걸 보면, 평소에는 어지간히도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었나 보다.
이렇게 자랑만 하고 글을 마무리 짓기에는 완성도가 너무 떨어지는 것 같다. 하여 오늘도 나름 교훈(?)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글을 맺으려 한다.
친절한 행동에는 늘 보상이 뒤따른다. 물질적인 보상이 아닌 정신적인 보상을 말하는 것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나름 경험에서 우러나와 하는 말이다. 나는 친절을 베푼 뒤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만족감이 무척 크다고 느꼈다. 정확히는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었다는 그 사실 자체가 만족스럽다. 텅 빈 마음 한 구석에서 몽글몽글한 구름 같은 것이 피어나 빈 공간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라고 할까. 실제로 그 사람의 일상이 내가 친절을 베풀기 이전보다 조금은 나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친절이란 세상에 몇 안 되는 ‘제로-섬’이 아닌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물질적인 보상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따금 친구나 지인들에게 친절을 베푼 보답으로 기프티콘 따위의 선물을 받았을 때의 기분은 무척 좋다. 다만 물질적인 보상에는 너무 도취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너무 당연시하면, 친절을 베푼 후 물질적인 보상이 따라오지 않았을 때 만족감보다는 도리어 아쉬움을 느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친절한 행동에 전염성이 있다는 점이다. 내가 베푸는 사소한 친절들은, 내가 처음으로 생각해 내서 베푸는 것이 아니다. 내가 비슷한 상황에서 난처해할 때에 누군가 도와준 적이 있거나, 적어도 그런 미담을 들은 바가 있고, 그 기억이 뇌리에 남아 있다가 언젠가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때 튀어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내게는, 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짐을 들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버튼을 대신 눌러 준 경험이 있으며, 아이와 단둘이 식당에 갔을 때 종업원이 나 대신 셀프 코너에서 물과 반찬을 가져다준 경험도 있다. 내 뇌리에 남아 있던 그 친절의 기억은, 다른 누군가에 대한 나의 친절한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제 그들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것이다. 이처럼 친절은 전염성을 갖고 퍼져나간다. 그러다 보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서로에게 친절을 베푸는 날이 올런지도 모른다. 참 낭만적인 생각이다.
“사랑이 없는 삶에는 낭만이 없다.”
A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