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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치규 Mar 16. 2022

더불어 정치 (2) 정치와 ‘더불어’ 살기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느끼게 되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정치적입니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나라가 거의 양분이 되다시피 하니 말입니다. 방송과 신문은 온통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고 우리 일반인들도 정치적인 대화와 토론, 논쟁 속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온갖 비방과 흑색 선전이 난무하고 상대에 대한 공격과 자기편에 대한 방어에 온통 여념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정치인이 된 듯한 느낌입니다. 


이런 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정치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정치와 적절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정치에 얽매이고 억압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실 이런 우리의 모습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 모습이 아닙니다. 정치에 대한 우리의 과도한 관심과 참여는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이루어지기 전 서양이나 일본은 ‘중세’를 경험했습니다. 서양에서는 각 지역의 영지를 영주들이 다스렸고 일본의 경우에도  서양의 영주에 해당하는 ‘다이묘大名’들이 각 지역을 분할해 직접적으로 통치한 중세가 있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일반 대중들이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런 중세를 경험하지 않았고 민초의 자제들이 바로 중앙 정계로 진출하는 길이 보장되어 있어 정치에 대한 관심은 모두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동이 태어나 어린 나이에 천자문 사서삼경을 떼고 지역에 알려지면 온 가문이 그 아이를 키우기 위해 열성이었고 과거를 통해 일약 중앙 정계로 입문할 수 있는 형식적인 기회가 보장된 것이 조선사회였습니다. 퇴계와 율곡, 다산과 매천이 모두 이런 길을 걸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초들마저 중앙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일제와 근대화를 시기를 거치면서도 시험을 통한 관료의 선발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저의 책 <다시 개천에서 용나게 하라>에서 우리의 이런 전통을 '교육을 통한 상승에의 의지'라 명명했습니다. 


이런 전통 속에서 우리는 좌우분열의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근대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나치게 정치화 되었습니다. 이는 정치참여의 활성화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사실 부정적인 면들도 상당하다 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둘로 분열되어 서로 총칼을 겨누기도 했고 사람들은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이념적으로 정치적으로 분열되었고 개인의 삶이 정치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참여로 오히려 황폐화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습니다. 


정치에 깊이 침윤되어 정치에 억압되어 사는 것도, 정치와 무관하게 사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정치에 짓눌려 살면 정치의 노예가 되고 정치에 무관심하고 초연하게 산다면 삶의 가장 기본적인 현실을 무시하고 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부분들이 정치적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에서 벗어나 살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들 모두가 정치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정치와 더불어 살기를 배워야 합니다. 


정치와 '더불어' 산다는 것은 정치에 대해 적절한 관심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치가 우리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정치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제자들에게 항상 "Money is not everything but something."라는 말을 해주곤 합니다. "돈은 모든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Politics is not everything but something."이라는 태도를 가지고 사는 것이 바로 정치와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고 배우자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배우자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나의 주인도 종도 아닙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는 상당히 중요하지만 나의 주인도 종도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내가 그것에 전적으로 휘둘리며 살 수도 없습니다. 적절하게 의사 표명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안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경우는 또 그대로 인정하며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내가 틀린 경우일 수도 있고 내가 옳지만 상대가 지나치게 완강하게 나오면 그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 경우 옳은 나의 의견이 관철될 수 있는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번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고 유서를 쓰고 사라진 선거운동 책임자가 있었습니다. 무척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 분은 정치인이라 할 수 있지만 이미 정치의 노예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아니면 5년 후를 기다리면 됩니다. 그때까지 성실하게 노력해 자기가 원하는 분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도우면 됩니다. 내가 지지하는 분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는 'Everything(모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은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며 함께 동반자로 걸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가 바로 서고 정치가 바로 서야 합니다. 자기가 바로 서지 못하면 정치가 우리를 바로 세워주지 않습니다. 정치가 우리 뜻대로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 전체가 무의미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습니다. 이웃과 이웃이 서로를 죽이고 대립한 우리 역사의 많은 피비린내나는 살육도 이런 태도를 가졌다면 막을 수 있었습니다. 정치에 참여하지만 조금은 초연한 더불어 사는 정치관을 가지면 우리는 더욱 정치에 대해, 자기의 삶에 대해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며 상처를 적게 받을 수 있습니다. 억눌린 정치, 무관심한 정치가 아니라 그래서 ‘더불어 정치’가 우리들에게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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