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경쟁인가?
오후 10시, 서울 강남 대치동의 학원가를 걸어보면, ‘입시 전쟁’이라는 단어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실감한다. 모든 학원이 끝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대치동은 평일 저녁에도 거리는 학원을 오가는 학생들로 붐비고, 주말 아침마저도 학원 건물 앞에는 차량들이 길게 늘어선다. 놀이터에서 뛰어놀기보다 학원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 익숙한 아이들. 부모들은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며 아이를 학원으로 밀어넣고, 학원은 “이 정도는 기본”이라며 더 높은 목표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 끝없는 경쟁 속에서, 우리는 ‘7세 고시’라는 기묘한 단어를 만들어냈다.
‘7세 고시’.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필자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결코 우스운 일이 아니다. 대치동에서는 유치원을 졸업하기도 전에 ‘입학 시험’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있다.
일부 ‘명문’ 학원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학생들을 선별하기 위해 자체 시험을 운영한다. ‘7세 고시’라는 표현이 탄생한 배경이다. 대치동의 유명 학원들은 ‘자리가 곧 기회’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특정 강사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일부 학원에서는 대기자가 수백 명에 달하고, 면접이나 필기시험을 통과해야만 입학할 수 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학원 상담을 가면 “이미 대기자가 많아 시험조차 보기 어렵다”는 말을 듣게 된다. 시험이라니.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시’를 경험한다. 부모들은 이것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 믿는다. 정말일까.
7세 고시 중 대표적인 예가 ‘웩슬러 지능검사(Wechsler Intelligence Scale for Children, WISC)’다. 학부모들은 아이의 지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기 위해, 혹은 특정 영재반이나 심화반에 입학하기 위해 이 검사를 받게 한다. 검사를 통해 ‘상위 1%’ 판정을 받으면 학부모들은 안도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안에 휩싸인다. 7세 아이가 ‘웩슬러 지능검사 점수’를 기준으로 영재원과 학원을 선택받고, 커리큘럼이 결정되는 현실.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교육의 모습일까?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쟁은 비단 7세에 그치지 않는다. 4세부터 수학 영재반을 목표로 학습하는 아이들이 존재하고, 이제는 7세 고시를 넘어서 ‘4세 고시’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학부모들은 ‘대기번호’를 받기 위해 학원 앞에서 밤을 새우기도 한다.
여기, 유명 강사의 강의에서 앞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4시부터 줄을 섰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녀에게 물어보자. 왜 그런 행동을 하셨나요? 그럼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들이 강의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7세 아이가 학원 시험을 치르고, 부모가 ‘대기번호’를 받기 위해 밤을 새우는 현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교육인가? 어린 나이에 경쟁을 내면화하고, 시험 점수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환경이 과연 바람직한가?
학부모들은 흔히 말한다. “이 경쟁에서 밀리면 기회가 없어요.” 하지만 필자는 묻고 싶다. 기회란 무엇인가?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만들어진 ‘기회’가 아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7조 1천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1년 동안 학생 한 명당 평균 410만 원이 사교육에 쓰였으며,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6%에 달했다. 다시 말해, 초등학생 10명 중 9명 가까이가 사교육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그중 일부는 하루 몇 시간씩 학원을 전전하며, 또 다른 일부는 개인 과외나 온라인 강의를 통해 보충 수업을 듣는다. 어떤 형태로든 사교육을 경험하지 않은 학생을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 수치는 한국 사회의 교육열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는 ‘공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회적 강박이 만들어낸 결과다. 공교육이 아이들을 경쟁에서 보호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대학 입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교육이 필수라는 믿음. 이러한 감정이 학부모들 사이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많은 부모가 ‘다른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는데 우리 아이만 안 보내면 뒤처질 것 같다’고 말한다. 즉, 사교육은 더 나은 성취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낙오하지 않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필수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의 차이는 크다. 소득 수준에 따라 사교육비 지출의 격차는 극명하다. 월 소득 800만 원 이상 가구의 경우, 한 달 평균 67만 원을 사교육에 투자한다. 반면 월 소득 200만 원 미만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은 평균 13만 원에 불과하다. 약 5배 차이다. 이는 단순한 소비 패턴의 차이가 아니다. 결국, 사교육의 성패가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결정하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낸다.
부모의 경제력이 곧 자녀의 교육 기회를 결정하고, 교육 기회는 곧 사회적 이동성을 결정한다. 높은 소득을 가진 가정의 아이들은 더 나은 학원을 다니고, 더 많은 교육 자원을 누린다. 반면,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정에서는 최소한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따라서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오히려 기존의 격차가 더 심화된다. ‘교육을 통한 공정한 경쟁’이라는 말은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사교육이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교육은 출발선에서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오히려 출발선의 차이를 더욱 극명하게 만들고 있다. 부모의 경제력이 곧 성적을 결정하고, 성적이 대학 입시와 취업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공정한 기회는 보장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는 한, 사교육비 총액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다.
사교육 시장은 수십 조 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그 안에 있는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한국 아동·청소년의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매년 발표되는 보고서에서 한국 학생들은 ‘삶의 만족도’에서 꾸준히 낮은 점수를 받는다. 학업 부담, 경쟁 스트레스, 수면 부족, 미래에 대한 불안. 이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아이들의 삶을 지배한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 앞에서도 한국 사회는 묻는다.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학생들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다르다. 노력이 반드시 성과로 이어지지 않으며,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모두가 똑같이 노력하는 상황에서, 상위 몇 퍼센트만이 원하는 대학과 직업을 얻는다. 그 아래에 있는 학생들은 ‘부족한 노력’이라는 낙인을 받는다. 하지만 정말 부족했던 것은 노력일까, 아니면 주어진 환경과 기회였을까?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한국 학생들은 ‘삶을 위한 공부’가 아닌 ‘경쟁을 위한 공부’를 한다.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즐거움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의 설명을 따라가고, 방과 후에는 학원을 오가며 문제를 풀고, 밤늦게까지 자습을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잃는 것은 단순한 여가 시간이 아니다. 창의적 사고를 할 여유, 스스로 무언가를 시도해볼 기회,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경험.
한국 사회에서 실패는 배움의 과정이 아니라 낙오의 신호로 여겨진다. 대학 입시에서 한 번 실패하면 ‘재수생’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취업 시장에서 경쟁에서 밀리면 ‘스펙 부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패를 감당할 수 없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도전을 꺼린다. 창의적 사고와 도전 정신은 ‘성공이 보장되지 않을 때’ 자라나지만,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안전한 선택이 강요되고,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이 과연 우리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가?’ 단순히 성적이 높은 사람, 문제를 빠르게 푸는 사람,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며,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 그들을 길러낼 수 있는 교육이 현재 우리에게 존재하는가.
현재의 교육 구조는 성장하고 있지만, 그 속에 있는 학생들은 점점 지쳐간다. ‘성공’이라는 단어가 점점 좁아지고, 그 길을 따라가기 위한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질문해야 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학습’인가, 아니면 ‘더 나은 삶’인지 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의력과 융합적 사고가 핵심 역량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정답 찾기식 문제 풀이에 집중한다. 창의성이란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정의를 내릴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서울대학교에 낙방한 학생이 MIT에서 스카우트되는 사례는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정말로 창의적 인재를 길러낼 준비가 되어 있는지, 고민해볼 문제다.
7세 고시는 단순한 사교육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교육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 놓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시험을 치르고, 줄 세워지고, 경쟁 속에 내몰린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동의는 없다. 믿음과 사랑보단 성적표와 등수를 먼저 익힌다.
교육은 본래 인간을 성장시키기 위한 과정일텐데, 지금의 한국은 경쟁이 교육이고 교육이 곧 경쟁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며, 실패 속에서 배우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지만 하지만 이제 교육은 ‘기회의 장’이 아니라 ‘경쟁의 무대’가 되었다.
모든 아이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낙오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이 구조 속에서 진정한 배움과 성장은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한다. 지금의 교육 방식이 과연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는가? 성적과 입시 결과만을 바라보는 교육이 아닌, 개개인의 가능성을 존중하고, 다양한 길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은가? 경쟁이 아닌 성장,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가?
지금도 수많은 아이들이 책상 앞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공부’라는 이름 아래 쉼 없이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제는 질문해야 할 때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할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정말 교육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한 경쟁을 지속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