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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득 Oct 30. 2024

나를 살게 하는 것

:사람

"야. 니네 엄마 지난번엔 북극곰이더니 이번엔 애기 기저귀야? 지난번에 길 가다가 환경 어쩌고 하는 단체 후원금도 아직 내주고 있다고."


남편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인 나는 이번에는 길거리에서 만난 복지원 아기들 기저귀와 분유 후원 서류에 서명을 해버렸다. 맥주를 마시다 지구 온난화로 살 곳을 잃어가고 있는 멸종위기 북극곰이 갑자기 불쌍해져서 후원을 시작한 이후로, 길에서 만난 산림보호단체에 후원 서명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또 그랬다.


"아니,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오늘 하루종일 여기 서있었는데 아무도 서명해주지 않았거든요. 혹시 후원해 주시기로 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아. 그냥. 불쌍해서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축복받으실 거예요."


갈 길을 재촉하던 나를 막아서던 사회복지사라는 남자는 두 팔을 활짝 벌려 내게 정말 축복을 빌어주는 듯한 몸짓과 함께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필요이상의 동정심으로 가득하다. 어렸을 때부터 다리에 고무다리를 끼고 바닥을 엎드려 기어 다니며 구걸하는 사람들, 춥고 비가 오는 겨울에 길바닥에 앉아 빈 그릇 앞에 놓고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그뿐이랴. 호프집에 앉아있으면 껌 팔아달라, 꽃 팔아달라 시답지 않은 물건들 들고 와서 팔아달라고 하는 사람들, 까까머리 스님들이 와서 손을 내밀면 내 돈은 그냥 스르르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그래도 지하철에서 고무다리 끼고 기어 다니며 구걸하던 사람이 지하철 맨 끝에서 벌떡 일어나 자리에 앉는 걸 보고 충격받아 마음을 많이 바꾸긴 했지만 여전히 이 마음은 굳건하질 못하다.


그런데, 남편이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 나는 오늘도 한 건 해버렸다. 남편이 안다면 기절할 일이다.

눈이 일찍 떠진 새벽 인터넷 주식카페에 들어가 글을 주욱 읽어 내려가는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누군가의 글에 관련 없는 댓글이 달렸다. 그는 상자종이를 찢어 계좌번호를 써놓고 편의점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새벽 두 시에 찍어 올렸다. 그는 목이 너무 마르다고 물한병만 사 먹을 돈을 부쳐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정을 대댓글로 썼다.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스무 살인데 집이 없어 찜질방에 머물다 나와 화장실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일용직으로 아침에 일을 나가기로 했는데 배가 너무 고프고, 목이 마른데 시골이라 근처에 물마실곳도 없다고 물 한 병 사 먹을 돈 몇백 원만 통장에 부쳐달라고 했다. 그의 사정 이야기와 부탁이 너무 간절하게 느껴져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는 노숙을 해도 서울에서 하라며 기차비 명목으로 몇 만 원을 부쳐주었다. 젊은 사람이 돈을 벌 가능성이 많은 곳은 서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의 감사하다는 댓글과 함께, 배가 너무 고프고 밤이 위험한데 식사를 제공하는 고시원 비용이 20만 원이니 20만 원만 더 부쳐주면 너무 감사하겠다는 글이 다시 올라왔다. 사기꾼인가 싶었다. 얼마 전에도 이것과 종류는 다르지만 액수는 비슷한 사기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당한 그 일이 떠올라 기분이 몹시 나빠졌다. 한동안 갈등했다. 그가 다른 곳에 올린 글이나 댓글을 찾아봤다. 전문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의 상황이 너무나 구체적이고 생생했다.


사기가 아니라 진짜라면 너무 안된 일이었다. 내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절실할 때 누군가가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사기도 한두 번 당했냐. 까짓 20만 원 그래 주식으로 잃었다 셈 치고 보내주자'라고 마음먹었다. 20만 원에 사기를 당한 거라면 그저 욕하고 말일이지만, 사람 한 명을 살린다고 생각하면 누군가에게는 천금 같은 돈일 수도 있었다. 돈을 보내준 후, 나는 카페 아이디를 변경하고 그에게 단 댓글도 다 삭제해버렸다. 이후, 그도 그가 남겼던 댓글들을 모두 지웠다. "정말 감사합니다ㅠㅠ. 열심히 일해서 꼭 갚을게요." 라는 댓글만 남겨둔채. 그것은 그의 공개적인 약속처럼 느껴졌다. 나는 꼭 갚겠다는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고 그저 절망만 있는 곳은 아니라고, 스무 살의 젊은 청년의 그가 생각하길 바라며.


문득 나의 삶을 돌아본다.

10대, 20대, 30대, 40대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들을 나열해 보았을 때, 추려지는 것은 사람들이었다.

나를 담는 모든 곳에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은 때론 행복하기도 때론 슬프기도 하였다. 가족 때문에 힘들 때엔 친구들이 눈물을 닦아주었고, 친구들 때문에 힘들 때엔 다른 친구들이 안아주었다. 일과 돈 때문에 힘들 때엔 가족이 힘이 되었고, 공부로 힘들 때엔 연인이 숨통을 틔워주었다. 사람들은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기도 하고,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해주기도 하였다. 사람들과의 추억으로 켜켜이 쌓여진 내 인생은 좋은 기억이 되어 내가 더 살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다. 나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그것은 충분한 인생의 의미이자, 살아갈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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