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서로가 최선의 선택지였음을 바라는 집사의 바람을 가득 담아서,
미래를 알 수 없어서 인간은 과연 행복한 걸까요? 불행한 걸까요?
당장 벌어질 앞날을 미리 엿보았다면, 지금의 삶이 달라졌을까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서 징징거리던 철없는 어린아이에서
어느덧 오둥이 집사가 된 오늘의 하루를 기록하면서,
여전히 내가 아가들에게 최선의 선택지이기를,
나의 마음이 온전히 아가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이제는 10년 차가 훌쩍 넘은 반려견 집사의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계획 없이 집사의 삶에 발을 들이게 된 모든 집사님들에게
당신이 최고의 최선의 선택지였다는 위로와 응원을 전할 수 있는,
때로는 공감이 되는, 때로는 위로가 되는,
사소한 일상을 위해 애쓰는 모든 반려 집사님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모두의 어린 시절이 그러했듯, 나 또한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서 설거지하는 엄마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칭얼거리고 삐지기를 반복했던 철부지였다.
90년대 후반 태생인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지금처럼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던 때이다 보니, 강아지를 사고파는 일명 "강아지 거리"가 성행했었다. 길게 늘어선 거리마다 너도나도 창문 밖에 매달려 구경하기 일쑤였다. 이제 겨우 두 달 남짓 지났을 것 같은 어린 생명체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그저 귀여워-만 연발하며 생명을 상품처럼 바라보던 그 무리의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그 시절의 내 일과는 주말 아침마다 엄마에게 찰싹 붙어서 강아지 거리 구경 가자는 철없는 조르기로 시작했고, 운 좋게 엄마를 설득해서 강아지 거리에 구경이라도 가는 날에는, 기-승-전-강아지 사줘, 였다.
"아 엄마, 제바아아알!! 진짜 엄청 잘 키울게! 내가 맨날 맨날 산책도 시키고 - "
"아 글쎄 시끄럽다니까! 너 또 이렇게 떼쓰면 이제는 구경도 없어!"
하지만 당연하게도 엄마는 코도 들씬하지 않았고, 그렇게 웃으며 구경 갔던 결과의 끝은 항상 삐져서 입이
오리처럼 튀어나온 채 '엄마 미워!' 소리를 치던 모습으로 끝이 났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어느 누군가의 말이 정말 사실이었던 걸까?
우연인 듯 운명인 듯 강아지를 키울 수 있게 된 순간이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내 앞에 찾아왔었고,
그렇게 중학교 3학년 어느 더웠던 여름날 나는 강아지와 함께 살아가는 삶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엄밀히 따지면 "나의 강아지"는 아니었다.
엄마의 지인분께서 영국으로 2년 동안 남편과 함께 장기 출장을 가셔야 했고, 영국의 검열절차가
매우 까다로워 강아지를 데려가려면 최소 6개월을 영국 센터에서 강아지가 검사를 비롯한 여러 절차를
밟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고민을 하시던 중이셨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강아지를 너무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던 지인분께서 어머니에게 부탁을 했던 것이고,
차마 거절하시지 못했던 엄마가 2년 동안 강아지를 돌봐주기로 약속을 하셨던 것이었다.
그렇게 2년 동안 나는 꿈에도 그리던 강아지 "하양이"와 함께 사는 강아지 집사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 달여의 시간 동안, 하양이와 친해지면서 서로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우리 가족과 하양이의 가족은
주말마다 함께 만나서 산책도 하고 간식도 주고, 잠시 우리 집에 머물다가 돌아가며 적응 기간을 가졌었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던 하양이도 자주 얼굴을 보이다 보니, 다행히 우리 가족에게 경계심을 슬슬 풀어가고 있었다. 그때의 하양이는 아마 우리와 함께 2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걸 꿈에도 몰랐을 터였다.
그렇게 하양이와의 거리가 제법 좁혀진 어느 날, 하양이의 가족은 영국으로 훌쩍 떠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양이에게 참 가혹한 첫 한 달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고개들 들고는 한다.
굳게 닫힌 현관문을 보며, 돌아오지 않는 가족들을 기다리며, 망부석처럼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밥도 물도
심지어는 좋아하는 오리 목뼈 간식도 먹지 않은 채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던 하양이.
안쓰러운 마음에 괜히 옆에 앉아서 책을 읽기도 했고, 사료를 한알씩 입에 넣어주며 하양이가 마음을 조금
놓아주기를, 나에게 조금 더 기대어주기를 바라던 마음이 전해졌던 걸까?
하양이가 어느 날 현관에서 거실로 나와, 한창 과외 숙제를 하고 있던 나의 무릎에 올라와 고개를 가슴께에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쓰다듬어 달라는 것처럼, 가족의 손길이 그립다는 것처럼 쉴 새 없이 몸을 비비는 하양이를 꽉 끌어안고 쓰다듬어주었다.
"하양아, 너네 가족이 진짜 너를 사랑해서 우리에게 너를 맡긴 거야. 조금만 참으면 2년은 금방 지나갈 테니까, 우리랑 같이 잘 지내보자!"
가만히 품에 안긴 하양이가 그렇게 서서히 마음을 내어주기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의 본격적인 집사의 삶이
시동을 걸어 출발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밝아진 하양이에 신이 나서 일자별로 산책시킬 사람, 간식 챙겨줄 사람, 똥 치워줄 사람 등등
정말 사소한 모든 것에 담당을 정하기 시작하며 완벽하고 헌신적인 집사가 되겠다는 열의가 넘쳤었다.
마냥 신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도 이제 강아지가 있다!라는 감정만 가득한 채로
그렇게 우리의 앞에는 생각보다 험난한 집사의 삶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야, 오늘 네가 산책 당번이라니까?"
"베란다에 똥 싸놨는데 왜 안 치우냐고!"
"아 애 물통에 물 떨어졌잖아, 오늘 누가 당번.. 아 됐어. 내가 하고 말지 어휴"
강아지를 키우기 전 그저 강아지는 거저 키우는 것처럼 생각했던 우리는
막상 리얼한 현실에 들어와 산책, 똥치우기, 밥 챙겨주기, 간식주기, 병원 가기 등 기존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을 반복적으로 해나가다 보니, 처음의 열의는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서로 귀찮아서 미루는 불량 집사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강아지를 키우는 일에는 생각한 것보다 많은 고정비용이 깨진다는 사실이다.
사료, 용품, 소변패드, 간식, 정기적인 예방접종, 그리고 예상치 못한 수많은 비용들.
준비되지 않은 강아지 집사의 삶은 그렇게 여러 장애물에 부딪히면서 매일매일 한계를 마주했고,
그때마다 싸우고 울고 웃으면서 그렇게 험난한 집사의 삶에 본격적으로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어느덧 습한 바람이 차가운 가을바람이 되고, 하양이처럼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던 계절이 두어 번 반복되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고, 어느덧 우리 가족의 사진첩에는 하양이의 사진이 그맘때 좋아하던 아이돌과 친구들의 사진보다 더 넘쳐나고 있었다.
함께하는 추억의 꼭지들이 하나 둘 생겨날 때마다 찰칵이는 사진 소리들이 사진첩을 채워나갔고,
어느덧 매미 울음소리가 짙어지던 7월의 여름날 성큼 다가온 끝이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헤어짐을 알리던, 하양이와의 이별을 알리던 노크 소리가 현관문을 넘어 우리 가족의 일상을 두드렸고,
세 번의 두드림을 끝으로 열린 문으로 하양이의 진짜 가족이 현관을 넘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예고되었던 순간을 갑작스럽게 맞이하며 하양이와 이별하게 되었고, 하양이는 지난 2년의
시간을 끝으로 진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며 다시 우리는 탈 반려인구가 되었다.
하양이의 흔적이 담뿍 묻어있는 지난 2년의 흔적을 치울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우리는 하양이가 남기고 간 온기와 공백에서 허우적거리며 그렇게 기나긴 장마를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