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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댄스

by 김다라

중학교 1학년 신입생 경서는 경도의 지적장애와 지체장애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여학생이었습니다. 경서는 양쪽 다리길이가 20센티미터 정도 차이가 났어요. 말도 어눌하고 학습 능력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었고요. 하지만 사회적인 인지는 여느 중학교 학생들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하고, 여러 상황에서 위축되는 모습도 보였죠.


경서의 어머님에게 경서는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밖에서 보면 유별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아이가 주변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위축되고 집에 가면 상처받은 마음 때문에 항상 울고. 늘 보호에 익숙한 아이여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상처받는 일도 많아졌죠. 그러다 수업 시간도 늘고 스스로 해야 할 것이 많아지는 중학교에 입학하니 경서는 공포에 가까운 불안함을 느꼈고 어머님 또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겁니다.


처음 학교에 입학해서 저를 만나던 날, 경서는 하루 종일 울었고 경서의 어머님도 울었습니다. 머쓱하게 서서 그 모습을 보며 앞으로 3년, 최대한 섬세하게 경서를 대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체육시간에 단체로 체조를 하는데, 불편한 몸 때문에 뒤뚱거려야 하니 경서는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반 친구들과 롤링페이퍼를 쓸 때는, 친구들처럼 예쁘게 글씨를 못써서 상처받았습니다.

국어시간 1분 스피치를 할 때는 어눌한 말로 친구들 앞에 서야 하는 압박 때문에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여린 경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저를 든든한 ‘내 편’ 이라고 생각해 주기 시작했어요. 다행히도 힘들때, 이러 저러한 일로 상처를 받을 때, 마음의 보호가 필요할 때 저에게 와주었고 서서히 이야기를 많이 하는 수다쟁이가 되었죠. 그리고 학교 생활에서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죠.


단체로 체조를 할 때, 친구들과 체육 선생님이 별다르게 대하지 않자 경서도 괘념치 않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반 친구들과 롤링페이퍼를 쓸 때는 글씨를 예쁘게 못쓰니 대신 하트 그림을 빼곡히 채워 넣었습니다,

국어시간 1분 스피치를 어찌어찌 마치면 국어선생님과 친구들이 가장 큰 박수를 쳐 주어, 다음 스피치 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경서는 그렇게 잘 크고, 경험하며 학교생활을 했어요.


어느덧 졸업이 다가왔어요. 경서가 다닌 학교는 매년 졸업식 행사로 각 학급의 모든 학생들이 한 무대에서 공연을 합니다. 졸업하기 전, 전체 학생이 참여해서 준비하고 무대에 서는 거죠. 좋은 행사예요.

그럼에도 저는 근심이 가득해졌습니다. 경서의 절뚝거리는 다리와 부자연스러운 팔의 움직임이 걱정됐어요. 참여에 의미를 두자면 너무 당연하게 아이가 함께 하는 것이 맞지만, 지체장애가 있는 학생이 전교생 앞에서 춤을 춘다는 것은, 게다가 찐하게 사춘기를 겪고 있는 여자아이에게는 더욱 조심스러운 일이었죠.


각 학급별로 연습을 시작할 무렵, 쿨한척하며 결국은 아무 이야기도 못하고 있는 저에게 경서가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내일 도움반 공부 하루만 빠지면 안 돼요?”


저는 이유를 물었고 경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애들이요, 내일 졸업식 공연하는 거요, 그때 틀 노래요, 선택하고요, 연습도 해본대요.”


그리고 제 눈치를 살피며 이렇게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애들이 책상도 싹 다 뒤로 밀어 놔서 의자에 앉을 수도 없어요.”


단체로 춤을 추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행여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까? 자기 책상을 뒤로 밀어 놔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까? 공연 준비하는 내내 앉을 자리가 없으면 도움반 교실에 와있으라고 해야 할까?


저는 가만히 경서를 살폈습니다. 그런데, 늘 보던 경서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어요. 묘하게 흥분된 눈빛, 다양한 표정, 큰 목소리. 그래서 저는 일단 경서가 원하는 대로 두자고 생각하고 “괜찮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싶은 만큼만 해도 괜찮다, 원하는 대로 하렴.” 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또 다른 상처가 될까 걱정했지만 일단 열어두고 기다렸습니다. 경서는 별말이 없었고 때로는 땀에 푹 젖어 도움반 교실로 오기도 했습니다.


졸업 공연 날, 저는 기대와 걱정과 복잡한 마음으로 객석에서 경서의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곧 경서네 반 차례가 왔고, 아이들이 하나씩 무대로 등장했습니다. 중간쯤, 절뚝거리며 경서가 등장했습니다. 걸그룹 댄스곡의 전주가 나오고 아이들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지체장애가 있는 경서는 역시 몇 박자씩 늦거나 빨랐으며 어색한 몸동작으로 춤을 췄습니다.


괜찮을까? 상처받지는 않을까? 억지로 하는 거라면 문제가 되진 않을까?

무대를 마친 아이들은 퇴장하면서 객석을 향해 마시멜로를 던졌는데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경서가 던진 마시멜로는 객석에 닿지 못하고 발치에 떨어졌습니다. 저는 덜컥 또 경서가 상처받았을까봐 심장이 두근두근했습니다. 다행히 옆에 있던 친구가 떨어진 마시멜로를 주워 객석으로 다시 던지며 넘어갔죠.


아이들의 공연을 보는 객석의 학생들은 저의 걱정과는 달리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무대를 마치고 새빨개진 얼굴로 저에게 온 경서는 고조된 목소리로 무대의 감동을 속사포처럼 쏟아냈습니다.

“경서 진짜 잘 추던데? 언제 그렇게 연습한 거야? 선생님 깜짝 놀랐잖아.”

경서가 원하는 말을 해주자 경서는 더 흥분해서 실수한 부분, 연습하면서 어려웠는데 다행히 넘어간 부분을 신나게 이야기했습니다. 제 앞에는 장애학생이 아니라 오래 준비한 멋진 공연을 마친 평범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경서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저는 그제야 아차 싶었습니다.

학교에 있던 모든 사람들 중에 경서의 무대를 즐기지 못했던 사람은 오로지 저 뿐이었습니다.

경서의 지난 시간들을 핑계로 아이에게 한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경서가 이 정도로 성장했음을 되레 저만 몰랐습니다.

경서가 모든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음을 알았더라면 이것을 기회 삼아 다양한 것들을 준비할 수 있었는데 졸업을 앞둔 순간까지 이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물론 학생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고 다양한 고려를 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자칫 아이에게 소중한 경험을 훼손시킬 뻔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졸업식에 참석하신 경서의 어머님께, 걱정과는 달리 경서가 즐겁게 무대에 올랐다고 전했습니다. 어머님 또한 무대에 오르는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십니다. 그러면서 또 우십니다. 저는 티슈를 건넸습니다.


“입학할 때도 울었는데, 졸업할 때도 우네요.”

어머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조금 더 경서를 이해했다면 경서가 무대에서 했던 값진 경험을 다른 상황에서 한번이라도 더 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저 스스로 ‘장애아이를 가장 잘 아는 특수교사’ 라고 생각하는 순간, 오판하기 쉽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합니다.

학교에서 장애학생에 대해 가장 가까운 사람인 만큼 나의 생각과 판단을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경서를 통해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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