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비에리, <자기 결정>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기를 원합니다.
누구라도 열렬하게 공감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요. 바로 존엄성, 그리고 행복입니다. 그런데 언뜻 익숙해 보이는 이 두 개념은 과연 무엇을 뜻할까요? 내가 내 삶을 정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결정이라는 말, 그리고 독립성이라는 말은 어떤 개념일까요? 이 개념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이며 또 거기서 어떤 현상들을 보게 될까요?
- 페터 비에리, <자기 결정>
스스로 결정짓는 삶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비에리는 "규범의 틀 안에서 외부로부터의 강제가 없는 삶, 어떤 규범을 통용할 것인지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삶"이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독립성'이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자기 결정권이 있다(고 믿는다).
자신의 삶을 결정할 때 비에리의 말대로 완전히 독립적인 상태일 때가 얼마나 되겠는가.
결혼 전에 독립을 해 봤다면 아마 결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얘기하곤 했다.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살 때는 그 울타리가 튼튼하든 아니든 아무리 정신적 독립을 외쳐봐도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반쪽짜리 밖에 안 된다.
결혼을 해도 부모로부터 정서적,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해서 부부 갈등이 생기고 급기야 이혼까지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비에리는 “자신에 대해 결정한다는 것은 사고를 조망하는 능력과 사물의 명확함을 추구하는 일 모두에 언제나 굽힘 없는 열정을 가진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참 어렵다.
그의 말대로 하려면 누구나 자기 결정권이 있지만 그것을 행할 능력을 갖추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비에리가 말한 자기 결정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 각자 차별화된 자아상 만들어가기, 그 자아상을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새롭게 고쳐나가며 발전시키기, 자기 인식을 넓혀가기,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과 기억을 갈고닦기,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타자의 조종을 명료히 꿰뚫어 보고 방어하기, 그리고 자기 목소리 찾기.
와… 자기 결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나 자신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와 닮았다. 자신의 일에 한 발짝 물러서 관조하듯 바라보면 세상에 그리 심각할 일도, 그렇게 불행할 것도 없다.
“남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
이 말은 남편에게 서운할 때 잘하는 말이다. 이제 이 말을 자신에게 써먹어야 할 것 같다.
“자신한테 함부로 말하지 마? 아니, 말해. 그런다고 나 자신과 멀어지지는 않으니까.”
자기 인식은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나의 생각,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떠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 그 두 가지 사이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안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언어로 과거를 떠올리고 표현하는 것도 자기 인식의 한 형태이다. 그래서 자기 인식은 성장할 수 있다. 내가 성장하는 것처럼.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바로 '자기 존중'의 자세라면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나?
‘열심히’는 하고 싶지 않다. ‘열심히’와 ‘최선’은 다르니까.
최선을 다하면 힘에 부칠 때가 있다. 강박적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요즘은 ‘최선을 다해’ 내려놓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에 대해 관심이 없다.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작업은 드라마 재방송 보다 재미가 없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미래에 결정적으로 관여한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MBTI 테스트보다 재미없지만 한 번쯤은 ‘최선’을 다해 볼 가치가 있다.
자기 인식은 왜 중요할까?
비에리는 “우리의 삶과 감정이 더 이상 서로 맞지 않을 때, 위기를 극복하고 계속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새롭게 보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살면서 겪을 만큼 겪고 알만큼 안다고 생각(착각) 해도 예기치 않은 위기가 오기 마련이다.
인생이 늘 평탄하면 좋겠지만 내가 옳다고 믿었던 확신이 더는 의미가 없게 되는, 자신을 송두리째 흔드는 위기를 겪고 무너진 적이 있다. 믿음이 확고할수록 더 처참히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본능적으로 과거의 나와 거리를 두고, 세상 밖 대신 내면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세상과 단절된 채 눈과 귀를 닫고 살았다.
'고립'과 '고독'의 차이를 몰랐다.
시간이 약이지만 어설픈 약은 다시 위기가 오면 재발의 위험이 있다.
고립을 자처하며 시간을 죽이다가 나까지 죽겠다 싶어 살기 위해 그나마 할 수 있는 걸 했다.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내가 새롭게 보였다.
자신과도 권태기라는 게 있는지 그동안 나한테 참 관심이 없었는데 몰랐던 내가 보였다.
자기 인식이 새롭게 되는 순간,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