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등선(羽化登仙)
인간은 누구나 그 어떤 영적 충동, 즉 무한한 것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다. - 샤를 보들레르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그의 저서 ‘신화의 힘’에서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을 들려준다.
미국의 하와이에 있는 팔리 길을 두 경찰관이 자동차로 지나가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려 하고 있었다.
순찰차는 그 자리에 서고, 한 경찰관이 차에서 뛰어내려 그 젊은이를 붙잡았다. 그런데 두 사람은 몸의 균형을 잃고 절벽 아래로 떨어지려 했다.
다른 경찰관이 쫓아와 두 사람을 당겨 올렸다. 이후 죽을 뻔 했던 경찰관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의 인생에서 세상만사가 심드렁해졌다. 가족에 대한 의무, 경찰관으로서의 책임, 자기 인생에 대한 의무......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전에 품고 있던 희망이나 소망이 깡그리 사라져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어나게 되었을까?
한 신문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그 젊은이를 놓아버리지 그랬어요? 당신이 죽을 뻔 했잖아요.”
그가 대답했다. “놓을 수가 없었어요. 내가 만일 그 친구를 놓아버렸다면 지금 이렇게 살아있을 수도 없을 겁니다.”
그 경찰관은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깨달았던 것이다. ‘이 젊은이와 나는 하나의 생명이구나!’
사즉생(死卽生)이다. 우리는 죽어야 사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영역에서는 모든 생명체는 각자의 생명체다.
하지만 시공을 넘어서면(죽으면), 확연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실재는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을.
우리의 몸은 물질로 보이지만, 사실은 에너지다. 평소에는 자신을 물질로 알고 살아가지만, 큰 위기의 순간에 홀연 실재를 보게 된다.
‘아, 우리는 하나의 생명체야!’ 깨달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생명의 춤이다.
자신을 물질로 알 때는 이 율동이 잘 느껴지지 않지만, 자신을 다 내려놓고 텅 빈 마음이 되면, 갑자기 자신의 껍질은 사라져버리고 생명의 춤 한 자락이 되는 것이다.
우화등선이다. 날개가 돋아서 하늘로 올라가 신선(神仙)이 되는 것이다. 우화(羽化)는 번데기가 날개 달린 나방으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애벌레로 살아간다. 꼼지락 꼼지락 의식주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간다. 더 나은 의식주를 향해 서로를 짓밟고 올라간다.
거대한 애벌레의 탑을 쌓는다. 그러다 회의를 느낀다. ‘이게 전부가 아닐 거야! 더 나은 무언가가 있을 거야!’
사춘기의 방황이 시작되고, 하지만 더 이상의 삶이 보이지 않으니, 먹고 사는 일에 전념을 다한다.
고통이 올 때가 기회다. 사고가 나거나 병이 생기면 사는 게 다 허망해진다. 하지만 사고는 수습되고, 병은 낫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고뇌와 권태,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 두 축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죽을 만치 고통이 와야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번데기가 되는 고통이 와야 한다. 세상이 온통 캄캄해야 한다.
꼼지락거릴 힘도 없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게 되어야 한다. 성현들은 깨달음을 위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번데기가 되고 나방이 되어 하늘을 훨훨 나는 체험을 한 사람들이다. 물질인 육체를 넘어서 에너지의 상태가 된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마약을 하는 것은 자신이 항상 무겁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외적인 물질의 도움을 받아서는 잠시 하늘을 날 수는 있겠지만, 곧 땅으로 추락하고 만다.
자신이 물질인 줄만 아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둘로 나눠 보인다. 선과 악, 높은 것 낮은 것, 너와 나...... .
그래야 자신의 물질인 육체를 잘 보존할 수 있으니까. 자신의 육체가 다 사라지는 체험을 해야 물질을 넘어선 이 세상의 진면목이 말갛게 드러난다.
비바람 불고, 느티나무 아래
내 육체의 피뢰침이 운다
내 전 생애가 운다, 벼락이여 오라
한 순간 그대가 보여주는 섬광의 길을 따라
나 또 한 번, 내 몸과 대기와 대지의 주인이 되련다
- 유하, <내 육체의 피뢰침이 운다> 부분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苦)라고 한다. 인생은 왜 괴로운 걸까?
물질인 육체는 시공 속에서 생로병사를 겪기 때문이다.
우리의 육체는 벼락을 맞고 싶어 한다. 한순간에 에너지의 장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