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교육 당국 차원에서 진행되는 교원평가에 교사에 대한 성희롱이 난무하고 있다고 한다.
학생이 교사에 대해 자유롭게 평가를 남길 수 있는 자유 서술식 문항에서 다음과 같은 글들이 나왔다고 한다.
‘찌찌 크더라. 짜면 모유 나오는 부분이냐? 00이 우유통이 너무 작아. 김정은 기쁨조나 해라. XX.’
이 글을 쓴 학생들의 솔직한 심정은 어떨까? 별로 죄의식을 안 느끼지 않을까? 물론 깊은 마음속에서는 희미한 부끄러움이 있을 것이다.
‘아니? 뭐가 잘못된 거야? 우리가 평소에 나누는 대화들이 아냐? 그걸 글로 옮긴 것뿐이잖아.’
어른 남자들 중에서도 학생들 마음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술자리에서 오가는 대화들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어른 남자들도 있을지 모른다. ‘학생들이 공부해야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그런 성희롱 발언에 대한 감수성이 약한 남자 어른들이 분명히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나이들 세계’에서는 그런 발언들이 한때 남자다움으로 통했으니까. 극단화된 가부장 문화의 모습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는 여성은 남성의 성적 대상이 된다. 온갖 종교, 철학 이론들, 사회문화가 이러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 세계를 세 개로 나누어 보았다.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다.
상상계는 태어나 어머니 품에 있을 때다. 세상에는 어머니와 아기 둘 뿐이다. 제3자가 없는 세상이다.
문학이 꿈꾸는 세상이라고 한다. 나와 세상의 합일, 이런 꿈이 유토피아로 나타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세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면 아버지가 끼어들기 시작한다.
상징계다. 아버지는 질서를 강요한다. 세상의 모든 언어는 질서의 망을 형성하고 있다.
아이는 그 질서의 망 속으로 들어간다. 언어를 익히며, 교육을 받으며...... . 인간 사회는 거대한 상징의 세계다.
하지만 인간도 동물이라, 충동과 본능이 있다. 이 충동과 본능이 말갛게 분출하는 세계, 실재계다.
하지만, 이 실재계는 인간 세상에 없다. 이따금 우리는 상징의 질서를 찢고 번개처럼 드러나는 실재계를 볼 때가 있다.
인간은 이 세계들 속에서 살아간다. 어느 한 세계만 사라져도 인간은 인간이 아니게 된다.
학생들이 쓴 성희롱 글들, 그들의 충동과 본능이 상징의 세계를 찢고 날 것으로 드러났다.
처음에는 희열과 해방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들도 알 수 없는 치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상상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세상과 나와 하나 됨, 예술적 감수성이다. 이 예술적 감수성이 없는 성욕은 포르노가 된다.
예술적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 알몸을 그리면 예술이 되고, 예술적 감수성이 없는 사람이 알몸을 그리면 포르노가 된다.
우리 교육이 학생들에게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준 적이 있나? 자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마음과 공감하는 힘을 키워준 적이 있나?
그런 글을 쓰면서, 교사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학생들 끔찍하지 않는가? 이런 괴물들을 우리가 길러낸 게 아닌가?
우리는 과감히 지식위주의 입시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서 복지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서구의 선진국을 보라! 우리처럼 입시가 치열한가? 지식 위주의 교육을 하는가? 그들은 복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복지가 되지 않으면 어떤 교육 정책도 효과가 없다. 아무리 좋은 교육 정책도 입시학원에서 해법을 찾아낸다.
복지가 되어야 학교 교육이 정상화된다. 예술과 인문학 교육을 할 수 있게 된다. 학생들은 자신의 삶을 소중히 가꿔가게 된다.
‘포르노 천국’에서 학생들만 독야청창 할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이 학생들과 교사 평가를 희생 재물로 삼으며 끝나지 않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