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에 대하여

by 고석근

권태에 대하여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가난도 걱정도 병도 아니다. 그것은 생에 대한 권태이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ò Machiavelli (1469-1527, 이탈리아의 정치 철학자)



가족들끼리 함부로 대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들은 서로가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떨 땐 그게 사랑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가정에서 가장 무서운 폭력이 일어난다.


오랜 봉건사회가 우리의 가정을 그렇게 만들었다. 가장은 가정이라는 작은 왕국을 통치하는 왕이다.


그 왕 아래에 아내, 형제자매들이 수직적인 인간관계를 이룬다. 서로 자기 자리를 잘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개성(個性)은 전혀 존중되지 않는다. 이것은 천지자연의 이치에 반한다. 삼라만상은 각자 개성을 지키며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


물 한 방울도 천지자연의 이치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 물은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져 있다.


겉으로 보면 물 같아도, 그 안에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수소와 산소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의 몸도 각자 완전한 개성을 갖고 있는 수많은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만일 원소 하나가 다른 원소와 하나가 되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한순간에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봉건적인 가정이 그렇다. 개성이 사라진 인간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가정, 사회는 이미 죽었다.


그래서 우리의 하늘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늘 엽기적인 살인사건사고들이 일어난다.

전래동화에 나오는 영웅들은 한결같이 고향을 떠난다. 그들 앞에 용이 나타난다. 용은 인간 내면의 나약함이다.


그들은 용을 물리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위기에 처한 고향을 구한다. 원시인들은 성인식을 통해 용을 물리치고 당당한 부족의 일원이 되었다.


수만 년 동안의 석기 시대의 부족사회가 인류사회의 원형이다. 그 원형이 최근까지 남아 있던 사회가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이었다.


인디언들은 모두 신성한 개인이었다. 부족장은 사랑으로 부족을 이끄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철학자 질 들뢰즈는 우리에게 외친다. “접속하라! 창조하라!”


접속하고 창조하는 것은 천지자연의 운행 원리다. 물이 수소와 산소의 접속, 창조인 것처럼 삼라만상은 모두 무언가가 만나 창조된 것들이다.


인간도 스스로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천지자연이 있어 인간이 되고, 다른 사람을 만나 무언가가 된다.

나라는 존재는 누군가를 만나 창조된 것들이다. 우리는 봉건의식에 젖어 자신이 고정 불변하는 존재라고 착각한다.


나를 증명하는 모든 존재들, 남자, 여자,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공무원, 회사원, 팀장, 과장, 대리...... 모두 접속하여 창조된 것들이다.


접속과 창조가 없는 삶에는 반드시 권태가 온다. 마키아벨리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가난도 걱정도 병도 아닌, 생에 대한 권태”라고 말했다.


현대문명의 모든 문제의 근원을 파헤쳐보면, 우리는 그 끝에서 ‘생에 대한 권태’를 만나게 될 것이다.


현대인류가 서로 병적으로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 개인으로 재탄생해야, 종말의 위기에 처한 현대문명은 기사회생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추악하고, 가장 악랄하고, 가장 더러운 놈이 하나 있어,

야단스런 몸짓도 없이 이렇다 할 고함 소리도 없이,

지구를 거뜬히 산산조각 박살내고,

하품 한 번에 온 세상을 삼킬지니,

그놈이 바로 권태! - 눈에는 본의 아닌 눈물 머금고,

물 담뱃대 피워대며 단두대를 꿈꾼다.

그대는 알고 있지,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자인 독자여, - 나와 똑같은 자여, - 내 형제여!


- 샤를 보들레르, <독자에게> 부분



권태는 핵폭탄보다 무섭다.


‘지구를 거뜬히 산산조각 박살내고,/하품 한 번에 온 세상을 삼킬지니,’


권태는 늘 ‘단두대를 꿈꾼다.’


현대문명이 찬란하게 보이는 것은 권태에 젖은 마음이 일으키는 착시현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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