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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Mar 14. 2024

일상이 기적이다   

 일상이 기적이다     


 사면을 내려가면서 조르바가 돌멩이를 걷어차자 돌멩이는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조르바는 그런 놀라운 광경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걸음을 멈추고 돌멩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나를 돌아다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에서 가벼운 놀라움을 읽을 수 있었다.“두목, 봤어요?” “......” “사면에서 돌멩이는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역에서 내렸을 때, 나는 남대문 쪽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햇살로 빛나는 아스팔트 거리에는 오가는 차들이 즐비했다.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아, 서울이다!’     


 나는 경외감에 휩싸였다. 그 후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성채였던 읍내가 초라해 보였다.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 마을이 신비로 가득했는데, 나는 그 신비를 외면하고 살아왔다.     


 여름 밤하늘의 쏟아질 듯한 별들, 타다닥 날아오르던 메뚜기들, 뙤약볕에서 마구 뛰어놀던 모래밭... .     


 그런데 그 신비감은 읍내를 바라보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읍내는 거대한 성이었다.     


 조르바에게는 일상이 기적이다.      


 ‘사면을 내려가면서 조르바가 돌멩이를 걷어차자 돌멩이는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조르바는 그런 놀라운 광경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걸음을 멈추고 돌멩이를 바라보았다.’     


 아래로 굴러가는 돌멩이는 조르바의 눈에 의해 생명을 얻는다. 조르바는 시인, 예술가다.     


 삼라만상은 어느 것 하나 생명체 아닌 것이 없는데, 마음이 얼어붙은 사람에게는 죽은 물질이 된다.      


 삼라만상은 각자의 마음이 밖으로 투사된 것이기에, 각자의 마음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내가 어릴 적 고향마을에서 신비를 보지 못했던 것은 나의 마음이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읍내는 아름다움, 시골은 추함’ 나의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가 시골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이제 나이 들어가며 시골의 아름다움, 삼라만상의 아름다움을 서서히 느껴간다. 글쓰기와 인문학의 힘이다.     

 일상이 기적이다. 속물화된 사람은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의 눈이 닿으면 모든 생명체는 죽는다.      


 그들은 뭔가 괴이하고 이상한 것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일상은 너무나 무료하기 때문이다.     


 시골의 열등감 가득한 아이, 나의 어린 시절이 슬프다. 그때 학교에서 시골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주었다면, 나의 어린 시절도 광휘로 휩싸였을 것이다.     


 불초(不肖)라는 말이 있다. 어버이의 덕망이나 유업을 이을 만한 자질이나 능력이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내가 어릴 때 어버이를 닮으려 했다면 사는 게 얼마나 신비로웠을까? 스스로 불초 소생이라고 생각하며, 농사꾼이 되려 노력했을 것이다.     


 언제나 흙이 묻어 있고 땀 냄새가 나는 부모님은 전혀 나의 본보기가 아니었다. 그분들에게서 전혀 신비를 보지 못했다.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다시는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너무나 큰 것들을 잃고 살아왔다.  



 자연은 신전, 그 살아있는 기둥들에서 

 이따금 어렴풋한 말들이 새어 나오고, 

 사람은 상징의 숲들을 거쳐 거기를 지나가고, 

 숲은 다정한 눈매로 사람을 지켜본다.      


 - 샤를 보들레르, <교감(交感)> 부분          



 우리의 삶이 지리멸렬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과의 교감(交感)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의 잠이 어수선한 것은, 우리 안에 깊이 가둬진 영혼(靈魂)이 늘 울부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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