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다정 Jan 05. 2023

남산의 갈래길 - 소월로 1

소월로를 처음 알게 된 건 지도 애플리케이션에서였다. 맛집 정보를 알게 되면 언젠가부터 표시를 해두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잊고 안 가게 되더라. 서울역 근처 예쁜 카페 정보를 봤는데 그 위치가 소월로였다. 뷰가 예쁘고 조용하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는데 언젠가 남산에 갈 때 가면 좋겠다 싶어서 저장해 두었다.


'소월'이라는 이름을 되뇌어 보는데, 글자와 소리가 여리지만 단단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느낌이 익숙한 것은 김소월 시인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한자 뜻풀이를 보기 전에 생각한 이 단어를 보고 나는 눈이 소복 쌓인 조용한 낮은 언덕길을 떠올렸다. 한자의 뜻을 방금 찾아보니 '素月', 흴 소 자에 달 월 자로 백월과 같이 흰 달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소월길에 서서 희고 밝은 초승달을 가만히 바라봐야 할 것 같다.



소월로를 처음 간 것은 작년 초였다. 초입에 위치한 미술관 겸 카페인 '피크닉(Piknic)'을 방문하느라 들른 것이었다. 사실상 소월로를 갔다기보다 그 주변을 간 것이었긴 하다. 힐튼 호텔과 100년 된 남대문장로교회, 한양도성 성벽 유적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특히 맑은 날엔 막 찍어도 그림인 풍경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도 춥지만 꽤나 날씨가 좋았던 기억이 있다. 확실한 건 단번에 그곳이 맘에 들었다. 이 때는 사울 레이터라는 사진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누군지 잘은 몰랐지만 인상 깊게 봤던 영화 '캐롤(Carol)'을 찍을 때 영향을 준 사진들이 바로 이 작가의 전시라고 하길래 관심이 생겨서 얼리버드 기간에 티켓을 샀다.



그 전시의 제목은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였다. 사울 레이터는 대상이 창문 너머에 있는 모습이나 거울에 비쳐 보이는 형상처럼 남들이 잘 찍지 않는 구도로 찍은 사진을 많이 남겼다. 사진에는 동생이나 친한 친구 등 주변인의 모습이나 사소한 주변의 것들을 주로 담아 초반에는 주목을 크게 받지는 못하다가 서서히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 그런지 그의 삶은 따뜻했던 것 같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2013년에 작고한 그를 추모하는 그의 주변 사람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이 있었다. 그 영상에서 특히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내가 아끼는 사람이 있고 날 아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다. 나 자신도 요즘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인데, 나이가 들어서도 내 주변에 함께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행복한 삶 아닐까.

소월로에는 서울의 풍경이 잘 보이는 근사한 카페들이 꽤 있어 이미 점찍어 둔 곳이 여럿이다. 다음엔 이 길을 같이 공유할 가까운 사람을 데리고 지도에 표시해 둔 카페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작가의 이전글 인조잔디 출근길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