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강타하지 않으면 연습이 아니라는 임윤찬의 말
“첫 음이 심장을 강타하지 않으면 연습이 아닌 거잖아요.”
19일 오전. 미국 보스턴에서 접속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확고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임윤찬은 자신의 쇼팽 에튀드 작품번호 10번과 25번 전곡 음반이 발매된 날, 화상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중이었다. 그는 작품번호 25의 7번이 까다로웠다며 ‘두 마디를 연습하는 데 7시간 넘게 걸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좀 길지만 옮겨본다.
“저는 그 두 마디를 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생각하고 연습을 실행하는 거라서…… 일단 어떻게 두 마디 하는데 7시간 연습하느냐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첫 음을 누를 때 심장을 강타하지 않으면 그건 연습이 아닌 거잖아요. 그래서 저도 (첫 음인) 솔#을 누르는데 만약 심장을 강타했다 그러면 다음으로 넘어가는 거죠. 다음은 레#으로 넘어가는데, 느낌이 안 오면 계속 그걸 하는 거죠 그냥. 그리고 그 레#이 심장을 강타했다면 첫 번째 음과 두 번째 음을 연결해서 연습하고, 그 연결한 두 음이 심장을 강타하지 않으면 다시 하는 거고, 그 부분이 제 심장을 강타했다면 세 번째 음으로 넘어가는 거죠. 세 번째 음만 연습하고 나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음을 연결시켰을 때 심장을 강타하면 네 번째 음도 나오고, 이런 식으로 연습했던 것 같습니다”
‘심장을 강타한다’고 하고 ‘두 마디 연습에 7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고난도 테크닉이 필요한 웅장하고 화려한 부분을 연습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 곡은 왼손만으로 연주하는 나직하고 느린 멜로디로 시작된다. 어려운 기교가 필요하다고 할 수 없고, 소리가 커서 심장을 강타하는 부분도 아니다.
임윤찬은 그가 존경하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말한 대로 ‘음표 뒤에 있는 숨겨진 내용’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했다. 두 마디를 어떻게 연주할지 ‘하루 종일’ 생각한다는 것 역시 이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이 곡의 첫 음인 ‘솔#’을 친다. 그런데 이 첫 음이 ‘심장을 강타하지 않으면’ 제대로 연습한 게 아니다.
악보에 표시된 음을 그저 누르는 게 아니라, 온 정성을 다해 그 음을 깊이 느끼면서 ‘심장을 강타할 정도로’ 쳐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음을 세게 친다는 게 아니라 그 음이 마음에 울림을 남겨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한 음 한 음 연습하고, 그 음들을 연결해서 또다시 연습하고,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음악에 다가간다는 얘기다.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직후 그의 스승인 손민수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손민수 교수는 SBS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나와서, 임윤찬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공연 리허설 전날, 테크닉적으로는 완벽한데도 한숨도 안자고 연습했다는 일화를 들려주며 임윤찬에게 연습은 ‘마음을 음악에 담아내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임윤찬이 음악이 요구하는 영혼과 캐릭터 속으로 자기 자신을 완전히 밀어 넣어서 하나가 되는 과정을 터득한 것 같다’고도 했다.
사실 나는 임윤찬의 말이 내 심장을 강타한 것 같았다. 죽비로 맞은 듯 정신이 들었다. 몇 년째 취미로 피아노를 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연습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임윤찬 같은 프로음악가와 나 같은 일반인을 비교하는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그의 이야기가 나에게도 깨달음을 줬다는 얘기다. 내 수준에서 적용하자면 이렇다. 그저 손가락만 돌아가고 시간만 채우는 건 연습한 것이 아니다. 어떤 음악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 내가 치는 음 하나하나를 잘 듣고 느껴야 한다. 관성대로 하지 말고 마음을 담아야 한다.
임윤찬은 이 날 간담회에서 ‘심장을 강타한다’는 표현을 여러 번 썼다. 그는 피아니스트 이그나츠 프리드만,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유리 에고로프 등 ‘근본 있는 음악가’를 닮고 싶은 마음에서 쇼팽 에튀드를 음반 녹음곡으로 선택했다고 했다. 그는 ‘근본 있는 음악가’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선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굉장히 깊게 깔려있고, 정말 두려운 없는 표현을 하는 사람. 굉장히 진실되고, 그러면서도 정말 예측 불가능한 타이밍에 가볍게 던지는 유머가 있는 (이 대목에서 그는 살짝 웃었다) 그런 음악가인 것 같고요,
또 다른 하나는, 연주를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하고 ‘아 연주 정말 너무 좋다’고 생각하는 연주가 있고, 연주자가 음을 치자마자 귀가 들을 시간이 없이 그냥 심장을 강타하는 그런 음악들이 있는데, 그렇게 심장을 강타해 버리는 음악을 하는 음악가들이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윤찬은 ‘근본 있는 음악가’는 시대가 택한 천재들, 축복받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은 매일매일 연습하면서 진실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세상에 누가 임윤찬을 평범하다고 생각할까.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던 음반사 관계자도 ‘너무 겸손한 말씀’이라고 했지만, 그는 씩 웃기만 했다. 그저 겸손해 보이려고 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직후에도 ‘저처럼 부족하고 준비가 안 된 사람이 큰 상을 받아서 심란하다’고 했던 그다. ‘음악은 만족하는 순간 위험해진다’고도 했었다. 그저 ‘매일매일 연습하면서 진실되게 사는 것’이, 임윤찬이 존경하는 거장의 발자취를 따라 자신을 갈고 닦는 방식이다.
사실 임윤찬의 음악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강타’하고 있는 중이다. 클래식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까지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에 푹 빠져드는 것은, 순수한 몰입과 열정으로 음악의 본질에 다가간 연주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마치 도 닦는 사람처럼 수련하며 마음을 오롯이 담아낸 연주에, 듣는 사람의 마음도 감응한다. 음악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든 없든,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동이다.
그러고 보니 임윤찬의 이야기는 피아노에만 해당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매일 꾸준히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위해 연습한다/노력한다/일한다. 관성대로 기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온 마음을 담아서 한다. 그리고 진실되게 산다. 임윤찬이 알려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간과하기 쉬운 삶의 교훈이다. 임윤찬이 온 마음을 담아 연주한 쇼팽 에튀드 음반을 듣고 다시 한번 이 교훈을 곱씹어 봐야겠다.
*한국방송기자클럽 4월 회보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