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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 아티스트 Oct 15. 2024

나의 피아노 방랑기 4

왕회장님의 피아노 가게에서 즉석  한중 합주  

칭다오 시내의 대형 피아노 매장을 운영하는 '왕금옥 회장님'과 안면을 텄다. 왕회장님이 이제 아무 때나 와서 매장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를 치라고 했지만, 사실 말처럼 '아무 때나' 갈 수는 없었다. 나는 피아노 연습을 해야 하는데, 매장에 있는 피아노로 말 그대로 진짜 연습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왕회장님에게 피아노 선생님을 소개받지는 못했다. 아이들이 바빠서 피아노를 못 치겠다고 했고, 나도 손목이 아파서 한동안 이 병원 저 병원 치료 받으러 다녔기 때문이다. 중국 한의사가 하는 병원, 한국인 침술 명인이 하는 '비공식' 진료실을 들락날락했다. 피아노는 그 핑계로 한 동안 쉬었다. 


왕회장님을 두 번째로 만나러 갔을 때에는 그 매장에서 악기를 샀다. 회장님이 연주해 보여준 얼후에 급 관심이 생겨서 얼후를 덜컥 사버렸다. 피아노 매장이지만 얼후도 같이 팔고 있었다. 가격이 얼마였는지 잘 기억 나지는 않는데, 한국 돈으로 몇십 만원 수준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후를 배우러 중국 음악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왕회장님이 얼후 기초는 그냥 근처 학원에 가서 배우면 된다고 했다) 중국에 왔으니 중국 악기를 한 번 배워봐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또 기초 수준이지만 해금을 1년 정도 배운 적이 있었기에, 해금과 비슷한 두 줄 악기 얼후도 한번 연주해 보고 싶었다. 


얼후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악기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부러진 것을 수리하느라 또 왕회장님을 찾아갔다. 왕회장님은 가운데가 똑 부러진 얼후를 감쪽같이 고쳐주고 수리비는 받지 않았다. 왕회장님이 끝없이 따라주는 차를 또 물배가 빵빵하게 찰 때까지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대학 입시를 앞둔 딸이 있다 했더니 '절대 중국 대학은 보내지 마. 별로야. 나도 우리 딸은 미국으로 보냈잖아요. 뉴욕이 좋긴 좋더라고' 했다. 맨하탄 음대 보냈더니 기숙사가 호텔보다 더 좋더라며, 비싼 돈 낸 값을 하더라고 했다. 피아노 매장하면서 돈 벌어서 자녀 유학에 아낌없이 썼나 보다 생각했다. 지금은 상하이에 살고 있는 그 딸이 아기를 낳아 이제 나도 할아버지가 되었다며 손주 사진을 보여줬다. 귀여운 아기 사진을 자랑하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왕회장님을 보니 어쩐지 한국 사람 같아서 한국말이 나올 뻔했다.  


한 번은 베이징에 다녀왔다고 했더니 왕회장님이 '박 교수는 만나고 왔냐'고 물어서 '박 교수가 누구냐'고 되물을 뻔했다. 중국어로 성씨 '박'은 '퍄오'라는 생소한 발음이라 얼른 알아듣지 못할 때도 많다. 박 교수가 누구인가 얼른 머리를 돌려 보니 내 친구가 안다는 그 음대 교수님 얘기였다. 그래서 '못 만났다'고 하고는 '박 교수님은 친구의 친구'라고 다시 설명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왕회장님과 내가 연을 맺게 된 과정이 중국식으로는 '꽌시'의 연속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중국에 있는 내가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했고, 친구가 베이징에 있는 박 교수에게 연락했고, 박 교수는 칭다오에 있는 왕회장님한테 연락한 것이니, 중국 칭다오에서 한국의 서울, 그리고 베이징을 거쳐 다시 칭다오로 바퀴 돌아온 셈이다.  


또 한번은 매장에 갔더니, 왕회장님은 없고 근처 동네 사람들이 모여 사랑방처럼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매장의 피아노로 모차르트 소나타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꽤 잘 치는 솜씨였다. 안면 있는 매장 직원이, 모인 사람들에게 나를 '피아노 잘 치고 얼후도 배우고 있는, 한국에서 온 김여사'라고 소개했다. 피아노를 치던 사람은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했다. 이 선생님이 피아노 연주를 마치자, 사람들이 나한테도 한 번 쳐달라고 했다. 그냥 간단한 곡으로 재미 삼아 젓가락 행진곡을 쳤더니, 이 선생님이 즉석에서 추가로 반주를 넣었다. 재즈를 공부한 사람 같았다. 어쨌든 생각지도 않았던 한중 합주가 즉석에서 성사된 셈이다. 


박근혜 탄핵이 중국에서도 주요 뉴스로 다뤄지던 때, 피아노 매장을 갔더니 또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대화의 주된 소재는 한국의 정치 상황이었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막 이리 오라고 부르더니 '박근혜는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묻는다. '아마도 감옥에 갈 것 같은데?' 했더니 이 아저씨들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예쁜 여자를 감옥에 보낼 수가 있어?"
"뭐? 박근혜가 예쁘다고?" 

 
예상치 못한 질문에 어이가 없어서 이렇게 대꾸했더니, 더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아, 네가 더 예뻐" 

이건 뭐, 중국 아저씨들의 시대착오적인 단순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박근혜가
예쁘건 예쁘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잘못을 했으면 감옥에 가는 당연하다고 했더니,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아마도 국가 원수였던 사람을 감옥에 보낸다는 거 자체가 잘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한국의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 것 같냐'고 묻는다. 


"글쎄. 아직 잘 모르겠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한국에는 '세계총통'이 있잖아?"

"세계총통이라니? 그게 누군데? 나도 모르는데?" 


듣고 보니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을 이르는 말이었다. 와. 중국 아저씨들한테 한국 정치 얘기를 이렇게 듣게 될 줄은. 아무래도 자국의 정치 뉴스는 국정 홍보에 치우치고,  함부로 최고 지도자를 비판하는 것도 어려운 이들 입장에서, 이웃나라 한국의 정치 상황은 굉장히 흥미로운 화젯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이 아저씨들 중 일부는 웨이신 친구를 맺고 보니, 사드 배치로 혐한 감정이 고조됐을 때 관련 기사를 막 퍼나르던 사람이었다. 한국인으로서 비이성적인 혐한 분위기에 짜증이 났지만, 중국인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쉽게 군중 심리에 휘말리기 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왕회장님의 피아노 매장은 나에게 '보통 중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학교를 다니면서 중국인 학생들과 교류하긴 했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의 보통 중국 사람들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나는 피아노 선생님을 소개 받기 위해 왕회장님을 찾아갔지만, 피아노 선생님이 아니라 보통 중국인들의 삶을, 중국 사회의 일면을 소개 받은 것 같다. 


칭다오를 떠나 완전히 귀국하기 며칠 전, 왕회장님한테 인사하기 위해 찾아갔다. 왕회장님은 무슨무슨 수석협회장의 매장에 같이 가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왕회장님 매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그 매장은 전문적으로 수석을 판매도 하고, 조경도 맡아서 해주는 곳이었다. 주룽지 별장의 수석을 담당했다고 했던가. 하여간 그 곳에는 왕회장님 컬렉션보다도 훨씬 더 비싸 보이는 돌들이 많아서 구경 잘하고 좋은 차도 잘 마셨다.

차를 마시고 나오면서 왕회장님이 집에 잘 돌아갈 수 있겠느냐고 걱정해서 '괜찮다, 디디추싱(중국 택시 앱)으로 택시 부르면 된다'고 했더니, '나보다 낫다'며 껄껄 웃었다. 왕회장님은 모바일 앱을 하나도 사용할 줄 모르는 옛날 사람이었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왕회장님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굉장히 친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듯한 아쉬움이 찾아와서 나 자신도 조금 놀랐다. 아마 2년간의 중국 생활을 마무리하는 '센치함'도 조금 작용했을 것 같다. 왕회장님에게 '한국은 가까우니까 앞으로도 종종 놀러올게요'라고 했지만, 그 후로는 찾아가지 못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게 2017년 여름이었다. 가끔 그 피아노 매장이 생각날 때가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정말 오랜만에 왕회장님한테 메신저로 연락해 봤더니, 피아노 매장은 닫고 시내에 찻집을 열었다며 놀라오라고 한다. 장미꽃과 두 손 모아 이모티콘을 많인 쓰는 건 여전했다. 


(피아노 방랑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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