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하육수 Oct 10. 2024

줄넘기 학원

특수 교육 대상자(줄여서 특교자) 외부 방과 후 수업으로 태권도를 다녔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줄넘기를 배워보면 어떨까 싶었다. 평소 뛰는 걸 좋아하고 음악 들으며 신나게 뛰어다녀 이걸 기술적으로 바꾸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마침 집 근처 줄넘기 학원에서 특교자 방과 후 학생을 받아준다고 하여 상담하러 준후와 같이 갔다. 나부대는 준후를 보고 혹시 못 받아준다고 하면 어쩌지 싶었는데 선생님은 흔쾌히 수업을 하겠다 하셨다. 나와 남편은 못 가르치실 것 같으면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도 된다고 계속 되물었지만 선생님은 이런 아이를 몇 번 가르쳐본 적이 있다고, 그 아이도 결국 성공했다고 하시면서 대신 아이들이 많이 없는 저녁 시간에 1대 1로 하고 원래는 1시간 수업이지만 준후 특성상 힘들어할 수 있으니 처음에는 15분에서 20분 정도 하자고 했다. 그리고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보호자가 수업시간 동안 있어줘야 된다 했다. 


그렇게 줄넘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급하게 저녁을 먹이고 노을을 등지며 우리는 줄넘기학원에 같이 갔다. 2단, 3단, 가위 뛰기 하는 누나, 형들 뒤에서 준후는 선생님과 마주 보고 서서 수업을 받았다. 나는 수업에 방해될까 봐 사무실에 있었지만 선생님을 쳐다보지도 않고 방방 뛰는 애가 컨트롤이 안돼 결국 보초처럼 옆에 서서 같이 수업을 들었다. 


처음에는 줄넘기를 잡는 손에 힘이 없었다. 줄넘기는 계속 떨어뜨리고 애는 새로운 환경에 정신이 없고 선생님과 나는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진땀을 뺐다. 그렇게 15분 수업이 끝났다. 처음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싶다가도 조바심이 났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연습을 해도 될똥말똥일 텐데 싶어 학원 가기 전에 줄넘기 연습을 시켰고 손목 강화하는 기구를 계속 돌리게 했다. 


준후는 내가 연습시킬 때마다 짜증을 냈고 줄넘기 줄만 봐도 도망을 쳤다. 2주가 지나도록 겨우 줄을 돌리기만 하고 뛰어넘지 못했다. 일반 아이들도 줄넘기 두, 세 달은 걸린다며 나를 위로해 주던 선생님도 준후가 엉성하게 돌리거나 빨리 뛰지 못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셨다. 나도 지치고 선생님도 지칠 쯤이었다. 


“오오, 좀 빨라졌는데? 어머니, 준후 연습 많이 했나 봐요!”

그날도 집에서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시킨 다음 학원에 간 날이었다. 집에서는 뛰려고도 안 하더니 갑자기 줄넘기를 앞으로 휙 돌리더니 점프를 했다. 폼은 엉성했지만 어쨌든 처음보다는 속도가 붙었다. 그래도 조금씩 매일 한 보람이 있구나 싶어 선생님과 나는 준후에게 무한칭찬 해줬다. 


그렇게 일희일비한 수업은 계속되었다. 솔직히 희(喜)보다는 비(悲)가 훨씬 많았지만.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줄넘기는 잡지 않은 채 바닥에 드러눕는 아이를 보면 그만둬야 하나 싶다가도 또 그렇게 마음을 굳힌 그날은 갑자기 집중력을 발휘하며 줄을 뛰어넘어 나와 선생님, 심지어 우리를 구경하는 아이들마저 놀라워했다. 


“오, 조금만 더 연습하면 준후 줄넘기 성공할 것 같은데?”

선생님의 밝은 목소리에 나는 또 ‘그래, 계속하다 보면 될 거야.’하며 희망을 가졌다. 말 그대로 준후는 나를 희망고문을 시켰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준후의 실력은 제자리였고 줄넘기 학원 문을 여는 게 괴로울 정도였다. 선생님과 나도 점점 지쳐갔고 무엇보다 준후가 짜증을 많이 냈다. 준후가 하기 싫다고 울고 소리 지르면 아이들은 시끄럽다고 인상을 썼고 어떤 아이는 선생님에게 “쟤 다른 곳에 가라 하면 안 돼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다시 또 방과 후 수업을 바꿀 수 없었고 나 또한 괜히 오기가 생겼다. 조금 있으면, 시간이 지나면 하고 지쳐가는 나를 다독였다. 하루는 내가 몸이 안 좋은데 줄넘기 학원에서 준후가 난리를 쳐 제대로 수업받지 못하고 나왔다.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나왔다. 이제부터 힘들고 괴로운 난관들이 엄청 많을 텐데 이깟 줄넘기 가지고 우는 내가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래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몇 달은 더 다녀보고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그만둬야겠다 생각할 때였다. 


그날도 준후는 학원에 들어서자마자 징징거렸고 선생님은 그런 준후를 다독이며 줄넘기 줄을 건넬 때였다. 


“으아아앙-!”

갑자기 준후가 학원이 떠나가라 크게 울었다. 닭똥 같은 눈물이 체육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내가 달려가 달래 봐도 소용없었다. 선생님은 준후와 나를 데리고 사무실로 데려갔다. 


“어머님, 준후가 너무 힘들어하네요.”


선생님은 어렵게 입을 여셨다. 


“줄넘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운동이라 일반 아이들도 많이 힘들어하고 시간도 많이 걸려요. 준후는 그래도 잘 따라오고 있는데 문제는 준후가 줄넘기에 대한 흥미나 동기가 없는 것 같아요. 못해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즐겁게 다닐 수 있는데 줄넘기도 못하는데 흥미가 없으면 너무 힘들고 괴롭거든요. 아직 준후가 줄넘기할 마음이 되지 않은 것 같아요.”


선생님이 언제 말씀하시려나 항상 마음 졸이고 있었고 이런 순간이 오리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니 무방비로 방망이에 맞은 것처럼 타격감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괜찮은 척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선생님이 준후를 많이 예뻐해 주시고 노력하신 걸 알기에, 힘들게 말씀하시는 걸 알기에 속상한 티를 내면 안 되었다. 


선생님이 그동안 수고했다고 사탕을 주니 언제 울었냐는 듯 헤헤 웃는 준후를 보며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구나 싶었다.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중간과정은 뛰어넘은 채 어려운 과제를 떠넘긴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도 시행착오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줄넘기를 경험해 봤으니 다른 것도 해보고 그중에서 준후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말이다. 


학원을 나서기 전 선생님은 준후를 안아주시며 말씀하셨다. 

“준후야, 그동안 수고 많았어.”

언제든지 준후가 줄넘기에 흥미가 생기면 다시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줄넘기 학원을 돌아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