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에 대한 잔상
한 브런치 작가님의 둘째에 대한 글을 읽고 상념에 잠겨 있던 날이었다. 그날은 준후 센터장님과 상담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상담 전 센터장님은 기초조사를 해야 한다며 설문지를 내밀었고 거기에는 가족사항을 쓰는 기입란이 있었다. 남편, 나, 아들 이렇게 셋을 쓰자 센터장님이 말씀하셨다.
“둘째는 없어요?”
“네, 없습니다.”
“둘째 낳을 예정도 없나요?”
“네.”
나의 칼대답에 센터장님은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씀하셨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둘째를 가져 보는 건 어때요. 준후를 위해서라두요. 이런 애들은 친구 사귀는 게 어려운데 부모님이 평생 친구노릇 해줄 수도 없잖아요. 둘째 있으면 준후에게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평소 같았으면 ‘뭔 참견이야.’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일이지만 하필 둘째에 대한 글을 읽은 날에 둘째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도 둘째가 있었어요.’
첫 고백이다. 남편과 나만 아는(어쩌면 준후도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친정엄마나 시댁식구들, 친한 친구들도 모르는 이야기이다. 나에게는 원래 둘째가 있었다.
준후가 두 돌 채 되기 전쯤이었다. 아이의 잠투정에 안 그래도 잠을 못 자 하루 종일 피곤한 상태였는데 그즈음에는 잠이 쏟아져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릴 때가 많았다. 속도 좋지 않았고 매사에 다 짜증이 날 정도로 예민하게 굴었다. 생리도 워낙 불규칙적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건너뛰는 경우가 많아 이 모든 게 육아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아버지가 이상한 꿈을 꿨다고 했다.
“연못에 커다란 잉어를 잡는 꿈이었는데 이거 태몽 아니냐?”
하며 나를 쓱 보셨다. 그 자리에서는 절대 아니라며 웃어넘겼지만 혹시, 설마? 하는 예감이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예감은 맞았다. 선명하게 그어진 두 빨간 선을 보며 나는 망연자실하게 임신테스트기를 바라봤다.
그때 나는 공부 중이었다. 육아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내가 선택한 몸부림은 공무원 수험 공부였다. 나는 공무원이 되어 아이를 더 잘 키우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실제는 육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공부를 했다. 육아로 내 하루가 허비되는 걸 열심히 줄을 긋고 손때가 묻은 책을 보며 '아,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구나'하며 보상받을 때였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고 임신인 걸 알았을 때는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을 때였다.
그때 내가 느낀 첫 감정은 기쁘다, 행복하다가 아니었다. 왜 하필 지금, 바라지도 않았는데 왜, 또 지긋지긋한 육아를 다시 해야 되나였다. 일종의 거부감이었다.
없는 잠 쪼개가며 새벽에 일어나고 아이 재우면 쪼르르 책상 앞으로 달려가 공부를 한 내 노력은 결국 헛수고인가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얼른 합격해 세상 밖으로 나갈 미래만 꿈꾸던 나에게 뱃속의 아이는 걸림돌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뱃속에 들어 있는 생명이 미웠다.
임신 소식을 알리자 내 속을 알리 없는 남편은 마냥 좋아했고 나는 그런 남편을 보며 시무룩해졌다.
“나 임신해서 시험 떨어지면 어떡해.”
“지금 시험이 문제야? 둘째 낳고 그다음에 공부해도 되잖아.”
그동안의 내 노력을 아무렇지 않게 치부해 버리는 남편이 너무 얄미웠다.
준후를 가졌을 때처럼 산부인과로 바로 달려가지 않았다. 준후가 뱃속에 있을 때는 다정한 말을 쉼 없이 건네줬지만 둘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명을 지어주자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그저 없는 생명으로 치부해 버렸다.
어제와 똑같이 아이 밥을 먹이고 청소기를 돌리고 시간이 생기면 공부를 했다. 먹는 것도 가리지 않았고 뛰어노는 아이를 붙잡는다고 몸을 조심하지도 않았다. 가끔씩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헛구역질이 났지만 그럴 때마다 신경질이 났다. 의사가 초음파를 보여주며 축하한다고 해도 나는 그저 멀뚱히 검정과 흰색이 교차되는 화면만 멀뚱히 쳐다봤다. 그 기간 동안 참 못된 생각을 많이 했다. 그 당시의 나는 끔찍하고 잔인했다.
남편과 준후, 나 이렇게 셋이서 병원 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였다. 저번에 들리던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초음파의 뱃속은 잠잠했고 이름 없는 아이는 가만히 떠 있었다.
“계류유산되었습니다.”
다음 날 입원해 수술하기로 하고 차에 올라탔다. 남편은 앞만 보며 운전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차가운 뒷모습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나를 향해 쏘는 것 같았다.
‘바라는 대로 되니 좋아? 얘는 너 때문에 죽은 거야.’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이 생명에게 얼마나 모질게 대했는지 누구보다 나 자신이 알고 있었지만 죄책감은 없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갔으면 싶었다.
그날 밤, 준후를 재우는데 준후의 눈이 말똥해 도저히 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자장가 불러줄까?”
나는 준후의 등을 토닥여주며 작은 별을 불렀다.
문득 내 노랫소리가 식도를 타고 굽이굽이 흘러 뱃속의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이미 불씨가 꺼져버린, 들을 수도 없는 내 목소리를 이제야 들려줬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동쪽하늘에서도 서쪽하늘에서도’
왼손은 준후를 토닥이고 오른손으로는 배를 쓰다듬으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이 났다. 처음으로 그 아이를 위해 울었다. 준후는 어느새 잠들었지만 노래를 멈출 수 없었다. 내 안에 있을 마지막 밤만이라도 내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어느새 잊고 지내다 준후가 자폐진단을 받고 나서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 아이가 나에게 주는 벌이 아닐까.’
여유가 생기기도 하고 준후를 위해 동생이 필요할 것 같아 남편에게 슬쩍 둘째 이야기를 꺼냈더니 남편이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준후가 저런데 둘째까지 어떻게 키워. 그냥 우리 셋이 평생 살자.”
남편은 그렇게 말했지만 어쩌면 남편은 그때의 내 이기적인 얼굴을 잊지 못해 저러는 것이라 짐작된다.
내 곁에 잠시 있어준, 엄마의 관심을 받지도 못한 그 아이에게 지금에서야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존재자체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아이에게 나는 저주를 퍼부었다. 어쩌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엄마를 보며 아이도 괴로워하다 사라진 게 아닐까. 내가 만약 이 아이를 사랑으로 키워 건강하게 낳았다면, 그랬다면 준후는,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런 부질없는 상상과 후회를 해본다.
그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해 버리는 내 모습을 보며 그 아이는 뭐라 생각할까. 부끄럽고 염치없지만, 혹시 그 아이가 내 꿈에 나타난다면, 하늘에서 나를 보고 있다면 조용히 말을 건네고 싶다.
미안해. 널 잊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