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저녁밥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시아버지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침에 화분에 꽃이 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오신 터라 혹시 그거 때문에 전화하신 건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밥 먹고 준후와 센터에 갈 시간이라 솔직히 귀찮았다. 바쁜데 왜 전화하신 거야란 생각이 울컥 들었다. 그래도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신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준후 밥 챙겨 먹이랴, 전화받으랴 허둥대는 내 목소리를 알아차리시고는 아버님은 미안해하며 전화를 끊으려 하셨다. 뭐야, 별일 아니었나 싶어 김이 새면서도 아버님께 괜찮다고,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시라고 했다.
- 내가 어제 응급실을 다녀왔어.
“네?!”
아버님은 담담하게 응급실 다녀온 이야기를 하셨지만 전혀 담담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버님 말씀인즉슨, 최근 코감기로 병원에서 약을 타드셨는데 요 며칠 손바닥이 가렵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나에게 전화로 손이 가렵다고 하셔서 내가 설거지 많이 하셔서 주부습진 걸린 거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했고 아버님도 그런가 하며 허허실실 웃고 넘어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저께 또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약을 드시고 주무셨는데 그날 밤 갑자기 온몸이 가려워 깨셨단다. 팔이며, 배며, 등이며 오돌토돌 발진도 나 찬물로 씻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식도에 뭐가 걸린 것처럼 콱 막힌 느낌이 나더니 명치 쪽이 갑갑해지셨단다. 숨쉬기 힘들고 가슴이 조여오는데 하필 그날 시어머니는 시누이집에 가 있는 터라 집에는 아버님 혼자 계셨다. 아버님은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단다. 어찌저찌 택시를 불러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가셨고 응급처치를 받는 아버님에게 의사는 약물에 의한 알레르기 반응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아버님은 그렇게 혼자 응급실에서 치료받다가 홀로 집에 돌아오셨단다.
아버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아찔했다. 아버님이 아나필락시스로 생명이 위독해질 뻔했기 때문이다. 그걸 또 혼자 끙끙대며 홀로 응급실에서 치료받으셨단 말씀에 안쓰럽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왜 119를 부르지 않았냐고 했더니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정도인데 굳이 구급대원들 수고스럽게 할 필요가 있냐.”
라고 그렇게 숨이 막히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까지 하셨단다. 아버님은 그런 분이었다.
처음 상견례 자리에서 만나 뵙고 엄마, 아빠는 입을 모아 말씀하셨다.
“너희 시아버지, 참 선비 같으신 분이더라.”
선비. 딱 그 표현이 맞았다. 아버님은 내가 여태까지 본 사람들 중 가장 도덕적이고 강직하신 분이다. 돈과 명예에 욕심도 없고 언제나 책을 좋아하는 아버님이었다. 돈 안 되는 글 읽기만 좋아한다고 어머님이나 남편은 그런 시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 눈에는 그런 아버님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아버님의 책장을 보면 고전 소설이며 인문, 시집, 과학 서적이 빽빽하게 들어차있고 갈 때마다 새로운 신춘문예책이 책상에 펼쳐 있었다. 아버님은 특히 우주에 관심이 많았다. 다른 이야기를 할 때는 시큰둥하셔도 우주 이야기만 나오면 신나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노인에게서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필사도 하셔서 가끔 빽빽하게 적힌 필사노트를 보며 나도 따라 쓴 적도 있었다.
항상 ‘나’ 보다는 ‘너’를, ‘우리 가족’보다는 ‘주위’를 먼저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지키지 않아도 아무도 욕하지 않을 일을 아버님은 법은 법이라며 고리타분하게 지키셨고 트로트 대신 클래식을 즐겨 들으시는 우아한 취미를 가진 분이었다.
아버님은 나를 많이 예뻐해 주신다. 내가 가족들 중에서 아버님 이야기에 유일하게 귀 기울이는 사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시고 가끔 집으로 내가 읽을 책을 보내주시기도 했다.
준후가 자폐 판정을 받았을 때 다른 가족들은 나에게 애가 왜 이렇냐며 꼬치꼬치 캐물었을 때 유일하게 시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한참 뒤 나에게 전화로 말씀하셨다.
“네가 많이 힘들겠구나. 그래도 같이 이겨내 보자.”
짧은 말이었지만 나에겐 커다란 울림이었다. 다들 준후만 걱정하던 차에 유일하게 나를 걱정해 주신 분이었다. 시아버지 사랑은 며느리라는 말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아픈 아이를 키운다는 핑계로 아버님께 전화를 자주 드리지 못했고 아버님도 나나 준후에게 짐이 될까 봐 연락을 잘 안 하신다. 대신 가끔 카톡으로 꽃 사진을 보내며 ‘이 꽃처럼 우리 집안에 좋은 기운으로 이어져 가족 모두 기쁘고 아름다운 나날이 되었으면 한다.’라는 메시지를 남기셨고 나는 거기에 뭐라 답해야 하나 고민만 했다. 어쩌면 그 메시지는 그냥 보내신 게 아니라 며느리의 연락을 바라는 아버님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눈치 없는 며느리는 그런 꽃 사진을 보내는 아버님을 부담스러워하기만 했다.
아버님이 드셨던 약 중에 항생제가 있어 혹시 그 항생제에 알레르기 반응이 생겼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드렸다. 그리고 다음에 혹시 그런 일이 또 생기면 혼자 끙끙 앓지 마시고 급하면 가족이나 119에 전화하라고 말씀드렸다.
- 병은 널리 소문을 내야 낫는다는 옛말이 있다는데 너에게 좋은 자문을 받았구나. 고맙다. 이렇게 늙어서 조금씩 삐걱거리는 걸 보면 시간이 자꾸 가고 있나 봐. 그래도 혼자 겪어서 다른 가족들에게 걱정을 안 끼쳐 다행이야.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하마.
끝까지 선비 같은 말씀만 하시는 아버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풋- 웃음과 함께 목구멍에 뭐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가고 있다는 아버님의 말씀이 왜 그리 서글프게 들리는지. 하늘아래 시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건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한 해 한 해 조금씩 달라지는 아버님을 보니 더 애틋해지고 붙잡아두고 싶다.
오늘은 내가 손주꽃 사진을 찍어 아버님에게 카톡을 보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