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는 돌아서면 방학이다. 한국처럼 여름방학, 겨울방학 연 2회에 길게 쉬는 게 아니라 3번의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기가 길면 중간에 텀 브레이크(중간 방학)까지 껴서 총 4회에 걸쳐 틈틈이 쉰다. 방학이 너무 자주 오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수업일수는 신기하게도 182일 내외로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제학교는 8월부터 1학기가 시작하는데, 추석과 핼러윈데이 즈음하여 텀 브레이크가 있다. 2주 내외의 길지 않은 방학이라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체험학습이나 친구 집에 놀러 다니는 게 주 활동이었다.
우리에게 아들 2호와 같은 반인 N의 엄마 D가 방학 계획을 물어봤다.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하자 자기 고향인 껀터(Can Tho)에 같이 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껀터는 미토(My Tho), 벤쩨(Ben Tre)와 함께 메콩강 지역 관광지(메콩 델타)로 유명한 곳이었다. 호치민에서 메콩강 투어를 가게 되면 미토(My Tho)에서 배를 타고 4개의 섬을 방문하게 되는데,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종종 함께 갔었다. 하지만 미토 지역이 아닌 메콩강은 처음인 데다, 관광코스가 아닌 현지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방학 동안 다른 계획이 없었다가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간다고 하니 아들들은 당연히 예스를 외쳤다.
껀터 여행 1일차
여행 준비는 D의 주도 하에 착착 진행되었다. 우리 가족 외에도 T와 두 아들도 함께 가기로 해서 3명의 엄마와 5명의 남자아이가 함께 가게 되었다. 껀터까지는 차로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베트남은 차를 렌트하면 저렴한 인건비 덕분에 운전기사가 따라와서 편했다. 1군 D의 집으로 모이기로 했었으나, 길을 잘 모르는 우리 가족과 멀리 7군에서 오는 T의 사정을 고려해 D가 아침 6시에 우리 집, 그 후 T의 집으로 차례로 픽업을 오기로 했다. 어차피 껀터 지역으로 가려면 7군 방향으로 지나가야 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D의 고향집은 껀터 시내에서도 외곽으로 1시간 정도를 더 들어가야 했다. 차도 없고 건물도 없고 나무와 풀만 있는 길을 달려 D의 집에 도착했다. 베트남 여행을 다니다 보면 보이는 마당이 있는 단층집, 딱 그런 모습이었다. 마당에 들어서니 D의 아버지와 이모를 포함한 친척들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선물이라도 들고 왔어야 했나? 급한 대로 아이들이 밥투정을 할까 봐 가지고 온 한국 김을 선물로 드렸다. 흠흠
간단하게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 뒤뜰에는 수로로 둘러싸인 오렌지 나무와 잭 플루트 나무, 바나나 나무가 있는 작은 농장이 있었다. 좁은 수로였지만, D는 아이들을 좁은 배에 태우고 익숙한 솜씨로 노를 젓기 시작했다. 배가 작아 보여 내까지 타면 뒤집어질까 봐 타지 않았는데 잠시 후 아이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결국 배가 뒤집어진 것이다. 배가 뒤집어질 줄 예상도 못했던 우리 아이들은 놀라서 울부짖었고 , 그 와중에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는 아들 1호는 신발! 신발! 울먹거렸다. 난리법석을 떨며 아수라장에서 빠져나오는 아이들 뒤로 배시시 웃고 있는 N의 얼굴이 보였다. 알고 보니 매번 올 때마다 N이 배를 흔들어서 배가 뒤집히게 만들어 물에 빠트린다고 했다. 외갓집에 방문한 친구들에 대한 N만의 환영식인 셈이었다.
수돗가에서 아이들 흙탕물을 대충 씻겨 내고, 다른 아이들을 따라 대문 밖으로 나가니 강물에 멱을 감고 있는 동네 아이들이 보였다. 물이 깨끗해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재밌어 보였는지 아들 2호가 슬금슬금 물 쪽으로 갔다. 하지만 이미 구명조끼는 매진 상태라 어쩔 수 없이 웃옷은 벗고 바지만 입고 등에 플라스틱 물통을 달고 물에 들어갔다. 물에 뜨는 플라스틱 물통과 생수통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재밌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멱을 감으며 노는 동네 아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물놀이를 하다가 강에서 낚시를 하기 시작했다. 놀이공원에 가면 항상 낚시게임에서 머물던 아들 1호는 은근슬쩍 낚싯대 하나를 잡고 폼을 잡아봤다. 아쉽지만 첫날은 꽝이었다.
실컷 놀고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D의 말에 따르면 이모가 음식 솜씨가 좋아서 자기도 여기만 오면 몸무게가 늘어서 돌아간다고 했다. 처음 먹어보는 베트남 가정식 백반이었다.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베트남 요리는 마늘, 간장을 주로 쓰는 한국의 요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거부감이 별로 없었다. 간장 베이스의 요리를 좋아하는 아들 1호는 생선 조림에 푹 빠져 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아들 2호도 국물에 밥을 말아서 생선조림과 함께 밥을 잘 먹었다. 외국인이라 애들 식사를 걱정했었던 시골 어른들도 아이들이 밥을 잘 먹는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어디를 가도 까탈스러운 것보다는 잘 먹는 아이들이 여행도 함께 다니기 좋다.
시골에서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작은 방 두 개에 나눠 어른 셋과 아이 다섯이 나눠 누웠다. 시골 할머니 댁에 갔을 때처럼 침구에는 오래된 냄새가 났지만, 아이들은 피곤했는지 금방 잠에 곯아떨어졌다. 시골에 아침은 더 일찍 밝아 오는 것 같다. 6시도 안 되어 아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일어난 아이들은 뒤뜰로 나가 낚시에 쓸 지렁이를 잡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땅을 삽으로 파고 지렁이를 잡아 커다란 나뭇잎에 담아 어른들에게 낚시 바늘에 껴달라고 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2마리의 물고기를 잡았다. 낚시를 한다길래 설마설마했는데 물고기가 잡힐 줄이야 정말 별게 다 있는 뒤뜰이었다.
아침을 먹고 마당에 나오니 D의 이모님이 그늘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어제 길에서 말리고 있는 식물 줄기로 바구니를 엮고 계셨다. 어렸을 때 엄마 따라 라탄 바구니 꽤나 엮어봤던 나는 슬쩍 옆에 앉아서 이모를 따라 해 봤다. 서툴게 엮는 것을 보고는 직접 보여주면서 가르쳐 줬는데 손에 익지 않아서 그런지 영 어설펐다. 엄마가 뭔가 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도 옆에 앉아서 바구니를 하나씩 잡고 엮기 시작했다. 의외로 아이들은 잘한다며 칭찬을 받았다. 때로 아이들이 어른보다 낫다. 그렇게 일일이 손수 만든 바구니는 다시 마당에서 햇볕에 말렸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비싸게 팔리는 해초 바구니는 이렇게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해초 바구니 만들기 체험학습(?)을 마치고 우리는 짐을 정리해 껀터 시내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차에 올라서 보니 꽤 많은 양의 과일들이 짐칸에 실렸다. 알고 보니 시골을 방문한 손님을 위해 준비한 과일들이었다. 시골 인심은 한국에나 베트남이나 넉넉하구나 싶었다. 한국에서도 못해본 시골 체험을 하고 우리는 이제 본격적인 껀터 시내 관광을 위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