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하는 날
*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마지막에 :)
4월 1일 월요일, 거짓말 같이 근무를 시작했다.
이제 야쿠르트 프레시매니저를 하는 동안엔 지하철 조조할인받는 건 익숙한 삶이겠지.
할인도 받고 자리도 앉아서 가고 너무나 좋은데? 싶었지만…
…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아침을 깨우는 직업은 많다. 내가 그 시간에 움직이지 않아서 몰랐을 뿐.
(주말에 등산을 간다고 일찍 움직였을 때 지하철 자리가 넉넉해서 착각을 했던 거다)
교대에서 환승을 하고 압구정역에서 내리는 코스인데,
교대에 내리면 모든 사람들이 뛰어간다. 그 풍경 참 낯설다.
우리 나이 또래보다는 윗 세대인 분들이 많은데, 이렇게 열심히 하루를 살아간다고? 싶은 생각들이 스친다.
반성한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불끈)
야쿠르트 배달 일은 월화수목금 중에 월요일이 평균적으로 가장 바쁜 날이다.
나는 나의 첫 근무 요일이 월요일이 되었다.
아, 뭐, 그래, 어차피 해야 하니까! 그래도 초반엔 도와주신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영업점에 도착하니 이게 무슨 소리람…? 네? 저 혼자 해야 한다고요? 왜요오오오오…..
나랑 같이 입점한 여사님이 환갑을 넘기신 분인데 아무래도 같이 동승해서 배달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점장님이 혼자 할 수 있지?라고 묻는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라며 의지를 불태운 지 20분 만에 그 의지가 사라지려고 한다.
요일 중에 가장 바쁜 월요일에
그것도 첫 출근날에
나 혼자 배달을 시작하게 되었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이 날 근무하면서 기록들 남겨야지 했는데 사진들이 하나도 없다. 배달하는 것만으로도…!)
* 이래서 정말로 인수인계받을 때 메모가 중요하다 *
처음부터 고객님이 이사를 가지 않고, 주소를 잘 적어주고, 연락처를 잘 적어주고
지금까지 변동사항이 없는 분이라면 모르겠는데,
처음 작성했을 때와 달리 같은 구역 안에서 이사를 가서 여사님 머릿속에만 그 주소가 있고
(다른 구역으로 이사 가게 되면 주소지 이전을 하니 이런 일이 잘 없지만)
원래는 그냥 윌을 먹는데 저지방윌로 변경을 하시고
연락처가 바뀌었는데 아직 수정이 안되어 있고 등등
이런 경우들이 있어서 인수인계받을 때 허투루 듣지 말고 하나하나 사소한 팁까지 모두 메모를 해 둬야 한다.
그 메모에 의존해서 하나씩 하나씩 배달을 하는데, 왜 식은땀이 나는 거 같지
아직 내 코코는 지붕도 없고 앞 가림막도 없어서 바람이 숭숭 내 안면을 강타해서 더울 일도 없는데
그래도 덥다. 당황했다.
지금은 월요일 배달이 1시간 30분 정도면 모두 끝날 일이 (심지어 가구수도 늘었다)
그때는 마치고 나니 3시간이 흘러 있었다.
잘 모를 땐 인수인계 해주시던 분에게 전화하고 안 받으면 기다려야 하고
이런 시간들이 합쳐졌으니 그럴 수밖에.
장갑을 쓰지 않은 내 탓이긴 하지만, 이렇게 손을 부르트고 혼자 배달하며 힘들었는데도
왜 나는 첫날에 그만두지 않고 이렇게 6개월이 지나도록 근무를 하고 있을까?
“그래 나 첫날에 이랬지. 힘들었는데.
그런데도 나 이 일이 좋아. 주변에 하라고 권유를 할 만큼. “
그런데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각해 봤다.
한 사람이 있다.
특정하게 기술이 없다 생각을 했고,
잘하는 일이라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하는 것.
그것만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재능이었다.
1. 그런 사람이 건축 전공을 나와 관련된 일을 하러 간다.
전공이었으니 이 길로 가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고,
먹고살기 위해선 돈 벌어야지! 이런 생각뿐이었다.
2. 그러다 이 길 말고도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되고
건축과 상관없는 일들로 뻗어나가게 된다.
그저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이라면 도전을 하였다.
하지만 밝게 인사하는 것만이 장점이라 생각했는데,
그 장점이 단점이 되어 돌아올 때 견딜 수가 없었다.
(가는 곳마다 일은 정말 기똥차게 잘했다)
일과 상관없이 인간관계에서 무너졌다.
이간질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3. 그럼 회사 생활은 안 맞는 거구나, 회사를 벗어던지자
그렇게 벗어던지고 우연히 야쿠르트 프레시매니저의 길을 걷는다.
이 때도 여전히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밝게 인사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거면 되었다.
밝게 인사했더니 눈길을 준다. 정을 준다. 곁을 준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나도 모르게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하게 된다.
울고 있는 아기에게, 힘들어서 땀 흘리고 걷는 임산부에게 야쿠르트를 건네게 되고,
산책하고 있는 강아지가 귀여우면 말도 걸고
고객들에게 더 신선한 제품을 주려고 내가 귀찮음을 감수하게 되고.
나에겐
1. 생업 2. 직업 3. 천직이었던 게 아닐까.
물론 1번과 2번에서도 내가 잘하는 게 이것뿐이다, 내가 지금까지 한 게 이거니까 이걸 해야 한다-라는 시점을 틀어서
다르게 그 직업을 지켜보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 있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은 사회에 던져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잘하는 건 밝게 인사하는 것뿐이야-라고 생각을 했으니 3번에 이르러서야 천직을 만나게 된 거다.
내가 이렇게 주절주절 글을 쓰는 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마침 자기의 직업에 대해 고민을 하는 사람이면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기에 : )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맞지 않은 걸 수도 있지만,
자기의 재능을 한정적으로 정하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내가 1번일 때, 2번일 때
잘하는 게 밝게 인사하는 것 말고 또 다른 재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3번이 오기 전에 천직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