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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언니 Nov 03. 2024

갑자기 저 혼자 하라니요.

첫 출근하는 날

*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마지막에 :)


4월 1일 월요일, 거짓말 같이 근무를 시작했다.



이제 야쿠르트 프레시매니저를 하는 동안엔 지하철 조조할인받는 건 익숙한 삶이겠지.

할인도 받고 자리도 앉아서 가고 너무나 좋은데? 싶었지만…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아침을 깨우는 직업은 많다. 내가 그 시간에 움직이지 않아서 몰랐을 뿐.

(주말에 등산을 간다고 일찍 움직였을 때 지하철 자리가 넉넉해서 착각을 했던 거다)


교대에서 환승을 하고 압구정역에서 내리는 코스인데,

교대에 내리면 모든 사람들이 뛰어간다. 그 풍경 참 낯설다.

우리 나이 또래보다는 윗 세대인 분들이 많은데, 이렇게 열심히 하루를 살아간다고? 싶은 생각들이 스친다.

반성한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불끈)


야쿠르트 배달 일은 월화수목금 중에 월요일이 평균적으로 가장 바쁜 날이다.

나는 나의 첫 근무 요일이 월요일이 되었다.

아, 뭐, 그래, 어차피 해야 하니까! 그래도 초반엔 도와주신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영업점에 도착하니 이게 무슨 소리람…? 네? 저 혼자 해야 한다고요? 왜요오오오오…..


나랑 같이 입점한 여사님이 환갑을 넘기신 분인데 아무래도 같이 동승해서 배달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점장님이 혼자 할 수 있지?라고 묻는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라며 의지를 불태운 지 20분 만에 그 의지가 사라지려고 한다.


요일 중에 가장 바쁜 월요일에

그것도 첫 출근날에

나 혼자 배달을 시작하게 되었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이 날 근무하면서 기록들 남겨야지 했는데 사진들이 하나도 없다. 배달하는 것만으로도…!)



* 이래서 정말로 인수인계받을 때 메모가 중요하다 *

처음부터 고객님이 이사를 가지 않고, 주소를 잘 적어주고, 연락처를 잘 적어주고

지금까지 변동사항이 없는 분이라면 모르겠는데,

처음 작성했을 때와 달리 같은 구역 안에서 이사를 가서 여사님 머릿속에만 그 주소가 있고

(다른 구역으로 이사 가게 되면 주소지 이전을 하니 이런 일이 잘 없지만)

원래는 그냥 윌을 먹는데 저지방윌로 변경을 하시고

연락처가 바뀌었는데 아직 수정이 안되어 있고 등등

이런 경우들이 있어서 인수인계받을 때 허투루 듣지 말고 하나하나 사소한 팁까지 모두 메모를 해 둬야 한다.



그 메모에 의존해서 하나씩 하나씩 배달을 하는데, 왜 식은땀이 나는 거 같지

아직 내 코코는 지붕도 없고 앞 가림막도 없어서 바람이 숭숭 내 안면을 강타해서 더울 일도 없는데

그래도 덥다. 당황했다.


지붕이 없다. 앞가림막도 없다. 휑하다 아주.


지금은 월요일 배달이 1시간 30분 정도면 모두 끝날 일이 (심지어 가구수도 늘었다)

그때는 마치고 나니 3시간이 흘러 있었다.

잘 모를 땐 인수인계 해주시던 분에게 전화하고 안 받으면 기다려야 하고

이런 시간들이 합쳐졌으니 그럴 수밖에.



장갑을 쓰지 않은 내 탓이긴 하지만, 이렇게 손을 부르트고 혼자 배달하며 힘들었는데도

왜 나는 첫날에 그만두지 않고 이렇게 6개월이 지나도록 근무를 하고 있을까?


“그래 나 첫날에 이랬지. 힘들었는데.

그런데도 나 이 일이 좋아. 주변에 하라고 권유를 할 만큼. “

그런데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각해 봤다.




한 사람이 있다.

특정하게 기술이 없다 생각을 했고,

잘하는 일이라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하는 것.

그것만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재능이었다.


1. 그런 사람이 건축 전공을 나와 관련된 일을 하러 간다.

전공이었으니 이 길로 가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고,

먹고살기 위해선 돈 벌어야지! 이런 생각뿐이었다.


2. 그러다 이 길 말고도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되고

건축과 상관없는 일들로 뻗어나가게 된다.

그저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이라면 도전을 하였다.


하지만 밝게 인사하는 것만이 장점이라 생각했는데,

그 장점이 단점이 되어 돌아올 때 견딜 수가 없었다.

(가는 곳마다 일은 정말 기똥차게 잘했다)

일과 상관없이 인간관계에서 무너졌다.

이간질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3. 그럼 회사 생활은 안 맞는 거구나, 회사를 벗어던지자

그렇게 벗어던지고 우연히 야쿠르트 프레시매니저의 길을 걷는다.

이 때도 여전히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밝게 인사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거면 되었다.

밝게 인사했더니 눈길을 준다. 정을 준다. 곁을 준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나도 모르게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하게 된다.

울고 있는 아기에게, 힘들어서 땀 흘리고 걷는 임산부에게 야쿠르트를 건네게 되고,

산책하고 있는 강아지가 귀여우면 말도 걸고

고객들에게 더 신선한 제품을 주려고 내가 귀찮음을 감수하게 되고.


나에겐

1. 생업 2. 직업 3. 천직이었던 게 아닐까.

물론 1번과 2번에서도 내가 잘하는 게 이것뿐이다, 내가 지금까지 한 게 이거니까 이걸 해야 한다-라는 시점을 틀어서

다르게 그 직업을 지켜보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 있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은 사회에 던져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잘하는 건 밝게 인사하는 것뿐이야-라고 생각을 했으니 3번에 이르러서야 천직을 만나게 된 거다.


내가 이렇게 주절주절 글을 쓰는 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마침 자기의 직업에 대해 고민을 하는 사람이면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기에 : )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맞지 않은 걸 수도 있지만,

자기의 재능을 한정적으로 정하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내가 1번일 때, 2번일 때

잘하는 게 밝게 인사하는 것 말고 또 다른 재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3번이 오기 전에 천직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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