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독서를 하다
하지만 자신이 함께 살아가던 다른 부랑자 청년들과는 달리, 히틀러는 젊은이들의 악덕에는 전혀 빠지지 않았다. 히틀러는 담배를 피지도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 히틀러는 여자와 함께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한 문제도 없었다. - 히틀러에 관해 아무리 찾고 조사하더라도 히틀러의 여자 문제는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히틀러가 성적으로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뿌리 깊은 수줍음 탓이었다.
히틀러가 이후에 나의 투쟁에서 언급했는데, 이는 히틀러로서는 매우 드물게 표현하는 인간적인 면모였다.
"당시의 나를 알던 사람들은 나를 별종으로 여겼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앉는 바이다."
히틀러의 학교 선생들이 그러했듯이, 당시 히틀러의 지인들은 이 강하고 빛나는 눈을 가진 별종이자 씻지도 않은 부랑자가 그 인성의 내면에 품고 말로서 표현하는 내용은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비참한 환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또 이 젊은이는 육체 노동에 관해서라면 전혀 하지 않으려 하고 게으름을 피웠는데, 반면에 책에 관해서라면 게걸스럽게 탐하는 열렬한 독서가였다. 당시 히틀러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책을 읽으며 그 지식을 삼키는 데 보내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엄청나게 많이 그리고 깊게 책을 읽었다. 여가 시간이 나는 대로 모두 책을 읽는 데 보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오늘날 내가 추진하는 일의 자양분이 되는 지식의 기초를 당시 몇 년동안 얻고 대장장이가 금속을 단단하게 만들듯이 벼렸던 것이다.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독서의 기술에 관해 길게 말했다.
"읽기"를 통해서 확실히 우리가 부르는 소위 "인텔리겐치야"라는 작자들의 평균적인 수준과는 다른 것을 나는 말하고 의미할 수가 있게 되었다.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었다" 라는 인물들을 알기는 하지만 "잘 읽었다"라고 묘사할 만한 자는 없다. 진실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자들의 뇌는 자신들의 머리 속에 집어 넣은 그 지식을 조직하고 정립할 수가 없다. 반면에 올바른 독서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자는 본능적이고 즉각적으로 자신의 견해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영구적으로 기억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자신의 목적에 맞거나 일반적으로 알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독서의 기술이라는 것은, 즉 배움의 기술이라는 것은 이것이다. 핵심을 파악하는 것, 핵심이 아닌 것을 잊어버리는 것. 이런 종류의 독서 만이 의미와 목적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계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내가 비엔나에서 보냈던 시기는 특히 풍요롭고 가치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대체 무엇에 가치 있었다는 말인가? 히틀러의 대답은 이러했다. 자신이 비엔나에서 기득권자들에 의해 배제된 무산자들과의 생활과 독서를 통해서 자신의 이후 삶에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던 모든 지식을 배웠다는 것이었다.
비엔나는 나에게 가장 혹독했고 또 그러하게 남아 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심오한 학교이기도 했다. 여전히 반쯤은 소년인 상태로 이 도시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그곳에서 나갈 때는 어엿한 남자였고, 과묵하고 심각한 어른으로 자랐다.
이 시기에 내 안에서 세상에 대한 그림과 철학이 형태를 정립했고, 나중에 내 모든 행동의 화강암 같이 단단한 토대가 되었다. 그 때 내가 만든 것에 더해서, 나는 더 배워야만 할 필요가 거의 없었고, 어떤 것도 바꾸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비엔나가 그렇게 관대하게 제공했던 그런 곤란 투성이의 역경의 학교에서 히틀러가 배워야만 했던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이 말했다시피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필연적으로 바꾸지 않고 화강암같이 그대로 쭉 유지해갈 수 있었다는 것은 대체 무엇이며, 그러한 것을 독서와 경험으로부터 배웠다고 하는데, 대체 그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히틀러가 자기 인생의 대들보였던 지식이라고 말한 것들은 대부분 얄팍한 구식의 지식에 지나지 않았고 자주 그로테스크하고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이었다. 또한 이상한 편견들에 물들었고, 피상적인 고찰에 지나지 않음이 명백했다. 이런 역사의 진행에 그것들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것은 세계 역사에서도 또한 마찬가지였고, 동등하게 명백했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에만 파묻혀 살던 부랑자가 곡 건설하려고 했던 제 3 제국의 토대를 이루는 사상이 될 것이기에 더욱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