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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조띠끄 김서윤 Oct 07. 2023

지중해를 품은 푸른빛 타일이 나의집 거실에 넘실거린다.

내게 타일은 지중해를 향한 찬가(讚歌) 같은 것



"미안해요. 

제게 타일은 단순한 건축 마감재가 아닌 

이국적인 미학이 담긴 예술적인 오브제에요."



각기 다른 디자인의 14종 빈티지 타일

타일을 시공하기에 무척이나 적절치 못한 울퉁불퉁한 벽면과 바닥

.... 미안해요. 다시 한번.










북아프리카 무어인들이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기 시작했던 711년, 이슬람의 눈부신 타일 문화가 이 지중해 서쪽 끝 땅에 매혹적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이질적인 아름다움이 이식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여러 도시에서는 세비야 알카사르 궁전,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 같은 거대한 건축물뿐 아니라 미로 같은 골목에 즐비한 아기자기한 상점과 일반 가정집까지 화려한 색채와 정교한 문양의 타일로 건물을 장식한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신을 향한 맹목적인 신념은 타인의 신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예술적인 미감뿐 아니라 유럽인과 아랍인 그리고 유대인들이 편견 없이 어우러져 고도의 지적인 학문까지 절정으로 꽃 피웠던 열정의 땅에서 1492년 마지막 이슬람 타이파 국가였던 그라나다 왕국마저 가톨릭의 길고 집요했던 레콩키스타 끝에 함락되고 만다. 그렇게 불온한 이교도들은 시에라네바다 산맥 그 순결한 눈이 녹아 생명을 적시던 천상의 궁전을 뒤로하고 마지막 언덕길(El Suspiri del Moro : '무어인의 탄식'이라는 뜻)을 넘었다. 



그 환청을 뒤로하고 알바이신 지구의 수많은 골목과 눈부신 하얀 집들을 걸었다.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한 여름 시에스타의 시간을 혼자만 점유하며 나른한 몽상에 파묻힐 즈음, 반쯤 열린 나무문이 보였다. 고요한 적막 속에 오렌지 향기만, 또 졸졸 간지럽게 떨어지는 분수 소리만이 간간히 감각을 자극하던 좁은 골목길에서 언뜻 들여 다 본 주택의 비밀스러운 중정은 정말 질투가 날만큼 신비롭고 아늑해 보였다. 분명히 그날부터였을 거다. 햇살이 쏟아지는 중정이 있는 집에 독특한 스페인풍 타일로 인테리어를 하고 살겠다는 로망을 품게 된 시작이.

...... 막연한 바램이었다.




몇 달 동안 시간이 날 때면 논현동과 을지로로 타일을 보러 다녔다. 이 집을 계약한 시점부터 디자인 시안을 잡는 동안, 잠시 공사가 멈췄던 기간에도 강박처럼 원하는 그림의 타일을 찾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서 샘플을 수급했다. 이 집의 이국적인 뉘앙스를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타일이기 때문에 타일만 잘 깔아놓아도 반은 성공했다고 확신하는 바였다. 


각기 다른 디자인의 스페인과 이태리산 빈티지 타일 16종류. 모조리 비싼 것들. 돈 없다 소리를 입에 달고 공사를 하고 있으면서 뭐야, 그동안 엄살을 부렸던 거야? 알고 보니 사치도 심하고 허세는 더 심한 걸? 이렇게 비난할 것 같아 자기 방어차 변론 먼저 하고 싶다.


 "타일은 어쩔 수 없어요. 타일이잖아요." 

그게 다야? "네! 이게 다예요."


 



"타일 작업 비용이 많이 올랐어요. 다른 공정에서 상쇄를 해보겠지만 그 금액이 너무 커지면 저희도 추후 정산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 (시무룩)........"



리모델링 공사 기간 동안 가장 무서웠던 단어. 추후 정산.


"대표님 입장 충분히 이해해요. 그럼 지하 내려가는 계단과 내부 몇 군데는 타일 부착을 안 할게요. 그리고 혹시 예산이 초과되지 않을 방법이 있으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주저리주저리 (이하 생략)"



서울의 시대 유물 같은 이 50년이나 된 불란서 주택이 시공사 입장에서는 손 많이 가고 공사 기간도 길지만 돈은 딱히 안 되는 그런 현장이라는 것을 알기에 내 욕심을 한껏 부리면서도 눈치를 살피며 혹여나 오해를 살까, 마음을 상하게 할까, 개념 없는 건축주로 비쳐지지나 않을까 단어 하나하나 정교하게 골라내어 우회적으로 견적 상승은 결단코 막고 싶다는 간절함을 전했다. 종종 이렇게 시공사와 불편한 상황이 연출될 때면 한껏 주눅이 들어 그냥 대충 해버릴까 하는 반발심이 꽁꽁 비좁은 내 속에 가득 들어차 앉았다. 



하지만 내가 고른 그 타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텅 빈 회색의 공간을 채색해 갈 때면,



지중해를 품은 푸른빛 타일이 우리 집 거실에 넘실거린다. 푸른색으로 일렁이던 지중해의 저 아득히 먼 파도가 나의 집으로 밀려와 하얀 포말을 고르고 그 푸른 물결로 거실을 물들이고 있다. 복층 바닥을 세심히 메운 이슬람 아라베스크 문양은 또 얼마나 섹시한지. 계단 위 세상도, 계단 아래 펼쳐진 세상도 해가 흩고 지나간 듯 빛바랜 블루로 도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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