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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조띠끄 김서윤 Oct 09. 2023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라고 말하는 수많은 업체들

저희 집 리모델링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줄 알았나요?



'내가 아는 상식이 뒤집힌다.

업체들이 아는 상식이 나로 인해 뒤집힌다.'



그렇게 예측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를 오가며

집은 서서히 완성되어 갔다.









아침과 낮 그리고 하루의 공사가 끝난 이른 저녁 매일같이 현장을 찾았다. 여전한 태양빛이 넘쳐나는 여름 저녁 하늘에 맞닿은 뾰족한 삼각 기와지붕이 시야에 보이기 시작하면 발걸음도 마음도 빨라진다. 오늘 공사도 별문제 없이 잘 마무리가 되었겠지? 집 내부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것들이 덧입혀지는 그 매일의 과정이 만들어낸 흔적을 살피고 또 차곡차곡 기록하며 꿈을 꾸었다. 



집도, 삶도, 한 번쯤 리모델링해보고 싶어 간절히 저질러버린 그 공사현장, 그 한가운데 서서 종종 자문한다.


"오랫동안 욕망한 그 공간에 지금 내가 서있는가?"

"그토록 원하던 동서양의 혼재된 모습, 그 이질적인 것들이 자아내는 극적인 충돌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있긴 한 거야?" 


라고.




그래도 금속계단은 무척 마음에 든다. 기능적이고 심지어 예쁘기까지 한 금속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곳에 만연한 선들이 이끄는 대로 눈길을 따라가 본다. 인공의 직선들이 방향성과 각도를 달리하며 무수히 교차하고 겹쳐지고 또 어느 순간 반목하고 있다. 곡선보다는 직선을 더 좋아한다. 


곡선은 직선보다 더 큰 공간의 넓이와 높이를 요구한다. 그래야 곡선은 자연 속 넝쿨처럼 이리저리 자유롭게 장식적인 선으로써 유희할 수 있다. 그리고 곡선은 직선보다 월등히 비싸다. 주방입구를 아치형으로 하려 했다가 가격을 듣자마자 포기했다. 이 집의 작은 물리적인 면적과 결코 호방할 수 없는 예산 때문만은 아니다. 정말로 나는 직선이 더 좋다. 물론 대부분 그렇다는 거지 언제나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예정된 공정은 도통 그치질 않는 여름비와 이 집을 이렇게나 노쇄하게 만든 긴 세월이라는 자연 앞에 맥없이 변경되곤 했다. 때로는 시공이 잘못되어 뜯어내고 업체를 바꿔 재시공을 했다. 페인팅 업체는 천장 오일스테인에 이어 다른 곳도 잘못 칠하기를 여러 번, 노오란 은모래색을 아이보리라고 연두색을 청동색이라고 주장했다. 미장업체는 살려야 할 기존 벽돌면까지 매끈하게 시멘트를 발라놓아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간단할 리가 없잖아?! CCTV를 설치하는 것 마저도 험하고 난잡했다. 벌써부터 매립해 놓았던 배선 두 개가 망가져 4개를 계획했던 카메라를 겨우 어찌어찌해 3대만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전기업체 잘못인지, 징크작업을 하며 선을 건드렸는지 아니면 애초 CCTV 배선을 잘못 깔았던 건지 끝내 규명해 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 몫은 고스란히 언제나처럼 내 것일 뿐, 이 집 공사 과정은 무엇하나 쉽고 간단한 게 없었다.  




"수십 년 동안 부동산 일을 했지만 이런 일은 또 처음이네요."


아차산 자락으로 이사 온 바로 다음날 부동산 사장님께 이 집을 다시 팔고 싶다고 울먹였을 때 처음 들었던 말.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그 말이 공사 현장에 숱하게 부유하기 시작했다. 싱크대 업체도, 도어 제작 업체도, 욕실 설비 업체도, 금속 업체도... 모두 다 말했다. 수십 년 동안 이런 일은 없었다고. 이런 일은 또 처음이라고.



'난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나는 이 집 리모델링에 연관된 모든 업체들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이번 작업을 하면서 비록 다른 곳보다 품이 더 들어갔더라도 그에 비해 만족스러운 금액을 받지 못했더라도 나는 언제나 그게 가능하냐고 물었고 그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구현하려고 애썼어. 외부 클라이언트 작업을 할 때보다 많고 세세한 지침이 담긴 문서를 업체들에게 매번 성실히 건네주었어. 게다가 나는 정직했고 또 언제나 진심이었어. 믈론 그렇다고 해서 내 까다로운 성향과 실수 또 내 변덕까지 정당화하고 싶지는 않아. 심지어 나는 합리적이기까지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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