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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조띠끄 김서윤 Oct 10. 2023

8월 중순, 방충망도 에어컨도 없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모든 것이 여전히 혼자인 외로운 과정들



"비, 장마, 폭우, 우기, 습기, 소나기, 스콜..."



내 가장 애정하는 계절 여름,


햇볕에 흠뻑 젖고 싶었지만 

현실은 눈물과 장맛비에 질척하게 젖어들고 말았다.










임시거주처일 뿐인 원룸에 이렇게 많은 짐을 부려놓는 것이 아니었어. 뭐 하자고 사계절 옷은 모조리 풀고 가지고 있는 온갖 책은 다 늘어놓았을까. 물론 컨테이너보다 이 지하 원룸이 더 안전하다고 느꼈던 거겠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밤새 더 치밀해진 굽굽한 습기가 내 온몸을 휘감고 있다. 한기가 완벽히 사라진 지난 5월부터는 창문 너머 정화조 냄새가 솔솔 들어오기 시작했고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7월 에어컨에서는 물방울이 사정없이 튀어 내 얼굴을 습격했다. 곰팡이의 번식력은 내 하찮은 상상력을 비웃으며 욕실과 주방을 넘어 벽이며 소파며 목재 가구며 심지어 옷까지 거기가 어디든 개의치 않고 북실한 솜털처럼 자라났다. 조금만 더 자라면 이 방 자체가 이끼로 뒤덮인 원시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액자도 예외는 아니다. 뭐 하자고 아끼는 포스터까지 바리바리 죄다 이 방에 부려놓은 거야, 도대체? 물론 잠시 지내는 곳일지언정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곁에 두고 살고 싶었던 거였겠지. 



저렇게 박공 천장 아래 매달아 놓으려 거금 들여 제작했던 행잉 오브제는 공사장 지하에서 습기와 곰팡이로 쓰레기가 되어갔다. 내 집에 구현할 수 있는 핀터레스트 한 컷이 사라진다.




"지하의 습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비싸디 비싼 프리저브드 플라워 소재를 아낌없이 넣어 만든 커다란 구름형상의 오브제를 공사장 지하층에 고이 모셔두었었다. 은은한 뉴트럴 컬러의 이 우아한 오브제를 거실 박공천장에 매달아 두면 이 집이 얼마나 특별해 보일까... 컨테이너에 넣는 것보다 여기 이렇게 내 가까이 두고 항상 문제없나 관찰하는 거야. 공사장의 먼지도 장마철의 습기도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내 시야에 보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다. 거 참, 이 멍청함은 무지에서 온 것이다. 아무리 경험해 본 적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어느 날 들여다본 그 커다란 오브제에는 곰팡이가 아주 잔뜩 피어있었다. 순간 몇 백만 원뿐만 아니라 내가 그리던 하나의 집 풍경이 간교한 마법처럼 사라진다. 이곳저곳의 지하에서 가치를 완전히 상실해 버린 내 소중한 사물들. 우매하고 안일했다. 



지금 물청소 중? 노노! 평상시 지층 원룸의 현관 모습이다.



내 얼굴도 삭아지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요즈음의 내 얼굴을 보면 내 몸에 기생하는 어떤 독립된 생명체 같다. 매일매일 심지어 아침 점심 저녁으로 얼굴이 달라진다. 내 세포는 어느 정도 고정값일 텐데 24시간이 채 가기도 전에 어떤 뚜렷한 변화를 겪는다는 게 이상하다. 




이사를 하기로 했다. 


물론 여전히 공사가 한창이지만 변기도 세면대도 싱크대도 설치됐고 기본조명도 달았다. 물론 복층 샷시와 중문 그리고 현관문 제작이 자꾸 늦어지고 있지만 이삿날까지는 해결될 것이다. 집 한켠에 필요한 짐만 풀어놓고 살살 나머지 내부 공사를 하면 된다. 처음 3개월 계약이 무색하게 매달 연장을 하는 통에 아예 눌러 살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셨는지 원룸 어르신도 하루빨리 나가주길 바라셨다. 하긴 내가 몇 년이라도 살 것처럼 짐을 빼곡하게 들여놓았으니 더 불안해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점점 더 나를 대하는 태도가 냉랭해져만 간다. 하... 사람 섭섭하게 시리... 애초 3개월이라 가능했던 계약이었기에 할 말은 없지만, 단기렌탈이란 명목으로 기존 책정된 월세보다 50퍼센트나 더 내는 조건이었단 말이지. 생각해 보니 할 말이 없진 않잖아.




"어? 방충망 어디에 있어요?"



8월 중순 새벽까지도 세차던 비가 그치고 햇살 냄새가 진동하던 날, 에어컨도 방충망도 설치되지 못한 집에 입주를 했다. 그리고 투명 창문 위로 덕지덕지 비닐부터 붙였다. (내 변덕에 대한 고마웠던 마음도 잠시...) 샷시를 단지가 언제인데 그 오랜 시간 방충망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업체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심지어 거금의 준공 청소가 무색하게 구석구석 콘크리트 알갱이와 먼지가 내 건강마저 위협하고 있었다. 마치 비자발적 고행자처럼, 낮동안 침입한 산모기와 사투를 벌이고 더위에 무딘 내가 하루에도 서너 차례 찬물 샤워를 해대며 그 남은 여름의 밤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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