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그조띠끄 김서윤 Oct 12. 2023

먼지구덩이 속, 유미주의자의 빈티지 인테리어 예찬론

거추장스러운 것을 다 없애버리려는 미니멀리즘은 재미가 없어!



'오래된 동네, 오래된 집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담긴 오래된 물건들"



빈티지 가구와 지난 여행지에서 모아 온 추억의 산물들로 공간을 채운다. 










이사하는 날 극적으로 겨우 달린 저 문, 저 청록색 나무 문을 양쪽으로 활짝 열어젖히고 새로운 나의 세상으로 들어왔다. 


고대 로마에는 "야누스의 얼굴을 지녔다"라는 표현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야누스(Janus)'라는 신이 있는데 원래는 문(門)의 신이었다. 문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종착점인 동시에 시작점이기도 하기에 그 상징적 의미가 서로 반대쪽을 보고 있는 두 개의 얼굴로 형상화된 것이다. 한 해가 끝나고 새해가 시작되는 1월을 라틴어로 야누아리우스(Januarious), 영어로는 재뉴어리(January)라고 부르는데 바로 '야누스의 달'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시작과 끝을 동시에 품은 채 안과 밖을 엮어 주는 야누스의 문을 열고 드디어 나의 집에 입성을 한다. 몇 달 동안 내가 가장 즐겨한 상상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이 집으로 하루빨리 이사하는 것. 

기존 세상을 떠나 새로운 내 삶의 시즌 2로 들어서는 것.  




이 동네에는 볼 수 없던 낯선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 외부의 골목과 그 길에 바싹 붙어있는 나의 집의 경계를 분명하게 나누기 위해, 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을 위해 고풍스러우면서도 임팩트 있는 이 문을 정성 들여 디자인했다. 동쪽 아차산 자락을 향해 길고 좁다랗게 흐르는 퇴색한 골목길과 마주한 나의 집이 이질감 없이 그렇지만 색다르게 녹아들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메인 도어를 단다. 

수공의 터치에 오랜 세월감이 더해진 듯 깊고 차분하며 심해처럼 신비로운 터쿠와즈에 흠뻑 젖어든 메인 도어를 단다. 이 집 외관의 아이덴티티와도 같은 이 문 또한 쉽게 만들어진 건 결코 아니다. (비용은 비용대로 들였건만) 역시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다. 도어 업체의 여름휴가, 작업장의 수해피해 게다가 업체 측의 어이없는 잦은 실수까지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제작이 차일피일 지연된 문은 수정에 수정에 수정을, 또 수정에 수정에 수정을 거쳤다. 심지어 양쪽 문을 반대로 부착하는 통에 이사하는 날에야 극적으로 문짝만 대롱대롱 달릴 수 있었다. 가운데 바람막이는 끝내 보름 뒤에나 완성되었기에 한동안은 문틈으로 아휴, 빼꼼히 집 내부가 다 보였다니까. "이러면서 자주 보고 친해지는 거죠."라는 도어 대표님의 멋쩍거나 혹은 얄미운 농담에도 어느덧 체념하며 함께 웃는다. 



"그래요 대표님. 우리 이제 많이 친해졌으니 제발 지금부터는 디자인대로 작업해 주세요. 플리즈랍니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이삿짐을 푼다.


온갖 이국적인 것들에 매료된 19세기 예술가가 아뜰리에 안에 자신의 작품과 생경한 타국의 정취를 낭만적으로 녹여냈듯이 나도 지난 여행지에서 모아 온 추억의 산물들로 무질서한 공간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이삿짐 박스를 열고 옷가지와 살림살이, 데코 소품과 책을 꺼내어 손상된 곳은 없는지, 지난 장마에 곰팡이는 피지 않았는지 세심히 확인을 한다. 포스터와 액자들도 제각각 어울리는 장소를 찾아준다.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무엇 하나 허투루 놓이는 것이 없도록 정확하게! 물건들이 대충 막 무작위로 놓여지는 듯 보이겠지만 나만의 디자인 법칙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배열되어 가고 있었다. 









이전 17화 8월 중순, 방충망도 에어컨도 없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