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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조띠끄 김서윤 Oct 13. 2023

방수, 방수, 방수, 방수에 대한 짙은 악몽을 꾸곤했다

이건 꿈이야! 꿈이야!... 꿈 아니야???



'그래, 일단 여기까지 여기까지만 하자'



드디어 완성이 되어 가는 이 집에 대한 기대감과 

나는 예전보다 행복해지긴 한 걸까 싶은 권태로움을 느끼며 

과거와 중첩된 혼미한 현재를 사는 사이, 


가을은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찰나였다. 










쿵쾅쿵쾅. 쓰으윽쓰으윽.

비닐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커튼 없는 투명창밖으로 페인트 롤러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 잠을 깬다. 애써 붙여놓은 비닐이 밤새 또 반쯤은 떨어져 있다. '마스킹테이프도 스카치테이프도 안되면 도대체 뭐로 붙여야 하는 거야.'라며 볼멘소리로 서둘러 비닐을 다시 붙인다. 그러고 보니 지난밤에는 끈적이는 더위 때문에 깨지도 않았다. 콧속으로 느껴지는 집 안 공기도 한결 느슨해진걸 보니 이제 자다 깨어 찬물 샤워를 할 일도 더 이상은 없을 것 같다. 비에 눈물에 질척이던 지난여름이여 안녕!


  


제작이 늦어진 중문과 복층 철제 프레임을 설치하고 여기저기 펜던트 조명들을 달았다. 아직 풀지 못한 짐들을 이리저리로 옮겨가며 미진한 페인트도 손보고 입주 청소 때 손상된 타일을 교체하며 부지런히 내부 공사를 마무리하는 동안 바깥에서는 외벽 페인트가 한창이다. 계절이 몇 번을 바뀌어 이 집을 처음 만났던 가을이 되돌아왔어도 공사는 언제나처럼 진행 중이었다. 일상이 되어버린 공사, 풀풀 공기 중 유영하는 먼지입자는 마치 산소인양 나의 폐를 교란시켰고 공사 소음은 나즈막히 틀어놓은 카페 BGM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백색소음으로 익숙해진 지 오래다. 




방수 방수 방수, 또 방수 방수 방수.


"아무래도 방수는 공정에서 빼야 할 것 같아요. 타일도 페인트도 애초 견적보다 너무 많이 초과하는 바람에 그렇다고 대표님께 비용을 더 청구할 수도 없고, 애초 방수는 미장할 때 같이 작업하려고 아시다시피 예산도 조금밖에 넣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수만 따로 하게 된 상황이라 비용이 너무 많이 들게 되었어요. 그렇게 하기에는 저희가 손실이 너무 커서 부득이 공정에서 빼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이 순간의 결정을 두고두고 아쉬워하며 되돌아가고 싶어 했다. 



멈추지 않는 비 때문에 결국은 9월 하순까지도 지붕 방수를 하지 못하고 매일 방수 방수 방수, 방수 언제 하냐는 질문만 해댈 때였다. 다락방 모서리로 지난 장마 때 발견된 누수가 여전했다. 혹시 설마 다른 곳도 새는 것은 아닐까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불안의 눈초리로 구석구석 샅샅이 째려보는 또 하나의 강박을 가지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다행히 아무런 흔적도 발견해내지 못하면 그제서야 안도를 하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러다 불현듯 이번에 안 샜다는 것이 다음번에도 새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라는 걸 깨닫고 다시 불안함에 안절부절못해지는 과정까지 뫼비우스의 띠는 반복되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이렇게 더는 못살겠다 싶어 어마무시하게 몇 배로 증가한 견적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알겠어요. 어쩔 수 없죠. 대표님 입장 이해합니다." 이렇게 나이스한척까지했건만 일정마저 잡기가 쉽지 않았다. 여름장마로 한껏 미뤄진 방수가 이젠 눈 내리기 전에는 해야 한다며 재촉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뭔가 우습다.





내가 클라이언트를 모시는 건지 당최, 무성의한 작업에 뚱한 태도까지 제대로 풀장착한 방수 업체에게 나는 줄 돈 다 주면서 비굴하게 비위까지 맞춰주어야 했다. 도장재를 개발새발 발라놓고 기왓장마저 깨뜨리며 끝까지 속 썩이던 끔찍한 방수업체, 이 리모델링 공사의 최악의 파트너로 등극하더니 급기야 내 꿈마저 지배하기 시작한다. 



'뚝! 뚝! 물방울이다. 천장에서 물이 몇 방울 뚝뚝 떨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 집 안 모든 것이 얼룩지고 잠겨가고 있다. 통제할 수 없는 바람이 불듯 홍수가 난다. 태풍이 불듯 물폭풍이 휘몰아친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 방수포로 지붕을 씌우고 양동이를 받치며 민첩하게 대응하지만 역부족이다. 물이 할퀴고 간 자리에는 쓸모없는 쓰레기로 변해버린 물건들만이 나뒹군다. 안돼!! 이건 꿈이야. 꿈이라고! 꿈이.... 아니야???



그렇게 간절히 꿈이길 바란 후엔 정말 꿈에서 깨어나고는 여전한 잠결에서 꿈이라서 감사하단 말을 내내 읊조리다 다시 잠들곤 했다. 종종 반만 기억되는 짙은 악몽을 꾸며 철저하게 누수와 방수라는 틀에 갇히는 형벌을 받는 사이 가을은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여전한 긴장감이 걸려있던 계절 가을도 영원 같던 나쁜 꿈도 결국은 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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