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그조띠끄 김서윤 Mar 03. 2024

네오고딕 건축안에 펼쳐지는 화려한 네덜란드 미술사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Rijks museum



"페르메이르의 정지된 고요,

반고흐의 고뇌에 찬 표현,

렘브란트 특유의 암울한 드라마."



우아한 네오고딕 건축 안에 펼쳐지는 

화려한 네덜란드 미술사를 걷는다. 








새벽 일찍 일어났다. 보아야 할 작품은 방대했고, 암스테르담에서의 일정은 한계가 있었다. 고작 3시간 남짓 기절한 듯 눈을 붙이고 5시부터 부산을 떨지만, 도미토리 2층 침대를 오르내리며 다닥다닥 비좁은 호스텔방에서 외출준비를 한다는 게 영 몸에 착 붙지 않고 서투르기만 하다. 하긴 그 와중에 머리에 고데기까지 말았으니, 새벽부터 서두른 게 무색하게 숙소 문을 나설 때는 이미 9시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봐, 미술관 오픈했다고!!


그 와중에 평상시 습관에도 없던 호스텔에서 무료 제공하는 아침도 야무지게 챙겼다. 크고 두꺼우며 심지어 3장이나 건네주던 넘치던 양의 팬케이크와 커피, 아마도 동남아를 여행하며 먹던 여유로운 리조트 조식을 상상한 거지. 맛없어.... 이내 포크를 내려놓는다. 하지만 이 몰개성의 칼로리만 잔뜩 채운 무식한 팬케이크를 며칠이 지나면 깨끗하게 Eat UP! 해 버린다. 거의 종일 미술관에만 머무르는 내게 배고프면서 추운 미술관 내부는 정말이지 영혼까지 빈곤하게 만들기에. 작품을 위한 온도라지만 내겐 너무 차가운 곳, 그리고 비싼 곳, 비싸기에 더 더 추운 곳. 그러니 배고픔이라도 저렴하게 해결해야 했다.  






= 호스텔 앞을 흐르는 운하에서 =



미술관 가는 길의 암스테르담 운하의 풍경. 

운하에 걸친 집에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아침에 일어나 집 앞 운하를 바라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숙소를 예약할 때 무엇보다 미술관과의 거리를 우선순위로 고려했었다. 무조건 도보로 암스테르담의 낭만적인 운하를 따라 이동 가능할 것! 네덜란드 국립미술관(레이크스 뮤지엄), 반 고흐 뮤지엄,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스테델릭 뮤지엄) 이 세 곳은 '뮤지엄 플레인'(뮤지엄 광장)이라는 구역으로 서로서로 붙어있기 때문에 매우 편한 동선으로 관람할 수 있다. 유동성 있는 경제적인 관람을 위해 뮤지엄 카드도 든든하게 구입했다.


호스텔 골목을 막 빠져나오니 어젯밤에 보았던 암스테르담 운하의 검은빛이 거치며 축축이 젖은 <진주 귀걸이 소녀> 속 네덜란드 운하가 펼쳐진다. (물론 베르메르의 작품도, 영화 속 배경 도시도 암스테르담이 아닌 델프트이다) 조금 머뭇거려 본다. 마치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듯 주춤거리다 이내 힘껏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나아간다. 아직은 모든 게 서거 서걱 낯선 티를 새벽부터 분주히 흘리는 시작이다. 


걷는다. 암스테르담을 걷는다. 일상의 소리로 깨어나는 암스테르담의 운하를 걷는다. 이내 운하는 이국적인 파란 터번을 바로크의 하녀 대신 모노크롬의 색채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시크한 더치피플들의 풍경으로 감각을 옮겨놓는다.      



ⓒ 암스테르담의 상징인 "운하와 자전거"가 있는 아침 풍경 굿모닝! 


네덜란드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Gedogen (헤도헌)"이란 단어가 있다. "네덜란드식 관용"이란 뜻이다. 연성 마약을 판매하는 커피숍(coffee shop)이 즐비하고, 매춘의 합법화로 모든 매춘부가 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나라, 1811년 세계 최초로 동성애를 공인하고 2002년 동성혼을 합법화한 나라, 적극적 안락사를 공인 인정함으로써 국민의 약 4%가 안락사로 사망하는 나라, 네덜란드. 네덜란드식 관용은 불법을 공인하는 것이다. 즉 어차피 벌어질 거라면 수면 위로 올려서 통제하겠다는 의미를 지닌다.



*'적극적 안락사'는 의사가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불치병 환자에게 적극적 의료 행위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이며, '소극적 안락사'는 환자에게 필요한 생명 조치를 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1998년 맨부커상을 받은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소설 <암스테르담>은 이런 적극적 안락사의 오남용을 다루고 있다.   




주위를 둘러본다. 걷는다.

그리고 이내 또 주위를 둘러본다.

모든 것이 다르다.



색감이 다르고 빛이 다르고 온도가 다르고 소리가 다르고 내음이 다르다. 그렇게 나는 북유럽 암스테르담 늦은 아침의 운하를 걷고 있나 보다. 시선이 고정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눈길을 빼앗기고 마음을 주며 한참 만에야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도착했다.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한 사람은 경험상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표현을 어딘가에서 보았는데, 나는 이미 여행 첫날부터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봐... 미술관 벌써부터 문 열었다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방문 첫날, 날씨는 대체로 흐렸고 쌀쌀했으며 가끔 쨍하기도 했고, 그리고 나중에는 비가 내렸다. 한 여름 8월 대낮 기온이 20도가 안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실내에도 실외에도 한여름 추위가 뼛속을 관통하며 마음까지 파고들었다. 사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울한 첫날이었다.


ⓒ 혼자이기에 습관처럼, 내가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거울 속 나'로 기록한다.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내 이번 나름의 아트 저니(Art Journey)의 첫 번째 미술관이다.


"문화미와 예술미는 훈련을 통해서 커져가고 훈련을 많이 받은 사람이 훨씬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라는 유홍준 선생의 글귀처럼, 나는 이제껏 글로 읽은 미술 작품을 예민하게 훈련된 오감으로 체득하여 작품의 색감과 질감, 형태, 예술가의 철학에 공감하며 나의 미감을 더욱 극대화시키려 한다.


단, 경계할 것 한 가지!

그 예술 이론에 너무 함몰되지 말고, 내 감각대로 내 느낌대로 솔직히 감상할 것. 허위, 허상 따위 버릴 것.


 


암스테르담에서 나에게 달콤한 휴식과 햇살을 주었던 보물 같은 공간. 잠깐잠깐씩 짬을 내어 책을 읽고, 샌드위치와 와인을 마시고, 가끔씩 긴 상념에 빠졌다.



바깥의 권위만큼 나의 권위(그게 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 또한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잊지 말고 미술계의 권위, 돈, 학벌 등에 주눅 들어 무조건적인 수용을 하지 않기로 경계한다. 그래서 이 언젠가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파란 하늘을 보며 "날씨 너무 좋아. 하늘이 너무 예쁘다."라는 말, 무겁고 둔탁한 회색의 구름 낀 하늘을 보며 "날씨가 흐리다. 구름이 잔뜩 끼었어."라는 말 대신


"오늘 하늘은 청금석을 갈아 만든 페르메이르의 울트라 마린 푸른색을 지녔네.", "구름이 마치 페르메이르의 <델프트 풍경>을 보는 것처럼 서정적이야. 서울이 마치 물기를 잔뜩 머금은 운하 도시 같아."라고 표현하고 싶다.


단지 '좋다'라는 일차원적인 묘사에 머무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내겐 이미 문화와 예술을 심도 있게 공부하고 내 오감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어 온몸이 촉수였던 카잔차키스처럼 순간순간을 온전하게 사는 것이 삶에서 무척이나 중요해져 버렸다. (내 결연한 다짐이 불편한 허세처럼 느껴지겠지만, 이 당시 나는 모든 감정에 진심이었다. 삶을 리셋하고 싶던, 리셋해야 했던 발악을 위한 허세. 그런데 내가 남용하는 '허세'라는 단어, 혹시 찔려서 반복하는 자기 검열일까?)




소리는 흐르는데, 시간은 멈춰버린 듯한 암스테르담의 오후.


이곳에서 나는 분명 축복받은 순간을 즐겼다. 관광객의 그리고 더치피플들의 일상적 떠들썩함 속, 내 삶의 시간만이 정지된 느낌과 동시에 이방인의 소외된 인상을 받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나는 이렇게 한참을 떠나와서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서울에서 보다는 한결 편안하게 그 소외를 당연시할 수 있었다.


사진 속 이 날을 기억한다. 사진보다는 훨씬 화창한 날이었다. 파란 하늘이 대기의 색채를 한 층 더 빛나고 강렬하게 만들던 내 설레던 8월, 이국에서의 어느 날. 골목골목, 오래된 시간을 품은 커넬하우스 사이를 흐르는 운하와 시크하게 온통 블랙으로 쓸데없이 잘생김 흩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홀연히 사라지는 더치피플들, 그리고 저 공원 너머 미술관에서 불어오는 고풍스러운 예술의 향취. 이 암스테르담의 모든 매력적인 것들 속에 예술가가 되지 못한 내가 있었다.    

   



작품을 감상하다 허기가 지거나 창밖 따뜻한 햇살이 절실할 땐, 온통 예술적인 풍경과 잔디밭으로 둘러싸인 뮤지엄 광장에 나와 빵과 와인을 마셨다. 이런 250ml 미니 와인 너무 좋아, 너무 유용해! 여행을 할 때면 특히 와인에 더 심하게 관대한 편인데 여행지의 구석구석을 걸으며 로컬 슈퍼마켓에 들어가 꼭 이런 미니 와인 한 병을 고르곤 한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생경한 와이너리의 다채로운 데일리 와인을 구경하는 재미도 맛보는 재미도 내겐 풍요로운 여행의 단상이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이 공원 왼쪽에 있는 알버르트 헤인 슈퍼마켓(Albert Heijn supermarket)을 닳도록, 내 집 앞 편의점처럼 드나들었다. 




'레이크스 Rijks'는 영어 'Royal'에 해당하는 단어로 '왕립'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당할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미술관을 국립 미술관이라고 부른다. 카위퍼르스가 설계했으며 1885년 개관한 오직 미술품만을 위한 미술관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17세기 네덜란드의 미술을 집중적으로 소장하고 있어, 우리에게 조금 덜 알려진 알프스 이북 지역 미술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감각의 기록처이다. 


네덜란드 황금시대(Dutch Golden Age)의 풍부한 회화 컬렉션으로 특히 유명하며 내부 전시실에는 회화, 조각, 장식예술, 역사 자료, 아시아 미술품, 도예, 유리 제품,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또한 고풍스러운 네오고딕 양식의 미술관 건물 외부에는 레이덴, 렘브란트, 스텐 네덜란드 미술사를 상징하는 화가들의 부조와 조각을 수 있다.




페르메이르의 정지된 고요

반고흐의 고뇌에 찬 표현

렘브란트 특유의 암울한 드라마



이 신성한 예술가들로 신화가 되어 버린 네덜란드 미술의 황홀한 세상으로 들어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평생 그리울 순간들은 여행지에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