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의 가족들이 이집트로 이주한 이래로 오랜 세월이 흐르며 히브리 사람들은 이집트에 뿌리를 내리며 이민자의 후손으로 살게 되었다. 그러다 그들의 수가 많아지는 것에 우려했던 이집트 왕은 그들을 괴롭히기 시작하고 마침내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신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통해 출애굽 시키신다.
홍해를 가르시는 놀라운 기적을 통해 그 백성으로 하여금 바다를 건너게 하셨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광야에서 율법을 내리시게 되는데 그때부터 이스라엘은 율법을 소유한 백성이 되고 그 율법은 그들의 절대적인 삶이 되었다.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내려 온 그 율법은 모세오경에 다 기록되어졌는데 수 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것은 정통파 유대인에게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법이다.
율법 교사
바리새인이었던 가말리엘은 1세기 초반을 살아가는 율법 교사였다. 그는 당대의 지성이며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받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또한 바울의 젊은 날의 스승이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축복받은 시기에 그리고 가장 축복 받은 땅에서 살아가는 유명인이었다.
1세기의 초대교회
120명이 모여서 기도하던 한 다락방에서 내리신 성령으로 인해 생겨 난 초대교회는 거센 불길처럼 타올라 온 예루살렘을 흔들고 있었다. 그들의 설교를 듣고 하루아침에 삼천 명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교회로 들어와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나누어주고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회의 지도자였던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다가 길가에서 평생을 걷지 못했던 한 지체 장애자를 만나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번에 일으켜 세웠다. 그 소문을 듣고 달려 나온 사람들은 그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초대교회로 들어오게 되었다.
공회 앞에 선 사도들
그 놀라웠던 날 저녁 베드로와 요한은 감옥에 갇힌다. 초대교회의 놀랍고도 세찬 부흥의 불길을 시기했던 예루살렘 성전의 관계자들은 그들의 불길을 잡으려 교회를 핍박한다.
하지만 그들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놓임을 받았던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 있게 전파한다.
그러던 사도들을 통해 더욱 놀라운 기적과 표적들이 그 예루살렘을 덮는다. 온 예루살렘 백성들은 초대교회를 칭송하게 되고 온갖 병든 사람들, 귀신들린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 치유함을 받는다.
다시 공회 앞에 서는 사도들
시기심으로 가득 차 성난 파도처럼 된 성전의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다시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하지만 그날 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밖으로 내보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했다. 그들은 그 길로 나가 새벽 성전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한다.
아침이 되자 대제사장들은 공회를 소집하고 옥에서 사도들을 데려오라고 하지만 그 부하들이 그들을 찾아 낸 곳은 감옥이 아닌 그들이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는 성전에서였다.
그들이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 하고자 할새
그들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그들은 죽이고자 했다. 그들의 불타는 시기심은 피를 보고서야 끝이 날 것 같았다.
그들은 사도들을 그들의 법정에 세우고 그들을 죽일 재판을 진행했다.
그런데 그 공회 중에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가말리엘이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도들을 잠시 밖으로 나가게 하고 공회 앞에 서서 그들에게 말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조심하라
이스라엘에는 더러 자신을 선지자라고 말하거나 메시아라고 속이어 백성들을 현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드다라는 사람이 자신을 그렇게 속이자 약 사백 명의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흩어졌다. 그 후엔 갈릴리 사람 유다가 백성을 미혹하며 선지자 노릇했지만 그도 죽은 즉 사람들은 그를 잊었다.
유명한 율법 교사였던 가말리엘은 드다와 유다이야기를 예로 들며 나사렛 예수와 제자들 역시 스스로 일어난 것이면 스스로 망할 것이고 만약에 그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났으면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고 도리어 자신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그들을 설득했다.
가말리엘의 말을 옳게 여겼던 예루살렘의 공회는 다시 사도들을 불러들여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그들을 채찍질하고 놓아주었다.
하지만 예수의 사도들은 위협 당하기는커녕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것을 도리어 기뻐하며 공회를 떠났다. 그들은 그 예수의 이름을 더 크게 전하러 그들을 떠났다.
가말리엘
가말리엘로 인해 사도들은 위험한 순간을 넘겼다. 그의 설득력 있는 연설은 불처럼 타오르던 대 제사장들과 사두개인을 비롯한 공회원의 마음을 돌렸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사도들의 전도행위를 허락하거나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가말리엘의 말을 듣고 당장 죽이고자 했던 마음을 식힌 정도였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공회는 그가 했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었다. 그의 말은 누가 듣기에도 납득이 가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그는 지혜를 가졌고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있는 사고를 가진 율법 학자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에게 누구였나
가말리엘은 모든 백성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다고 성서도 말한다. 물론 그런 사람은 존경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가말리엘은 결과적으로 자신에게는 어떤 인물이었을 까.
그는 자신을 크게 실망시킬 일이 없는 인격자였을 것이다. 보는 이 없어도 올바른 삶의 모양을 지켰을 터이고 더군다나 그는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그는 그 복된 세기를 살아가며 그 축복 받은 땅에서 학자로 살아가면서도 예수에 관해서는 몰랐을 까.
나사렛의 어부들마저, 삭게오를 비롯한 세관의 세리들마저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깨달아 따랐는데 왜 가말리엘은 그를 메시아로 보지 못했을까. 그가 앉은 자리가 너무 높아 낮은 데로 오신 그분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까.
병들어 불쌍했던 사람들은 그를 통해 기적을 체험하며 그가 진정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아픈 데가 없어서 예수를 찾아 갈 일이 없었을까.
예수를 무척이나 배척했던 전날의 그의 제자였던 바울마저도 결국은 그의 종이 되었는데 가말리엘, 그는 제자만도 못한 스승이었을까.
그는 그가 배운 율법으로 박사가 되었고 그가 아는 지식으로 선생이 되었지만 그에게 가득했던 그 지식들이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땅을 밟고 있었던 메시아를 그는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이 사실이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깝다.
이 세상에 그 잘난 사람들
이 세상엔 잘 배웠고 잘 갖춰진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이 다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 잘 배운 기득권을 가지고 부자로 살고 고상하게 이 땅을 누리고 있긴 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함은 당연하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했던가.
빌라도도 마찬가지
빌라도는 예수를 두 차례 심문하면서 그가 누구인지 몰랐을 까. 그는 유다와 사마리아를 관할하는 로마 총독으로서 피 식민지 사람이었던 예수를 여러 차례 만나 대화를 했으면서도 그가 누구인지를 몰랐단 말인가.
그는 그의 영적인 아내가 일러준 말도 듣고 있었고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그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 나사렛 사람이 분명히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가 유대인 들 앞에서 손을 씻을 때에도, 예수의 십자가에 붙일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 패를 쓸 때에도 그는 분명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 자리가 뭐 길래
그는 자기가 서있는 시대가 인류 역사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역사의 노른자위였음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그 시대에 감당해야 할 자신의 사명을 모르고 있었다.
거기까지 올라왔던 그 얄팍한 자리 하나 지키기 위해 그는 진리를 알고도 따르지 못했다. 군중들이 지르는 그 큰 소리 때문에 그 내면을 울리는 진리의 소리를 듣고도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
인생과 진리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속에 진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인생의 가치는 결과적으로 동물들의 그것과 별 다르지 않다. 진리 되신 그리스도를 알아 따르지 않는 인생은 그 가치가 단지 그가 서있는 자리만큼, 그가 가진 재산만큼, 그가 입고 있는 옷, 그가 타고 다니는 차만큼이 그 가치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이 다 인줄 알고 그곳에 모든 인생을 건다.
아니다. 진리는 그것이 아니다
진리는 그리스도다. 진리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을 안다하더라도 그것은 진리의 1%도 모르는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은 진리의 반쪽만 아는 것이고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 세상을 다 안다고 자부하는 수많은 가말리엘들은 똑똑하지만 바보들이다.
진리를 알면서도 따르지 못하는 이 땅의 빌라도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족속들이다.
진리는 따르는 것이고 목숨 바쳐 사는 것이다
인생이란 진리를 찾아 나서는 여행이다. 그 진리를 만나기까지는 인생의 의미는 없다. 인생에 있어 그 진리를 찾았다면 그 진리에 생명을 바쳐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