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수영 Apr 17. 2022

책이 나를 불렀다

오늘도 다른 이의 이야기에 빚진 채 살아냈다.

마감이 코앞인 언니 덕분에, 우리의 분업은 고스란히 나의 단독 업무가 되었다. 일곱 고양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대부분의 밥자리(길고양이 급식소)를 혼자 관리하고, 구조한 고양이를 돌보러 매일 같이 왕복 1시간 20분씩을 달려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약 2주 동안.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휴일 없이 스트레이트로 달려야 하는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갑자기 눈 앞이 하얘져 아무데서나 털썩 주저앉고, 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떨어뜨릴 수도 있게 된다.


본업이 뭐였는지는 이제 기억도 안 나고, 영화 칼럼을 연재하는 것도 종종 힘에 부친다는 생각을 한다. 뭘 쓰려면 일단 영화를 봐야 하고, 영화를 보려면 극장에 가야 하는데,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으니 예매하고 취소하기를 반복할 뿐. 봐야 하는 영화의 상영관은 점점 줄어드는데, 내 시간은 더 줄어들 때의 막막함이란…


드디어 주말이다. 언니가 쉬는 주말. 평소 같으면 밀린 잠을 잘 테지만, 오늘은 어쩐지 그러기 싫었다. 봄이기도 하고, 외출이 하고 싶었다. 예전에 김영하 작가의 여행 산문에 이런 표현이 있다며 언니가 읽어주었는데, 나는 그 문장을 내 식으로 바꿔두고 매일 떠올리는 처지가 되었다. '내 슬픔을 잔뜩 머금은 일직동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우리동네의 슬픈 볕 말고, 다른 동네의 볕을 좀 쬐고 싶었다. 우리는 가깝고도 먼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언니가 카페에서 원고를 쓰는 동안, 나는 미술관에 올라가 전시를 관람했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 쨍한 색감의 작품들이 나의 피로한 곳들을 밝혀주길 바라며! 부드드득! 입장권을 찢으며 안내 요원이 말했다. "촬영이 금지된 작품을 제외하고는 사진 촬영이 가능합니다."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네? 사진 촬영이요…?'


아니나 다를까 전시장은 사진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배경으로 삼았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타이밍에 작품 사진을 찍으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찍는 사람보다 찍히는 사람이 민폐를 끼치는 것 같은 상황도 연출됐다. 나는 조용히 전시장을 빠져나와 언니의 옆자리로 돌아갔다. "뭐야,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언니가 귀신을 본 표정으로 물었고, 나는 커피를 마셨다. '오늘따라 테라로사 커피도 맛이 없는 것 같다. 내 입이 쓴 건가.' 그때 언니가 책을 한 권 내밀었다.


'나를 찾아가는 직업'이라는 책이었는데, 열자마자 입안에 단맛이 감돌았다. 누군가의 '첫 책'만큼 귀한 게 또 있을까. 작가는 '노련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법한 나이에 첫 출간이라는 과분한 풋풋함을 선물받았다'며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의 첫 책은 노련한 문장들로 가득했다.


나는 읽는 내내 피식피식 웃으며 언니의 작업을 방해했다. 전시는 즐기지 못했지만, 우연히 만난 책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분명 환기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늦은 밤에 기어코 무슨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쉬어야 한다는 몸의 경고를 무시하고 외출을 강행한 탓일까. 저녁을 준비할 때까지는 멀쩡하던 손가락들이 밥을 다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파오기 시작했다. 통증은 삽시간에 온몸으로 번졌고, 더불어 찾아온 오한에 몸이 바들바들 떨려 제대로 누워있을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되었다. 아직 돌아보지 못한 밥자리가 네 군데나 남았는데, 언니는 운전을 못한다. (언니도 약에 쓰려면 없지…) 진통제를 주워 삼키고 언니의 부축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약기운으로 밥자리 순찰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언니를 먼저 집으로 올려보냈다. 아직 약기운이 좀 남은 것 같아서, 운전석에 앉은 채로 책을 펼쳤다. 한 꼭지만 더 읽고 가야지.


언저리에서.


'오늘을 닦달해서 어찌 될지 모를 내일을 살지 않는 것. 그것은 무리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몸의 이상 때문에 강제로 생긴 여유였다.' '나는 가까스로 일으켰던 몸을 (…) 소파 위에 눕혔다. 그리고 하지 않기로 했다. 설거지도 글쓰기도. (…) 도리어 나의 작은 영향력에 감사하며, 사회의 조그마한 부속품으로 사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작가는 자신을 자동차의 부품에, 그중에서도 빠져도 운행에 전혀 지장이 없는 작은 나사에 비유한다. 이쯤 되면 책이 나를 부른 게 확실하다. '너야말로 사회의 조그마한 부속품이니, 오바하지 말고 좀 쉬라고.' 그말이 하고 싶어서 아픈 사람을 불러 앉혔나 보다.


나는 가까스로 일으켰던 몸을 이불에 눕힌다. 다섯째 고양이가 명치를 밟고 서있고, 넷째 고양이가 머리 끄댕이를 잡아 흔들고 있지만 오늘만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럴 생각이다…)


오늘도 다른 이의 이야기에 빚진 채 살아냈다.

작가의 이전글 진짜 다이애나의 얼굴이 보이는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