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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영 Sep 01. 2022

인간은 정말 위로받을 자격이 있을까?

가해자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마음을 쉽게 다치고, 작은 자극에도 금세 불안해한다. 자주 넘어지지만 여전히 툭툭 털고 일어나는 요령 같은 건 없다. 웅크리는 게 일상인 나를 위로하는 건 늘 언니의 몫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예민한 동생을 둔 언니는 위로의 몫을 해내느라 자기의 고충은 가만히 입속에 가둔다.


오대수(오늘만 대충 수습하자) 정신으로 30년을 넘게 살아온 언니지만, 요즘은 언니도 쉽지 않은가 보다. 하필 이런 때, 내 정신에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자기 코가 석자인 언니가 나한테 줄 수 있는 위로는 '병원을 다시 찾아가 보면 좋겠다'와, 위로의 말들이 가득 담긴 책을 전해주는 것뿐이다. 약이나 상담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책을 펴 본다.


'당신은 존재 자체로 귀한 인간입니다. 살아있다는   자체로 축복입니다.'


책을 펴자 이런 말들이 보인다. (예전엔 쉽게 위로를 받았던) 저런 달콤한 문장들을 보면 이제는 즉각적으로 반감이 인다. 당신은 존재 자체로 귀한 '인간'입니다.에서 '인간',   글자가 발목을 잡는다.


나는 저기서 말하는 '인간'이다. 그런데 나는 존재 자체로 귀하지 않다. 나는 인간이라서 자연을 파괴하고, 살아있어서 환경을 오염시킨다. 다른 생명을 매일 같이 죽이면서도 인간은 늘 자신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고통받는 생명이라 여긴다. 이런 책은 가여운 인간들을 위로해, 다시금 파괴할 힘을 가지도록 도울 뿐인 걸...


모든 것이 고통받는 동물들과 기후 위기 이야기로만 읽힌다. 그래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유례없는 전염병과 가뭄, 폭우로 온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 가해자는 어디에도 없다. 인간은 정말 위로받을 자격이 있을까? 책 덕분에 눈앞의 고민은 잠시 잊었지만 마음의 짐은 더 커졌다.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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