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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영 May 06. 2023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

예전에 간선도로를 지나다가 ‘사랑받은 아이가 행복한 사회를 만듭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본 적이 있다.


사랑받지 못하는(못한) 아이가 저 현수막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없겠구나’ 하고 좌절하진 않을까, 마음 한편이 먹먹했다.


저 슬로건이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진짜 이유는 저런 말이 그 어떤 실천적 효과도 낳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이에게 사랑을 줄 사람이라면 저런 슬로건이 없어도 충분한 사랑을 줄 테고, 사랑을 주지 않을 사람이라면 저걸 본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저 현수막이 거두는 유일한 효과는 그저 사랑받지 못한 아이를 한 번 더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닐지.


내겐 어린이날도 저 문구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어린이날이라고 해서 사랑을 주지 않던 이들이 사랑을 베풀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이 날은 그저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가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날일 확률이 크다. 누군가 나를 동정하고 있다고 박탈감을 느끼거나.


우리가 어린이날 해야 하는 건 어쩌면 ‘어떤 어린이도 소외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소외받는 어린이가 이 날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아닐까. 어떤 어린이는 오늘이 5월 5일이라는 이유로 더 많이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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